엄마의 여름, 나의 여름, 오이지 한 접시

찜통더위를 견디게 해주는 밥도둑, 오이지

by 홍성화

찜통처럼 달아오른 날씨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해 7월은 1994년 7월 열대야 이후 가장 긴 열대야라고 했다. 오늘로 벌써 23일째.

밤에도 식지 않는 공기에 지치고, 점심때 사무실 밖으로 나오면 찜질방 같은 열기에 밥 보다 쉬고 싶은 생각이 더 커진다.

요즘 같은 땐 뭘 먹어도 입맛이 그저 그렇다.

아이들은 저녁마다 묻는다.

“엄마, 오늘 저녁 메뉴는 뭐예요?”

이 질문에 나도 모르게 망설이게 된다.


며칠 전, 어머님께서 가져오신 오이지 한 통이 문득 생각났다.

노란빛이 감도는 단단한 오이지를 보면, 어릴 적 엄마가 떠오른다.

여름만 되면 엄마는 늘 오이지를 무쳐주셨다.

찬물에 만 밥 위에 오이지 한 조각 얹어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꼬들꼬들한 식감, 짭짤한 간, 고소한 참기름 향과 깨소금이 어우러진 그 맛은 그 자체로 여름을 견디게 해주는 마법 같았다.

그런 오이지를 이제는 내가 무친다.

그리고 내 아이들이 그 맛에 놀란다.

“엄마, 이거 진짜 맛있어!”

양손으로 엄지를 치켜드는 모습에

내 여름과 엄마의 여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놀랍게도, 어머님께서 짜지 않게 담가주신 오이지를 그냥 무쳤을 뿐인데 어릴 적 엄마가 무쳐주시던 바로 그 맛이 났다.

간단한 재료지만,

담는 손과 무치는 마음에 따라 맛이 살아나나 보다.

그 맛은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고,

지금의 나를 움직이게 한다.


오이지 하면 누룽지!

냉동실에서 누룽지를 꺼내 바글바글 끓였다.

구수한 향이 퍼지고, 뜨거운 여름날에도 나는 그 뜨끈한 국물이 이상하게 좋다.


누룬밥 한 숟갈, 오이지무침 한 조각.

짠맛과 고소함, 시원함이 입안에 퍼지며,

기운 없던 몸에 다시 생기가 도는 듯했다.


생각해 보면,

오이지는 단순한 반찬이 아니다.

여름철 땀과 함께 빠져나간 수분과 나트륨을 채워주는 자연의 이온음료 같고,

무더위에 지친 입맛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마법 같은 밥도둑이다.


입맛이 돌아오니 물도 더 마시게 되고,

짜지 않게 무친 그 한 접시는

입맛뿐 아니라 건강까지 챙기는 한 그릇의 지혜가 된다.


엄마에게 배운 오이지의 맛이

나를 거쳐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여름 밥상 위의 오이지는

그저 ‘맛’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제저녁, 또 무쳐 한 접시를 순삭 했다.

그리고 반찬통에도 가득 담아 두었다.


입맛 없다는 시부모님께도,

더위에 지친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조용히 지친 나 자신에게도 잘 어울리는 든든한 여름 반찬이다.


중국집에서 나오는 짜사이(榨菜)를 보면,

오이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재료는 달라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아삭한 식감 때문일까.

이 외에도 짜사이는 겨자 줄기로 만들어 매콤하고 감칠맛이 도는데,

그 맛이 나에게 그리움과 깊은 맛을 주지는 못한다.

비로소 기억과 손맛이 더해졌을 때

한 접시의 오이지는 여름을 견디고, 건너는 다리가 되어준다.


그러고 보면, 여름이라는 계절의 맛은

혀끝보다는 마음에서 먼저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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