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성화 Oct 04. 2023

나도 미친놈과 결혼했다.

요즘 책 읽기에 소원해진 나를 다시 바꿔보고자 책 검색을 하다 알게 된 이주영 작가의 책.

내가 나에게 준 추석 선물

처음 알게 된 이주영 작가의 이 책은 처음부터 나를 정신없이 웃겼다.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프롤로그

뭐, 미친놈? 미친놈과 결혼했다고? ㅎㅎㅎㅎ


다음은 프롤로그를 필사한 것이다.

혼자보기 아까워 온라인 필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나도 미친놈과 결혼한 나의 이야기를 살짝 써보려 한다.



밤 11시 45분, 조용한 집안.

어김없이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에두아르의 '취침시간'을 알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이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알람을 끈 후 하던 일에 계속 몰두한다. 처음엔 '어차피 잘 것도 아니면서 도대체 취침 알람을 왜 맞춰 놓는 거지?' 생각했다.

그런데 에두아르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한밤중이 되어도 잠을 자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다. 그가 잊어버리는 것은 취침시간만이 아니다. '그 일' 이외엔 대부분의 것들을 잊어버린다. 아니, 아예 신경을 꺼놓는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하루는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는 늦은 오후에 전화를 해선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해댔다.

  "혹시, 오늘 집 앞 전철역에서 구두끈 못 봤어?"

  구두도 아니고 '구두끈'이라니. 구두끈이 없으면 걸을 때마다 뒤꿈치가 덜컥대서 불편했을 텐데, 하루 종일 그런 구두를 신고 다녔다는 건가? 그는 동료 선생이 "왜 구두끈을 안 매고 다니는 거야?" 물어봐서 헐렁한 구두가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웃으며 말했다. 정신을 오직 '그 일'에만 쏟아부으니 웬만한 신체적 불편은 못 느끼는 사람이다.

  에두아르는 전날 저녁에 구두끈이 낡았다며 새 걸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혼잣말을 했었다. 그는 우선 낡은 구두끈을 뺐을 것이고, 그다음에는 새 구두끈을 다시 끼워야 하는데 그걸 잊어버린 채 출근을 해버린 것이다. 늘 서둘러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쌓여 있는 그에게 구두끈을 매는 일은 집중해서 끝까지 해야 하는 종류의 일이 아니었을 테니까.

  구두끈 사건과 비슷한 에피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수리를 맡겼다가 방금 찾은 시계를 잃어버린 적도 있다. 열쇠나 지갑 같은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려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지만, 시계를 잃어버린 날엔 잠을 설칠 정도로 안절부절못했다.

장모님에게 결혼기념 선물로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옆 동네에 있는 시계방에서 건전지를 갈고 오겠다고 집을 나섰던 에두아르는 집에 돌아와서야 시계가 없어진 것을 알고는 멘붕에 빠졌다. 시계를 찾으러 다시 집을 나서려는 그를 내가 말렸다. 이미 늦은 밤인 데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시계방에서 시계를 찾은 것은 확실하다고 하니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가 길거리 어딘가에 떨어뜨렸을 것이다. 어디에서 흘린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헤매고 다녀봐야 헛수고일 게 뻔했다. 그는 뭐든 바지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는 버릇이 있고, 뭘 쑤셔 넣었는지는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해서 잃어버린 물건이 한 트럭은 될 텐데, 그 습관을 좀처럼 고치지 못한다. 어쩌면 고쳐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인지도.

  왜 시계를 찾아서 손목에 차지 않았느냐, 바지 주머니 말고 가방에 넣을 생각을 못했느냐, 잔소리를 하는 것도 귀찮았다. 잔소리로 그의 습관이 고쳐질 리 만무하다는 걸 아니까. 더구나 시계를 잃어버린 날은 스스로 본인의 부주의함을 어찌나 자책하던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꼭두새벽부터 현관에서 나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에두아르였다.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거야?"

  "시계 찾아올게. 밤새 기억을 더듬어 봤는데, 시계방 옆 과일가게 앞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거 같아. 아마 시계였을 거야."

  길을 걸으면서도 '그 일'에 몰두하느라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 따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던 거구나! 성질이 불끈 났다.

  "지금 가서 시계를 찾으면 그건 기적이다, 기적!"

  나는 한마디 던져 놓고는 다시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얼마 후 현관에서 나는 소리에 다시 잠이 깼다. 그가 손에 손목시계를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서 있었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정말 기적이야! 과일가게 앞에 커다란 트럭이 세워져 있었는데, 트럭 뒷바퀴 바로 뒤에 시계가 떨어져 있었어. 길바닥에 있었으면 누군가 벌써 주워 갔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트럭이 어젯밤 폭우에서 시계를 지켜줬어! “

  이런 일에 ‘기적’ 찬스를 써버린 것 같아 아쉽기는 했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잠시 후 에두아르는 기껏 찾아온 시계가 죽어버렸다며 울상을 지었다. 내가 다시 시계방에 가져다주라고 하자 그는 습기가 차서 그럴 수 있으니 드라이기로 말려 보겠다고 했다.

  “만약 시계를 드라이기로 말려서 고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기적이다!“

  잠시 후 욕실에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또다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좀처럼 기적을 경험해 보지 않은 나로서는 연이은 기적이 행운처럼 느껴져 방방 뛰며 기뻐했다. 그러다 멍해졌다. 그가 시계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겪지 못했을 기적이라, 시계를 잃어버린 에두아르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에두아르에게 벌어지는 모든 기적이 ‘행운’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죽은 시계를 소생시키는 데 성공한 에두아르는 안정을 되찾고 다시 ‘그 일’에 몰입했다. 그가 쉬지 않고 해대는 ‘그 일’이란 책을 읽는 일이다. 모두가 바람직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독서’라는 것.

  마흔을 넘겨 한 결혼에서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은 무엇인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긴장감에서 해방되는 게 아니었던가.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정신을 차리고 있을 테니 나는 이제라도 피곤한 긴장감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게으르고 안이한 속셈이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정도면 소박한 바람 아닌가.

  현실은 냉혹해야 한다는 법칙이라도 있는 것일까. 나는 책 읽느라 다른 물건들은 챙길 겨를이 없는, 뭐든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리는 것이 다반사인, 심지어 취침시간까지 잊어버리고 책을 읽어대는 나사 빠진 남자와 결혼하고 말았다. 행운으로 위장된 다행을 하루에도 열두 번 겪는 남자. 이 남자와 살려면 내가 그의 몫까지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 정신 차리기도 버거운 나한테 이건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닌가!

  결혼은 없었던 일로 하기엔 매우 번거로운 제도다. 작가 이만교는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했던가? 나는 결혼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미친놈’과 결혼했을 뿐이다.



미친놈과 결혼이라 ㅎㅎ


책 표지에..

‘프랑스 책벌레이자 지구최강 오지랖 남편을 둔 한국 욕쟁이 부인이 미치지 않기 위해 쓴 남편 보고서’ 라고 되어 있는데, 미치지 않기 위해 쓴 남편 보고서 이 말이 왜 이렇게 와닿는지 모르겠다.


나의 경우는 다른 '그 일'이지만 남편의 성탐구를 해보고 한 번쯤은 나도 남편 보고서를 써 봐야지 생각했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쓰게 되네.


남편은 나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20대의 피 끓는 청춘이라면 이해가 간다. 지금은 40대 초반이다. 결혼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아이도 셋이다. 막내가 2018년 28개월 때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쭉 이어왔고 완치 판정을 받은 게 작년 12월이다. 나도 남편을 사랑하지만 20대의 혈기왕성한 사랑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연애시절의 사랑과 부부의 사랑은 다른데 남편은 여전히 콩깍지 씐 연애시절의 남자로 머물러 있다. 그리고 그런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도저히 정상이 아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나만 세월을 지나온 걸까? 나도 미친놈과 결혼한 게 맞다.



나는 결혼과 동시에 낯선 시부모님과 낯선 시골 동네, 낯선 시부모님 집에서 함께 살았다. 시아버님께서 상견례 자리에서 같이 살자고 못을 박으신 바람에 거절도 못했다. 살 수 있을 것 같아 깊게 고민 안 하고 그러기로 했다. 참 단순했다.


살면서 스트레스받고 어렵고 부딪치는 일 없다면 새빨간 거짓말이고, 그럼에도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세 아이의 육아와 일곱 식구의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빨리 나의 돌파구를 찾은 덕분이다.

혼자만의 시간 확보와 그 안에서 내 시간 즐기기.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가정주부만의 공간을 확보하기란 매우 어렵다. 서재가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내 서재를 만들었다. 비록 밤에만 서재로 변신하는 부엌 식탁이기는 하지만…


행복했다.

지금도 행복하고.


떡방앗간일과 농사일로 고된 시부모님께서 늘 먼저 주무시고, 아이들과 남편이 차례로 잠든다.

그러고 나면 그때부터 부엌은 내 서재가 되고 식탁은 밥상이 아닌 책상이 되는 것이다.


동화 속 신데렐라의 환상은 밤 12시가 되면 모든 게 물거품으로 돌아가지만 나의 환상적인 자유는 밤 12시부터다. 밤에 깨어 있기만 하면 얼마든지. 나는 이 시간을 통해 책에 정을 붙였고 책과 신나게 놀았다. 너무 피곤해서 한쪽을 간신히 읽는 날이 반복되어도 그저 좋아서 졸면서도 계속 책을 보았다. 나는 또한 이 시간 동안 한국사와 독서논술 그리고 아동심리상담 등도 공부했다. 자격증을 갖고 있으나 자격을 목적으로 공부한 건 아니고 그냥 재밌어서 했다. 육아와 살림에 비하면 공부는 너무너무 재밌는 거였다. 놀이나 마찬가진데 왜 학교 다닐 때는 공부가 제일 싫었을까? 놀이라고 생각하고 공부했다면 뭘 못했을까?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수능 한국사와 공무원 한국사 기출문제를 풀어 본 적이 있었다. 보자마자 답이 나오더라. 왜 틀렸는지 왜 정답인지 그냥 보이더라. 남편은 해설지를 보고 있었는데 내 설명이 해설지와 똑같다고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었다.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하면 된다.' 이 말이 통한다는 것을 결혼하고 힘든 육아 속에서 비로소 깨달았다. 이 자체가 행복이었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아주 큰 보람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행복한 동안 남편은 많이 외로웠었나 보다. 몰랐다. 내가 행복하니까 남편도 그런 줄 알았다. 나의 착각이었다.


삼형제가 고만고만해서 늘 아이들만 끼고 잤었고 익숙해지니 이게 편하고 좋았다.

나와 한 침대에서 잠들고 싶은 남편이 팔베개해준다고 해도 나는 그 불편한 자세를 왜 하냐며 핀잔만 주고 거부했었다. 남편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 밤이었고 책을 읽을 때 집중해서 읽을 수 있는 시간도 밤이었다. 그래서 늘 먼저 자라고 하고 나는 밤마다 오늘을 힐링하고 내일의 에너지를 충전했다. 너무나 절실한 나의 시간이었기에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막내의 백혈병으로 모든 게 멈춰졌다.


남편뿐만 아니라 아직은 손이 많이 갈 때인 첫째, 둘째와도 생이별을 해야 했다. 여섯 살 첫째와 다섯 살 둘째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한동안 볼 수가 없었다. 눈물만 났다. 엄마로서 생고문을 받았다. 모성애가 더 커서 그랬을까? 남편은 알아서 잘하겠지 하는 믿음을 이유로 남편에게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줄 여유가 나에게는 없었다.

아주 가끔, 막내가 위급할 때 남편이 서울로 와주긴 했지만 1년 5개월을 떨어져 살다시피 했다. 오로지 가장 큰 목표는 막내가 하루빨리 완치되는 것, 이것 말고는 여유롭게 뭘 할 수도 없었고 모든 게 사치처럼 느껴졌었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남편은 계속 뒷전이었다. 내가 정신 바짝 차리고 막내 치료에 올인을 하고 있으니 남편도 남편대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야 된다고만 생각했다. 남자, 여자로서의 우리를 생각할 틈은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랬는데 남편은 아니었나 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다정한 말을 듣고 싶어 했고 따뜻한 보살핌을 남편도 받고 싶어 했다. 남자로서 사랑도 받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그럴수록 남편은 나를 더 안고 싶어 했다. 내 품을 그리워했고 나와의 섹스를 그리워했다.


막내가 한참 항암치료중일 때에도 남편은 나와의 스킨십을 원했고 섹스를 너무 하고 싶어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남편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미친놈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신) 미쳤어?

내 입에서 이 말이 먼저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사람이 아픈 아이의 아빠가 맞나?', '아이는 독하디 독한 항암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섹스를 떠올리는 이 인간이 진짜 남편이고 아빠 사람이냐?'


너무너무 화가 났었다. 미친놈. 또라이.


당시에는 남편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거부했다. 그러다 한 번씩 마지못해 해 준다는 마음으로 섹스를 했다.


그런데 생물학적 남자로서 남편을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같이 치료받는 아이들의 아빠들도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 남편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아빠, 남편, 남자를 별개로 놓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같은 사람인데도 엄마가 된 여자와 아빠가 된 남자는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자는 죽을 때까지 남자고 여자는 엄마가 되면 여자의 마음은 갖고 있으나 모성애가 커져서 언제나 모성애가 앞선다는 것.


남편이 생물학적 남자로서 섹스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를 지금도 여전히 여자로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거였다.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남편은 내가 너무너무 좋다고 했다. 미친놈이라고 말했는데 맞단다. ㅋㅋ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섹스하고 싶으니까 괜히 수작을 부리는 거라고만 여겼다.  그리고 딱 잘라 말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마음이 1도 없다고. 남편의 진심을 매번 외면해 버렸다. 그게 남편에게는 상처가 되는지도 모르고...


남편은 늘 막내를 부러워했다. 아픈 아이여서 내가 늘 끼고 자고 안아주고 뽀뽀하고 하니까 막내가 제일 부럽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진심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질투할 게 없어서 어린 아들을 질투하냐고 유치하다고 했다.

남편은 내가 하는 거의 모든 것을 배려해 주는데 그 배려도 나를 좋아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건데 나는 왜 몰랐을까. 설거지를 할 때는 내가 좋아하는 강연을 틀어주고 그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같이 보드게임을 하거나 댄스 대결을 하면서 놀아준다. 빨래도 돌려주고 건조기까지 돌려준다. 그리고 나면 내가 빨래를 개는데 남편이 나를 보며 하는 말 "당신은 수건 개는 모습도 어쩜 그렇게 예뻐?" 이런다. 미쳐 미쳐. 잘 때는 나도 못 보는 내 얼굴을 가끔씩 들여다본다고도 했다. 자는 모습도 너무너무 사랑스럽다고. 이 정도면 진짜 미친놈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상이 아니지. 나이가 몇 살인데, 이게 말이 되나?

아이가 셋이나 있고 나는 여전히 사랑보다는 내 꿈이 있어 좋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바쁜데 무슨 허구한 날 웬 사랑타령만 이렇게 해대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다.

아들 셋 키우려면 부지런히 돈도 모아야 하고 숨만 쉬어도 한 달에 나가는 돈이 얼마나 많은데... 먹는 식비만 해도 벌써부터 너무 무서운데 왜 내 남편은 저렇게 사랑타령만 할까? 남편의 뇌를 스캔하고 싶었다. 너무 이해가 안 가서. 비현실적인 사랑꾼인 남편이 나는 부담스럽고 거북하기만 했다.


손만이라도 잡아줘. 아침에 눈뜨면 바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5분만 안아주면 안 될까? 이런다.

아이들 챙기고 출근준비로 나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데 남편은 나보다 더 일찍 나가야 하는데도 저런 말을 한다. 이해하려고 하면 불가다.

그냥 따뜻한 손길과 마음이 필요한 남자 남편 사람이다.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


작년 12월, 남편과 진지한 대화를 주기적으로 나눴다.

우리 집 경제, 아이들 교육, 부부로서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취지였다.


그중에서도 남편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부부로서의 우리 관계였다.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고 막내도 완치되었으니 이제는 침실을 독립시키고 잠만이라도 같이 자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언제까지 아이들만 끼고 잘 거냐고.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익숙해진 것이 편하기 마련이라 난 남편이 불편했고 아이들과 자는 게 너무 좋았다. 특히 막내를 끌어안고 자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남편과 한 침대에서 잠만 자는 것인데도 어색하고 불편했었다. 하루 종일 쏟아부은 에너지가 방전돼 피곤해서 바로 자고 싶은데 남편은 말로는 자자고 하면서 자꾸 팔베개를 해주려고 하고 내 손을 만지고 뱃살을 만지고 가슴을 만지려고 했다. 귀찮았다. 싫었다.


그런데 남편이 밤마다 자꾸 소변이 마려워 깨는데 시원하게 소변 배출이 안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전립선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비뇨기과 의사가 제일 먼저 부부관계를 하고 있냐고 물어봤단다. 안 하고 있으면 부부관계를 하고 약도 먹으면서 지켜보자고 했단다. 남편의 얘기를 듣고 그동안 거부하고 기피해 왔던 남편과의 섹스를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립선 건강에 좋은 건강기능식품도 선물해 주었다.


둘째 시큰아버지께서 전립선암 수술을 하시고도 계속해서 응급실을 왔다 갔다 하시고 건강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 걱정이 앞섰다.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무조건 거부하고 피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부부기 때문에 서로 노력해야 맞고 아이들 보기에도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노력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부터 우리 부부는 클리닉 받듯 공부해 나갔다.


도서관에서 남편이 빌려온 책 중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었다.

강동우, 백혜경 부부가 쓴 [그래도 나는 사랑으로 살고 싶다]라는 책인데 이 책을 같이 읽고 토론해 가며 적용도 해봤다.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라며 우스갯소리 하는 남편

오늘도 여전히 아이만 끼고 자는 무심한 아내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는데, 그럼 정말 괜찮은 걸까?


부부관계에 관한 안내서들은 많이 나와 있지만 성 문제는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피상적으로 다룰 뿐 이를 의학적인 관점에서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드물다. 섹스리스를 포함한 성 문제는 부부 관계에서 핵심이다.


결혼은 사랑의 결말이 아니라 시작이기에 부부 관계는 가꾸고 키워가는 것이다.



섹스리스 부부로 사는 가정이 엄청나게 많고 부부관계에서 문제가 많은 집이 정말 많다. 단지 쉬쉬하고 살 뿐이지. 그런 가정이라면 이 책을 통해 실제로 도움을 받아보기 바란다.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졌던 남편이 차츰차츰 친근해졌다. 엄마로서의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남자 남편이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외롭게 하고 힘들게 해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프면 안 되는데 남편도 늙어가고 있었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돌봄이 필요하다는 걸 늦게 깨달았다. 부부끼리 섹스를 하는 것은 정말 성스러운 것인데 그동안 나는 내 일이 좋아서, 내 꿈을 좇아 앞만 보고 달려왔지 섹스는 형식적인 성행위 그 자체로만 여겼던 것 같다.


책을 참고해서 섹스를 하기 전에 애무의 시간을 평균 이상으로 늘렸다. 하다 보면 된다. 평균은 21분이라고 나와있다. 서로의 성감대를 얘기하고 애무를 하면서 느낌을 서로 공유했다. 섹스의 자세와 강도 등 아주 구체적인 부분까지도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진심으로 서로 노력하고자 한다면. 부끄러워 처음에는 말을 잘 못했는데 구체적으로 얘기를 나눌수록 부부관계는 더 향상된다. 일상에서 남편과 아내 사이도 좋아진다. 남편이 세심하게 아이들에게 워낙 잘하는데 더 잘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더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긍정적으로 지지해 준다.

남편 얼굴에 생기가 돌고 활력이 생겼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서로 간에 대화가 늘었고 속마음을 말로 표현을 하는 진짜 소통을 하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걱정되는 마음에 가끔씩 물어본다.

전립선 괜찮냐고. 비뇨기가 또 안 가도 되냐고.

괜찮단다. 이제는.

처방전이 나에게 있다고. ㅎㅎ


결혼 10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나를 여자로 더 많이 봐주는 미친 남자, 내 남편

나도 그렇게 미친놈과 결혼했고 이 미친놈과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렵니다.

더 아름답게 가꾸고 키워가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낯설다 내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