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패션서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션서울 매거진 Jun 01. 2017

40돌 맞은 #캠브리지멤버스를 아십니까?

시즌별로 수많은 브랜드가 론칭하고 사라지는 패션 시장에서 40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는 브랜드가 있다.


지난 1977년 론칭된 코오롱인더스트리FnC 부문의 남성복 ‘캠브리지멤버스’다. 남성복 ‘캠브리지멤버스’는 브리티시 귀족의 멋을 앞세워 모던한 스타일의 클래식 신사복을 제안하며 40년 역사의 국민 브랜드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다. (원문보기)


‘캠브리지멤버스’는 국내 남성복 시장의 부침이 심한 가운데서도 정체성을 고수하며 내셔널브랜드로서 꾸준히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최근 경기 침체에 따른 매출 하락, 브랜드 부도 및 중단, 매각 등으로 패션 시장의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반대 급부로 장수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에 ‘캠브리지멤버스’가 당당히 이름을 떨치고 있다.


40년간 남성복 브랜드로 명맥을 이어올 수 있는 노하우는 물론이고 꾸준한 성장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 40년 역사의 국민 브랜드 그 출발은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캠브리지멤버스’는 1966년 (주)삼풍으로 출발했다.


1977년 첫 론칭하면서 40년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고 국내 남성복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캠브리지멤버스’는 그 당시 해외시장 개척, 내수 진출, 기술혁신, 해외 현지법인 설립 등 불모지와 다름없던 국내외 시장을 개척하면서 신사복 시장에서 단숨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그동안 수많은 변화와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까지 확고한 위치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변하지 않는 장인 정신을 모토로 한 품질과 시대 흐름에 맞춘 브랜드 전략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내 신사복 시장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아메리칸 스타일이 등장했다. 이후 전쟁의 영향으로 군복으로 지은 양복이 등장했고 ‘마카오 신사’ 양복이 유행하기도 했다. 점차 양복이 일반화되면서 양복점들과 양복 공장들이 생겨났는데 신사복이 맞춤복에서 기성복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캠브리지의 전신인 삼풍섬유공업주식회사가 탄생한다.


삼풍섬유공업주식회사는 수출산업을 중점 육성하고자 한 정부의 정책과 섬유제품의 해외수요 증대 등 당시의 시대적 흐름에 편승했다.

삼풍은 미국 TROY의 신용장을 기본으로 수출입 업체 허가를 획득, 신사복 전문 생산업체로서의 기반을 다졌다. 특히 삼풍은 신사복으로 생산품목을 전환한지 1년여 만에 미국 SAX의 주문을 시작으로 국내 최초로 대미 직수출이라는 쾌거를 이룬다. 이후 더 많은 미국 바이어들을 확보하기 위해 1971년 미국 LA에 지사를 설립해 대미 수출 확대하면서 대일 수출까지 성공시킨다.


당시 삼풍섬유공업주식회사의 대미 수출 실적은 통관기준 US $2,566,034로 이는 국내 총 신사복 수출액의 91.5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수출이 어느 정도 기반을 잡자 삼풍은 내수쪽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1977년 삼풍양복주식회사를 설립, ‘캠브리지’가 탄생했다.


1977년 3월 용산구 이촌동 한강쇼핑센터 2층에 개점한 직매장을 시작으로 첫발을 내딘 ‘캠브리지’는 서양인들의 체형을 바탕으로 해왔던 기존 사이즈를 국내 체형에 맞도록 체계적으로 재정립해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삼풍은 ‘캠브리지’를 바탕으로 국내 신사복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 삼풍은 기술개발위원회와 분임조 발표대회를 통해 전 직원의 기술우위, 품질 우위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고 ‘KS표시 허가’ 획득이라는 결실을 맺는다.


특히 ‘KS표시 허가’ 획득은 고객 신뢰감 강화라는 외부적 이점과 함께 내부적으로 사무 작업능률 향상, 품질의 안정적 향상, 신기술 개발 기반 강화라는 큰 이점을 가져왔고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에 삼풍은 수출 신기록을 수립한다. 신사복 생산 20년만에 ‘5천만불 수출탑’을 수상한 것.

1989년 당시 (주)캠브리지멤버스 정건영 사장이 영국에서 AQUASCUTUM 대표와 함께 대처 영국수상을 접견하고 있다.


그 이후 삼풍은 1983년 (주)캠브리지삼풍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는 패션 비즈니스의 시대적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기업과 브랜드 이미지 통합작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즉 기업 이미지 통합작업인 CIP(Corporate Identity Progr ams)의 개념이 반영된 것이다. 이와 함께 남성패션의 전문성에 컨셉을 맞춘 ‘남자패션 캠브리지’ 광고를 시작하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정립됐다.


당시 선보인 고향시리즈 광고는 신사복을 입는 사람의 내면까지도 ‘신사답게’하고 싶었던 브랜드의 의지를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현대감각에 맞는 새로운 이미지 부각을 위해 1989년 캠브리지 삼풍에서 캠브리지멤버스로 또 한 차례 사명을 변경해 각 브랜드별 이미지 통합작업을 완료했다.


그 당시 ‘캠브리지멤버스’의 최대 강점은 한국인의 기본체형 연구, 한국인의 전통적 기호 색상, 지역별, 연령별 고객 분포를 분석하고 그에 따른 광고 전략을 수립했다는 점이다. 특히 동양인의 체형에 맞는 패턴 및 사이즈를 체계적으로 연구해 브리티시 클래식 옷 문화를 한국적으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캠브리지는 서양 사람들의 체형을 바탕으로 한 기존의 사이즈를 우리 내국인의 체형에 맞도록 다양하고 체계적으로 재정립해 기성복 불신의 가장 중요한 요소를 제거해 단숨에 국민 브랜드로 떠올랐다.

캠브리지는 이후 표준가격제 실시, 이지 오더 코너 마련 등을 통해 국내 신사복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캠브리지멤버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사복 문화 매장인 ‘충무로 266’과 잡지와 신문 등 지면 광고를 통해 의생활 문화와 정신세계로서 신사의 덕목까지 제안해 한국남성 사회 속에 새로운 문화를 뿌리내렸다.


캠브리지멤버스는 1987년 두 번째 브랜드 ‘더 포멀’을 선보였다. 이어 1989년에는 정통 브리티시 클래식 스타일에 이탈리안 스타일을 가미한 캐릭터 브랜드 ‘엑스케이트’를 출시하고 캐주얼 웨어 부문에서는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는 ‘켄켈렉션’을 추가, 성숙기에 접어든 국내 신사복 시장의 다양한 요구에 발맞춰 나갔다


또 국내 남성복 시장에 중저가 돌풍을 몰고 온 ‘브렌우드’를 출시해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히면서 시장 영역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캠브리지멤버스는 국내 중저가 신사복 브랜드의 효시가 된 ‘브렌우드’에 이어 최고급 영국 정통 신사복 ‘아쿠아스큐텀’을 1988년 도입해 명품 브랜드로 전개했고 1990년에는 ‘캠브리지멤버스’의 취약한 가격대를 보강하기 위해 프렌치 감각을 혼합한 중저가 브랜드 ‘에딘버러’를 론칭해 보유 브랜드의 계열화 정책을 완성하기도 했다.


# ‘캠브리지멤버스’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캠브리지멤버스’는 성공가도만 달린 것이 아니라 위기도 있었다. 첫 시련은 1968년과 1969년 삼풍섬유공업 시절 아일랜드의 수출 실패 후 자금압박으로 경영난을 겪었다.


그 당시 신사복으로 생산품목을 전환하면서 위기를 극복했고 이때 우리나라 최초의 생산관리자 김도헌 과장을 영입하는 등 기본적인 신사복 생산을 위한 기계 설비를 갖추면서 신사복 시장을 이끌었다.


71년에는 제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SAX와 BRETTLER 외에도 더 많은 미국 바이어들을 확보하기 위해 삼풍섬유공업주식회사 LA 지사를 설립하면서 수출 시장을 개척해 나갔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국내 신사복 업계가 변혁의 시기를 맞는다. 저임금을 경쟁력의 기반으로 한 임가공 수출에서 고품질 상품의 부가가치를 판매하는 선진 브랜드 마케팅과 기술 수출의 시대로 사업의 기본 패러다임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캠브리지멤버스’ 역시 회사는 안정기에 접어들었지만 국내외 상황은 안정적이지 않았는데 1995년 이형대 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해 ‘내실경영’의 기치를 내걸고 회사의 모든 에너지를 실적과 이익률 제고에 집중하는 실속 위주의 정책을 펼치며 위기를 돌파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는 IMF사태로 인해 캠브리지도 비상사태에 돌입하게 된다. 이때 캠브리지는 1994년에 경영합리화를 위한 1차 구조조정이 끝난 상태였지만 새로운 돌파구로서 2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저비용 고효율화 추구를 통한 이익경영, 지역장 체제의 확립을 통한 고객밀착경영, 데이터 베이스 시스템 구축을 통한 시간 단축 경쟁체제 확립의 3가지 경영 방침을 수립, 재고를 줄이고 생산물량을 감축하는 등의 긴축 경영체제에 돌입했다. 그 당시 수지공장과 동해공장을 폐업하고 보유 부동산 매각에도 나서면서 위기 극복에 나섰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 1998년 말 경상이익이 감소하고 내수판매까지 위축되면서 실질적인 매출증대 효과를 얻지 못했다. 이에 할인판매 증가로 인한 채산성 악화를 보완하기 위해 제품의 적정가격을 재수립하고 정상판매기간을 늘려 판매활성화를 도모했다. 부진한 실적의 브랜드는 물량을 축소하고 전략상품을 개발하는 영업 전략을 펼쳐 나갔다.


이처럼 부동산 매각, 차입금 상환 등의 재무구조 개선외에도 조직 정비를 통한 인원 감축, 공장 폐쇄 및 제품 생산의 외부위탁 임가공, 비효율 매장 철수 등 경영전반에 걸친 2차 구조조정을 통해 IMF 위기를 극복해낸다. IMF체제 이전 총 8개였던 브랜드들도 이 시기에 부진 브랜드가 정리되어 ‘캠브리지멤버스’, ‘브렌우드’, ‘에딘버러’, ‘켄컬렉션’, ‘인티즌’ 등 5개 브랜드로 압축됐다.


# ‘캠브리지멤버스’ 인수 후 새로운 전환기

‘캠브리지멤버스’는 지난 2007년 1월 8일 FnC코오롱에 인수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그 당시 FnC코오롱이 캠브리지를 인수하면서 국내 남성복 시장은 제일모직, LG패션과 함께 3각 구도를 형성했다. 캐주얼과 스포츠에 강한 코오롱이 남성정장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캠브리지를 인수함으로써 최적의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면서 화제가 됐다.


‘캠브리지멤버스’는 지난 2010년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한다. ‘캠브리지멤버스’의 브랜드 DNA를 ‘리얼 브리티시’로 정하고 정통 영국식 슈트 개발에 매진, 브랜드력 강화에 나서기로 한 것. 이를 위해 티모시 에버레스트, 존 런던 등 영국 현지 인력의 컨설팅을 통해 디자인, 패턴, 봉제기술 등 전 분야에 걸쳐 기술력 제고에 힘을 쏟았다.


‘캠브리지멤버스’의 이 같은 행보가 돋보이는 것은 남성포멀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슈트를 통해 경쟁력을 높여 ‘남성복다움’을 전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 제품력 향상을 넘어 정통 슈트를 착용한 신사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상기하며 사회 공헌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강조해 ‘캠브리지멤버스’ 정신을 알리며 브랜드 완성도를 높였다. ‘캠브리지멤버스’의 이 같은 노력은 현재까지 빛을 발해 꾸준한 성장 가도를 이어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특히 정장시장의 불황을 타파하기 위한 ‘캠브리지멤버스’의 해법은 철저한 고급화를 통한 정통성을 강조했다. 그 당시 슈트를 출근복 개념이 아닌 특별한 날에 입는 드레스 개념으로 정립하고 ‘브리티시’라는 브랜드 고유의 헤리티지를 강화하는데 주력해 왔다.


이를 위해 제품 전체를 업그레이드한 가운데 고가와 최고가 라인을 특화시켰고 기존 고가 라인인 ‘로얄스탠다드’와 ‘티모시에버레스트’, 지난 2010년 첫 선을 보인 100% 핸드메이드 비스포크 슈트인 ‘비스포크 런던’까지 3개 라인을 구축하고 비중을 늘려 나갔다.


특히 비스포크 런던라인은 슈트 한착 가격이 350만원에 달하는 만큼 최상의 퀄리티를 자랑하는데 과거 특정 VIP 고객에게만 판매해왔던 고가라인의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 브랜드의 밸류를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캠브리지멤버스’의 고급화 전략은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클래식 슈트의 대명사로 현재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다.


# 가치는 나이 들지 않습니다

‘캠브리지멤버스’가 국내 대표 클래식 신사복의 대명사로 자리잡기까지 단순히 겉모습에만 치창한 건 아니다. 세월에 따라 변화무쌍한 전략을 펼치며 국민 브랜드가 되기까지 숱한 고비를 넘겼기에 가능했다.


최근에는 슈트 판매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모바일 맞춤출장 서비스 도입한데 이어 4월부터 매월 셋째 주 수요일을 ‘슈트 데이’로 정하는 등 다시 신발끈을 동여 매고 있다.


이는 내·외부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직원 스스로 제품을 평가하고 홍보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정통 신사복을 만드는 사업부인만큼 슈트를 입고 출근하며 임직원 스스로가 브랜드의 엠버서더가 됨과 동시에 신뢰감, 조직 단결력 등 슈트만이 전달할 수 있는 차별화된 매력을 보여주겠다는 각오도 엿보인다.


캠브리지멤버스 본부장 윤재은 전무는 “캠브리지의 지난 40년은 고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견고해지고 변하지 않는 가치와 진정성을 가진 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탈리아는 왜 패션 산업이 강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