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은 어떻게 패션의 도시가 되었을까?

'패션투어리즘'

by 소재수집가

흔히 '미국'하면, 유럽에 비해 역사가 짧고 문화적 축적이 부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패션 역시 마찬가지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파리, 런던, 밀라노와 달리, 뉴욕의 패션사는 상대적으로 짧다. 그럼에도 오늘날 뉴욕은 4대 패션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패션위크의 막을 여는 도시가 되었다. 물론 가장 먼저 시작한다고 하여 가장 중요한 도시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뉴욕이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도시로서 가장 큰 주목을 받는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뉴욕은 어떻게 역사와 문화의 층위가 깊은 유럽의 도시들 사이에서 패션의 시작을 알리는 도시가 되었을까. 더 나아가 미국의 수많은 도시들 가운데 뉴욕은 어떤 조건을 통해 세계 패션 지도에서 중심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패션도시로서 뉴욕의 부상은 몇 가지 역사적 우연과 구조적 조건이 맞물린 결과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거대한 정치적 사건 그리고 전후 사회, 경제적 변화 속에서 형성된 뉴욕 산업의 위치는 이 도시를 패션의 전면으로 끌어올리는 배경이 되었다.


Lower_East_Side,_Manhattan,_October_1995_03.jpg 1990년대 로어이스트사이드 거리


20세기 초 뉴욕에는 동유럽 특히 폴란드 출신 이민자들이 생계를 위해 형성한 다양한 경공업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의류 제조업은 초기 자본과 기술 장벽이 낮아 이민자들이 비교적 쉽게 종사할 수 있는 산업이었다. 이들은 주로 로어이스트사이드(Lower East Side)에 위치한 주거형 저층 건물에서 작업장을 꾸려 의류를 생산했다. 반면, 당시 고급 패션 상점과 백화점들은 5번가(Fifth Avenue)를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5번가의 상점들을 주요 거래처로 삼았던 의류 제조업자들은 접근성을 높이고, 유행 변화에 신속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하나 둘 5번가 인근으로 이동하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의류 공장의 유입은 뉴욕의 최하위 빈곤층인 유대인 의류 노동자들이 함께 유입되는 것을 의미했고, 뉴욕의 부와 품위를 상징하는 5번가 상점 주인들과 부동산 업자들은 이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결국 이들은 5번가 협회(Fifth Avenue Association)를 설립해 법적, 제도적 수단을 통해 의류 공장의 추가 유입을 제한했다. 이러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5번가에 자리하던 대부분의 봉제 공장들은 점차 5번가의 서쪽에 위치한 텐더로인(Tenderloin)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이는 적대와 배제 속에서 이루어진 이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도시 공간의 재편'이라는 예상치 못한 효과를 낳았다. 당시 텐더로인은 폭력, 매춘, 도박 등으로 인해 맨해튼의 대표적인 골칫거리였는데, 봉제공장이 들어서면서 홍등가가 밀려나고 고층 업무용 건물이 들어서는 등 이 지역 환경이 점차 개선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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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1919년부터 '가먼트 디스트릭트(garment district)'라 불리기 시작하며 뉴욕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산업 지구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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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맨해튼 중심부에 디자인 학교, 바잉 오피스, 무역 협회 등 다양한 의류 관련 기관들이 집중적으로 설립되었다. 이로써 의류 제조업체들은 소비자 취향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었고,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물론 자원을 도시 내부에서 신속하게 획득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게 되었다. 또한 나이트클럽과 거리 문화, 박물관, 브로드웨이 등 당시 미적 영감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던 다양한 문화 공간들이 인접해 있어 이 지역은 정보 교환의 중심지이자 뛰어난 문화 접근성을 지닌 장소로 기능했다.


항구와 허드슨 강을 따라 형성된 유리한 입지 조건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뉴욕은 미국 동부 해안의 교통 허브이자 자연스러운 무역 중심지로 부상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뉴욕이 하이패션의 도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무엇보다 뉴욕의 성장은 도시 내부의 상황과 조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난 급격한 변화와도 깊이 맞물려 있었다. 전쟁을 거치며 여성의 노동력 투입이 필수적인 요소로 떠오르자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역시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많은 수의 여성들이 노동 시장에 진입하면서 맞춤형 피팅을 하거나 직접 옷을 만들어 입는 데 들이던 시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이는 기성복에 대한 수요를 확대시키며 기성복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기계화된 재봉틀의 보급과 직물의 혁신이 더해지면서 기성복 산업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도매업자 및 제조업자들은 더 큰 시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점차 세계적인 유통 조직을 갖추며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유럽의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패션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았지만, 뉴욕의 제조업자들은 확장라인(diffusion line)이 지닌 상업적 잠재력을 빠르게 포착하며 거대한 글로벌 유통 구조를 형성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랄프로렌(Ralph Lauren), 캘빈 클라인(Calvin Klein), 도나 카란(Donna Karan) 등을 들 수 있다. 예컨대 랄프 로렌의 경우, 폴로(Polo)를 중심으로 폴로 골프, 폴로 걸즈, 폴로 베이비 등 다양한 세부 브랜드를 전개하며 확장라인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물론 파리는 여전히 패션 중심지였다. 그러나 20세기 초, 패션의 지형은 서서히 재편되기 시작했고, 그 변화의 한 축에는 뉴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시기 이후 패션은 더 이상 특정 도시에 고정되지 않는다. 뉴욕에 이어 앤트워프가 등장했고, 패션의 지형은 이후에도 각자의 조건과 언어를 지닌 새로운 도시들을 향해 열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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