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FIT 박물관 전시 'Food and Fashion'
얼마 전 출장으로 뉴욕을 다녀왔다.
사실 나에게 있어 뉴욕은 매해 출장으로 가는 곳이기에
특별한 기대감이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일만 목적에 두자면 조금 지칠 수 있으니 나름의 '특별함'을 위해 빽빽한 일정 안에 보고 싶은 전시를 욱여넣곤 한다.
나는 출발 전 뉴욕에서 볼 전시를 선정하기 위해 먼저 5개의 박물관 홈페이지를 살펴본다. 이 박물관들은 모두 '패션'과 관련된 주제의 전시들을 종종 선보여 내가 관심을 갖고 보는 곳들이다.
이 박물관들에 대해서는 추후 다시 글을 써보려 한다.
뉴욕에서 “꼭” 가봐야 할 패션전시 박물관
1. Metropolitan Museum of Art
2. Museum of City of New York
3. Museum of Arts and Design
4. The Museum at FIT
5. Brooklyn Museum
이중 첼시(Chelsea) 부근에 있는 The Museum at FIT는 세계적인 패션스쿨인 FIT의 부속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패션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패션전문박물관으로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이슈나 어떤 특정한 현상 혹은 매체를 패션의 관점으로 살펴보는 전시들을 주로 선보인다.
운이 좋게도 내가 출장을 가는 일정 중에 FIT 박물관에서 아주 재미있는 전시를 진행했다.
전시의 제목은 'Food and Fashion'이다.
음식과 패션의 조합이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식주로서 우리 일상생활의 중심에 있는 음식과 패션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 동시에 개인, 문화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영화 “마리앙투아네트”는 프랑스 궁전의 모습과 함께 화려한 패션과 음식 문화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전시는 이런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와 최고급 요리부터 음식과 패션산업에서의 학대적인 노동 관행까지 음식과 패션에 관한 이야기들을 상당히 구체적이면서도 다채롭게 풀어나간다.
전시는 총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구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내가 흥미롭게 본 내용들만 추려냈다.
1. A day of food as fashion
2. The camera eats first
3. Haute couture/haute cuisine
4. Dressing to dine
5. A feast for the eyes
6. The fashion cookbook
7. We eat what we are
8. Activism & protest
9. Fashion from your fridge
10. Growing alternatives
샤넬, 모스키노, 펜디 등 패션브랜드들이 음식을 테마로 한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는 단순히 모티브로서 음식을 차용한 제품들을 나열한 것이 아닌, 패션의 본질을 꼬집어 보여준다.
가령, 시장의 음식들을 주제로 한 옷들은 신선한 농산물만큼이나 패션의 유행이 일시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신선했던 농산물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들어 가듯 패션의 새로운 유행 역시 시간이 지나면 오래된 것이 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감자튀김과 햄버거로 만든 가방, 맥도널드, 코카콜라, 화이트 캐슬 등의 아이콘을 활용한 제품들을 통해 패션을 둘러싼 소비주의와 낭비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복잡한 사회적 이슈들을 패션을 통해 조금 더 쉽게, 흥미롭게 풀어내는 것이 FIT 박물관 전시의 특징이다. 이번 전시 역시 학대적인 노동, 몸의 상품화, 문화 정체성, 환경오염 같은 어려운 문제들을 음식과 패션의 관계로 접근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패션디자이너들은 종종 자신의 문화적 배경과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음식을 모티브로 삼아왔다.
사진 속 테이크아웃 용기처럼 보이는 이 제품은 낯설고 이질적이었던 중국 음식이 미국의 문화에 스며든 과정을 주류 패션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즉 과거 미국계 중국인들이 미국에서 겪었던 인종차별이나 문화적 이질감을 음식과 패션이라는 요소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1차원적으로는 동남아시아의 악명 높은 과일을 그린 두리안 드레스와 이탈리아 브랜드 돌체 앤 가바나의 파스타 드레스, 라멘 프린트 슈트 등이 있다.
예술에서도 음식은 종종 등장하였다. 특히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음식과 일상을 결합하는 작업을 많이 선보여 왔습니다. 전시에 포함된 내용은 아니었으나 초현실주의 예술가로 잘 알려진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는 미식가로서도 잘 알려진 바 있다. 그는 매 끼니를 허투루 먹은 적이 없다 할 정도로 식도락이었고, 디너파티와 와인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이런 음식 사랑으로 달리는 음식과 초현실주의를 결합한 독특한 요리책을 직접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패션디자이너들은 이러한 초현실주의 예술에서 영감을 받아 제품을 디자인하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같은 예술가의 초상화나 정물화에 나타난 음식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을 하기도 했으며,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의 캠벨 수프 이미지를 광고용 종이 드레스에 차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전시는 럭셔리 패션브랜드에서 선보이는 음식테마부터 소비주의, 지속가능성, 액티비즘, 신체, 정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접근방식으로 음식과 패션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패션은 우리 주변에 있는 일상품이면서 동시에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앞으로 패션으로 읽는 미술에서는 이러한 패션의 이야기를 전시와 문화예술 이야기를 통해 그리고 투어리즘을 통해 차곡차곡 쌓아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