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오랫동안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라는 사회적 개념을 반영하고 구성하는 수단으로 기능해 왔다. 특히 성별 이분법에 대한 논의에서 패션은 단순한 미적 선택을 넘어 권력, 계급, 성 역할을 상징하는 기호 체계로 작동해 왔다.
18세기까지 남성과 여성 모두 화려한 복식을 착용했으며, 오늘날보다 성별에 대한 경계는 훨씬 유연했다. 적어도 엘리트 계층 내에서는 복식이 성별을 구분하기보다는 계급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예컨대 18세기말까지 상류 부르주아 남성들은 과거 귀족 계층을 모방하며 레이스, 벨벳, 고급 실크, 자수, 가발 등으로 장식된 화려한 복식을 선호했다. 과장된 신발, 복잡한 헤어스타일과 가발, 로코코 풍의 모자, 향기 나는 파우더와 루주 역시 남성 패션의 일부였다. 분홍색 실크 슈트, 금은 자수 그리고 보석 장식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상승 욕망을 드러내는 남성성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화려한 패션은 여성에게만 허용된 것이 아니었다.
한편, 16세기 르네상스 절정기, 시대의 이상(ideal)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한 인물로 평가되는 라파엘(Raphael)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Baldassare Castilglione)의 초상화>는 '검은색'을 통해 남성성을 표현하였다. 라파엘은 당시 로마 지식인과 귀족 계층 문화를 시각적으로 기록한 화가로 의복을 사실적으로 묘사함은 물론, 옷을 통해 인물의 성격과 품위를 드러내는 데에도 탁월한 감각을 지녔다.
1515년경 제작되어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이 초상화는 카스틸리오네의 세계관을 정교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카스틸리오네는 자신의 저서 <궁정인의 책(Il Libro del Cortegiano)>에서 "검은색이 말로 남성복에 가장 큰 위엄을 부여하는 색"이라고 언급했으며, 라파엘은 이 철학을 시각적으로 실현했다. 검정 벨벳 모자와 망토, 대비되는 흰 셔츠, 모자의 어두운 테두리와 각도, 밑단의 구조적인 디테일까지도 세심하게 묘사함으로써 절제된 남성성의 이상을 표현했다.
19세기로 접어들며 남성 복식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였다.
프랑스혁명 이후 귀족 계층이 몰락하고 산업화와 시민 사회의 도래로 부르주아 계급이 새로운 사회적 주체로 부상하면서, 남성성은 ‘화려함’이 아닌 ‘절제’와 ‘이성’의 미학으로 재편되었다. 이 시기 등장한 댄디즘(dandyism)은 단정하고 세련된 외모를 통해 자기 규율과 품위를 강조했고, 검은색 슈트는 그런 이상을 시각화한 대표 복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남성복은 더 이상 레이스나 보석으로 장식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장식을 거부하는 태도 자체가 새로운 남성성을 구성하는 기호가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패션은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고, 복식을 통한 성별 표현은 계급보다 더 강력한 구분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다. 남성은 더 이상 장식의 권리를 갖지 못했고, 장식은 전성으로 여성에게 허용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에 대해 미술사가 존 프뤼겔(John Carl Flugel)은 ‘남성의 위대한 포기(The Great Masculine Renunciation)‘라 명명하며, 복식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 중 하나로 지적했다.
검정 슈트는 부르주아 남성이 추구한 도덕성과 진지함, 신뢰, 근면함을 상징하는 유니폼이 되었고, 그 안에서 남성성은 점차 획일화되고 무채색화되었다. 이 새로운 복식의 규범은 20세기까지 남성 정체성의 기본 모델로 굳어졌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특히 전후 대중문화의 등장과 함께 남성복에 다시금 새로운 흐름이 감지되기 시작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분홍 슈트, 프린스의 실크 블라우스, 글램 록 아티스트들의 반짝이는 무대의상은 전통적인 남성성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핑크는 '여성적'이라는 낙인을 뒤집으며 강렬한 자기표현의 색으로 부상했다. 패션계 역시 이러한 움직임을 수용하여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컬렉션들을 선보이고 있다.
남성은 핑크일까, 블랙일까?
참고문헌
Alice Mackrell, Art and Fashion: The Impact of Art on Fashion and Fashion on Art, Batsford,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