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패션으로 읽는 미술 Dec 20. 2023

우리는 타인의 욕망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패션으로 읽는 미술]김병관 : Floating Portrait

 갤러리의 첫인상은 음침한 기운(?) 혹은 묘한 분위기(?)였다. 전시장 입구는 요즘 소위 MZ세대들이 좋아할 만한 사진 찍기 좋은 #instagrammable 하게 꾸며져 있었다. 빈티지한 감성이 잔뜩 묻어있는 가구와 소품들과 함께 전시가 시작된다. #gallerynow #갤러리나우



김병관 작가의 작업은 그가 성장하면서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했던 대중매체의 영향으로부터 시작한다.


"내게 있어.. 인물화를 그린다는 것은... 바로 누군가를 둘러싸고 있는 표피화 되어 버린 현상을 그리는 것이다....'유행' 또는 '신드롬'은 날마다 반복되고 있으며, 조금도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을 목격한다.... 왜냐하면 이 웨이브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신의 도태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생략)"

- 김병관-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사회는 새로운 유행이 날마다 생성되고, 새로운 신드롬이 끊임없이 나온다. 우리가 자각을 하던 자각을 하지 못하던지와 관계없이 우리는 그런 현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말할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는 이러한 대중매체로 인한 현상의 강한 힘을 인정하고, 이를 오히려 비관하기보다 유희적으로 표현하였다. 특히 작가는 자크 라캉이 언급한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을 인정하며 우리의 욕망조차도 자유로울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의 자화상은 온전할 수가 없다. ''로서 형성되는 '나의 자아' 온전히 '' 결정되는 것이 아닌 타인의 욕망, 유행, 신드롬, 대중매체와 같은 외부적인 현상으로부터 커다란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은 순수히 나로 인한 것이라   없으며,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가장  드러내는 자화상 역시 대중매체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없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얻을  있는 대중매체의 이미지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위에 실수한 것처럼보이는 그의 붓터치는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표피화된 현상' 쉽게 말해 껍데기에 불과한 허무한 우리의 모습을 나타낸다. 대중매체로부터 자유로울  없는 작가 나아가 우리의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최신 유행을 따르고 트렌디함을 쫓는 이들을 '멋지다'라고 여기며, 따라하고 싶은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반대로 유행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도태된 사람들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역으로 유행에 민감하고  그러한 유행을 따르며 유행에 편승하는 사람들은 대중매체의 이미지에 주입된 것은 아닐까? 대중매체를 둘러싼 여러 현상 가령, 타자의 욕망과 유행에 옭아 메여 있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훼손된 자화상 작품을 통해 오늘날 대중매체, 유행 등에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패션(fashion)은 유행에 가장 민감한 산업 중 하나이다. 패션은 유행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이 유행은 한 시즌이 지나면 옛날 것처럼 여겨지기에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고 창출한다. 이러한 이유로 패션은 일시적이고, 상업적이고, 소비를 부추기는 악덕 산업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수많은 명언(?)이 있다. 대표적으로 오스카 와일드와 코코 샤넬이 있다.


"결국 유행이란 반년마다 바뀌지 않으면   만큼 참을성 없고 볼썽사나운 형식이다."

- 오스카 와일드

"패션은 언패셔너블이 되기 위해 만들어진다."

- 코코 샤넬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들 중 패션(=유행)에 자유롭다 말할 수 있는 이들이 과연 있을까? '우리'로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가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아간다. 한때 중고등학생들의 교복템이라고 알려졌던 검은 롱패딩 역시 '우리'라는 집단에 들어가기 위한 주류 편승의 한 예일 것이다. 주류에 들어가지 못하면 나는 그저 도태된 사람으로 여겨지니 말이다. 물론 이는 10대 문화로서 그들만의 스타일이라는 또 다른 이슈가 있겠으나 내가 입는 옷이 타인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 한때 유행했던 아이템은 현재 촌스럽게 여겨지기에 우리는 이런 유행에 반응하며 최소한 유행에 뒤처지지 않으려 애쓰기도 한다.



결국, 수많은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는 우리의 자화상은 작가의 말처럼 온전하다 말할  없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히잡을 쓴 여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