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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동훈 Dec 29. 2018

이유있는 현대사회, 천박의 일상화

이카루스의 이야기, 각색된 신화와 강요된 불안 - 세스고딘

서평, 리뷰 아니 독후감이란 걸 써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무튼 작년이 아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세스 고딘의 근래(2014년)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이카루스의 이야기, 각색된 신화와 강요된 불안 - 세스고딘 강요된 불안 - 세스고딘

이카루스(Īkaros)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건축과 도구 제작에 탁월했다고 하는 다이달로스의 아들이다. 다이달로스는 신의 아들이라는 점에서부터 남달랐지만 이카루스에게는 특별한 점이 없다. 그런 그가 신화 속 짧은 등장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 회자(膾炙)가 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신화 속 이카루스


신화의 내용은 이렇다. 아버지 다이달로스 스스로가 만든 크레타의 미로, 라비린토스에 갇힌* 부자는 밀랍과 새털로 날개를 만들어 그것을 달고 하늘을 통해 탈출에 성공한다. 그러나 태양 가까이 날지 말라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난다는 사실에 도취된 이카루스가 너무 높이 날아오르는 바람에 깃털을 붙이는데 사용한 밀랍이 녹으면서 땅에 떨어져 죽었다는 것이다. * 이 부자가 미로 속에 갇히게 된 이유로 두 가지 설이 있다. 한 가지는 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와 관련된 것이다. 그녀는 포세이돈이 저주의 선물로 보낸 황소와 동침한 후 미노타우루스를 낳는다. 그는 황소 머리에 사람의 몸을 지닌 괴물이다. 크레타의 왕 미노스는 이 괴물이 영원히 나오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미궁(迷宮) 라비린토스를 만드는데 그것을 다이달로스가 설계한다. 하지만 이후 왕은 다이달로스가 파시파의 간음을 방조했다는 것을  알고서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를 미궁에 가두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미노스의 딸 아리아드네와 연관됐다. 크레타의 왕은 아테네 등의 속국으로부터 해마다 각각 7명의 소년과 소녀를 받아 미노타우로스에게 제물로 바쳤다. 그러다가 영웅 테세우스가 제물 틈에 끼여 미궁 속으로 들어가고 이어 반인반우 괴물을 처치하고 심지어 미로를 빠져나온다. 이는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탈출하는 방법을 알려준 까닭이다. 하지만 다이달로스가 처벌받은 이유는 그 방법을 알려준 이가 다름 아닌 그이기 때문이다. 


파괴된 이카루스상. 출처: 픽사베이 @ilariodamato


세스 고딘은 이 신화에서 뭔가가 빠져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 물정 몰랐던 국민학생** 때라면 무슨 이야기냐? 신화에 그렇게 씌어있잖냐? 하겠지만 산전수전(山戰水戰), 공중전에 우주전쟁까지 겪은 중년의 남자에게는 세스 고딘의 주장이 그냥 하는 소리로 들리지는 않고 심지어 그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서 3부작(Trilogy)라도 쓸 태세이다. ** 물론 지금은 초등학교다. 하지만 내가 다닐 무렵에는 일본 잔재가 남은 이름으로 불렸다.

도식화된 신화의 진짜 의미


세스 고딘은 다이달로스가 어린 아들에게 태양의 열기에 밀랍이 녹을 것이라는 것 이외에도 많은 조언과 경고를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비행이라는 것은 많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조금 더 나아가 다이달로스가 아들에게 너무 낮게 날지 말라는 경고도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감옥을 탈출하는 상황에서 저공비행 역시 상당히 위험하고 지상의 물체들과 충돌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키프로스 섬에 있는 이카루스 상. 사진출처: 픽사베이 @ dimitrisvetsikas1969


세스 고딘은 인류가 왜 이카루스 이야기에 그렇게 집착했느냐라는 의문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나 역시 앞서 이카루스가 그리스 신화에서 그렇게 주목받을 만한 인물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의 이야기는 단지 아버지와 미로를 탈출하다가 죽은 이야기가 전부였는데 꽤 오랜 세대에 걸쳐 회자된다는 점이 특이하다. 물론 나도 세스 고딘의 질문을 듣기 전에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 없다.


어린 시절 소위 필독 도서 중에 하나인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라는 명구가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아이들 사이에 그것을 희화(戲畫) 한 문장 또한 유행을 했는데 '높이 나는 새는 공기가 희박해서 떨어진다' 또는 '멀리 나는 새는 자세히 못 본다'라는 식의 문장들이었다. 내가 이 장난스러운 문장을 30년이 휠씬 넘은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공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모골(毛骨)이 송연(悚然/竦然) 해졌다.


갈매기는 높이날면 안되나? 사진출처: 픽사베이 @stux


이카루스 이야기의 교훈과 '높이 날면 공기가 희박하다 '라는 식의  치기 어린 말장난은 이상하게도 완벽하게 같은 경고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우스갯소리로 떠들고 다니던 이 문장들이 왠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유통이 된 것 같은 느낌에 섬뜩해졌다.


이카루스에 대한 신화를 통해 강조된 것은 자신감에 찬 이카루스가 날개와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높이 날아오르다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부드러운 해석하자면 '무책임하게 행동하지 말아라'(그러다가 죽는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이것을 다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면 '네 분수를 알고 살아라' 정도이다. 이 문장까지 전개하면 세스 고딘이 왜 이카루스 이야기를 시작한 것인지 감이 올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도입되었을 것이다. 그 이야기의 원전에 '태양 가까이 날지 말라'라는 이야기만 있었다고 한들 이 이야기에서 자기 분수대로 살라는 식의 경구만 뽑아낼 수 있는 것은 편협하고 깊이 없는 해석이다. 애초에 이 사단을 만든 것은 다이달로스의 질투심*** 때문이었기에 그 이야기 안에서는 다른 많은 교훈들을 끄집어 낼 수 있을 것이다. *** 그가 신의 아들이고 아테나의 사랑을 받았기에 생긴 문제 



노예에 대한 현대적 해석


산업화 이전, 인류의 대부분은 죄를 지어 투옥되거나 전쟁 포로로 강제 노역을 하지 않은 이상 노예 신분이라도 삶의 일부분에서 자유가 보장되었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고도화되고 자본주의가 발전을 하면서 이 두 가지 사회현상은 필연적으로 값싼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잉여 생산물을 지속적으로 소비할 계층을 원했다. 그렇게 해서 회사라는 조직체가 만들어지고 학교가 만들어졌고 급기야 전인류의 50~60%는 학교를 다녀야 하고 회사에서 조직생활할 것으로 강요받는다 - 그 강요된 조직 생활조차도 못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 역시 비극이다. 특히 지금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갑질 논란이나 비정규직의 처우를 보면 고대 사회 일반 노예보다 못한 상황이다.


현대인의 노동과 삶이란. 사진출처: 픽사베이 @stux


학교에서는 복잡해지는 생산 시스템을 유지할 노동자를 만들어 내는 동시에 공장에서 만들어진 대량의 재화를 소비하도록 두 가지 교육을 시켜왔다. 자본주의와 산업사회는 그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야하고 소비해야 한다. 그 과정에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는 표준화와 안정성이다. 이 두 키워드는 필자가 현업에서 일할 때 입에 달고 살던 것인데 이렇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착취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표준을 배우고 일정 범위 밖의 삶을 두려워하도록 교육받을 지도 모른다. 산업사회의 노동자들은 표준화된 매뉴얼대로 일하고 살아야 한다. '비표준'이 표준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소위 불안 상태, 리스트(Risk) : 이 단어는 필자가가 몇 주 전에도 누군가에 마구 지껄였던 단어이다 -이다. 그런 상황을 불안하게 느끼도록 훈련된 사람들은 자동으로 그렇게 반응한다.  사회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꺼리고 유행을 따르는 성향은 이것에서 기인된다.



신화 속에 숨겨진 그들의 의도


20세기 말, 표준화된 사람들에게 큰 시련이 닥쳤다. 이전 시대에도 안전지대는 변하고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와 문명 전체는 그 기반인 자연계의 변화에 따르거나 충돌하면서 천천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이동 속도는 매우 느렸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속도를 따를 수 있었다. 하지만 인류의 문명이 소위 정보화 사회로 전이되면서 변화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움직임을 알아차릴 때쯤 되면 이미 그들은 안전지대 밖에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움직임을 인지할 능력도 없고 인지해도 움직이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더욱 불행하게도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그 안전지대의 이동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물론이고 안전지대 안에 수용 가능한 인원도 줄어들고 있다. 안전지대의 이동 상황을 주시하고 계속 움직이더라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쉽게 안전지대 밖으로 튕겨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의자 뺏기 게임처럼 말이다.


이카루스의 후예들. 사진출처: 픽사베이 @jonhmin_lee


세스 고딘은 그 대안으로 아트(Art)라고 지칭한 일련의 삶의 태도, 지속적인 훈련, 지속적인 노력을 주장한다. 그것은 보통의 삶들이 지향하는 목표나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들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안전과 표준화가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는데 이 '아트'에는 표준도 없고 고정된 안전지대라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시작은 조금 빗겨나가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 있거나 아니면 중간에 휘어져서 다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이미 이루어놓은 아트의 결과물 즉 아트로 인해 얻어진 부와 사회적 지위에 머물러서 굳어진 것 즉 이미 만들어 놓은 판에 머물러 있어서 안전지대의 이동을 인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말한다.



차별화된 삶이 바로 대안


이 아트라는 개념은 나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당연하다. 글쓴이 세스 고딘도 구체적으로  그것을 제시했다기보다는 패러다임(Paradigm) 전환 정도의 모호한 상태로 언급했다. 결론이 애매하기에 부연하자면 이 책에서 주장하는 극명하고 과격한 결론은 '남들 사는 대로 살았다가는 끝이 불행하다'라는 것이다. 부디 이 책을 자기개발이란 미명 아래서 출판되는 처세서 정도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후반부로 가면 왠지 페이지를 늘리기 위해 짜깁기한 흔적도 보인다. 하지만 경영, 마케팅 구루(Guru)인 세스 고딘이기에 그것들 역시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로는 기억해둘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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