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했던 순간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변화의 변곡점
최근 페북에서 남세동 대표님이 '우리 동네 일들에 대한 예상이 크게 잘못되었던 것들 7가지'를 포스팅하신 걸 보고 영감을 받아서 나도 한 번 생각해봤다. 제로투원에 나온 질문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 진실'(What important truth do very few people agree with you on?) 같았던 순간들이 무엇이 있었을까? 크게 아래 5가지 순간들이 있었다.
1. 애니팡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2012년 6월 청담동 어느 오뎅바에서 게임업계 사람들과 술자리를 하던 중 격렬한 토론이 있었다. 다음 달에 카카오톡에서 게임 플랫폼을 오픈한다는데 그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정적이었다. 이유를 대자면 끝도 없었다.
- 플랫폼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거지? 그냥 단순 노출 아닌가?
- 네이트온을 봐. 메신저가 플랫폼으로 성공한 적이 없어
- 무리수를 두면 괜히 메신저 이용고객들 불만만 커질 거야
당시 7월 말 오픈과 함께 10개 게임이 오픈되었는데 당시에는 카카오톡이 그리 환영받지 못해서, 직접 게임 개발사에 컨택해서 입점을 요청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메이저 게임업체보다는 선데이토즈처럼 작은 규모의 스튜디오가 개발하는 캐주얼 게임들이 주로 입점을 했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전 국민 '애니팡 사태'가 터졌다.
2. 유튜브
2006년 구글은 유튜브를 1.6bil에 인수한다. 당시 UCC(User-Generated Contents)란 단어가 화제였고, 대기업 신입사원들이 연수받을 때 밤새서 만든 병맛 영상류의 컨텐츠들이 한국에서 유튜브 및 UCC가 갖는 이미지였다. 물론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MAU가 2,500만명에 육박했지만 저게 뭐길래 1.6조원이나 주고 샀을까? 당시에 기사들은 고평가 논란으로 도배됐었고 잘 샀다고 평가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12년이 지나고 지금 유튜브는 구글의 검색 비즈니스보다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 알파벳의 시총이 800조 정도이니 최소 400조는 된다고 봐야 한다. 구글이 지금의 유튜브가 갖는 잠재력을 보고 인수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분명 어떤 힌트들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동영상 시장의 확대와 구글의 미션인 'To organize the world's information and make it universally accessible and useful'에 부합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역시 장기적인 관점의 유지와 미션의 중요성을 다시 느끼게 된다.
3. 다이소
다이소를 처음 본 건 2000년대 초중반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집에 가는 지하철역 상가에 생겼는데 '저게 뭐지?' 싶었다. 생필품을 파는 거 같은데 마트도 아닌 것이, 편의점도 아닌 것이 사람들이 저길 왜 가나 싶었다. 원래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기본적인 반감을 갖고 있나 보다. 그렇게 다이소가 점점 늘어나고, 히트치는 걸 보고 이게 일본의 '100엔샵'에서 시작된 거란 걸 듣고서 이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은 무언가 남들과 다른 기회를 본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
- GDP와 생활수준과 연관 관계가 있는 걸까? 어느 생활수준 이상이 되면 다이소에서 파는 물건들에 대한 수요가 폭발한다와 같이 (일본에서 먼저 경험했을 테고)
- 1인 가구와 관련이 있는 걸까? 1인 가구가 주로 사용할 법한 물건들을 많이 팔고 있으니
- 값싸고 좋은 물건을 소싱하고 유통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는 걸까.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접근성까지 높이고
한국 진출 20년 만에 매출 2조 원을 찍었다는데, 성공 비결이야 아직 잘 모르겠지만 뭔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한 후 잘 계획된 전략에 따라 실행한 게 아닐까란 생각이 항상 든다.
4. 이더리움
블록체인 스토리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발전과 커뮤니티를 보면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기에 내가 블록체인을 과소평가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비트코인의 '코인'이란 단어 때문이었다. 썰전에서 유시민도 비슷한 오류를 범하는 걸 봤는데, 흔히 생각하는 화폐와 달리 블록체인의 코인은 스마트컨트랙트를 위한 매개체이자 화폐보다는 오히려 증권에 가깝다. '한 시간 전의 가치와 현재의 가치가 다른 게 화폐냐?'는 질문은 그런 오해에서 비롯된 거다.
한 때 모든 미팅, 술자리에서의 대화가 기승전-가상화폐로 끝날 정도로 전 국민이 투기열풍에 빠졌었다가 지금은 진정된 느낌이다. 현재 블록체인 씬은 엄청난 신념을 갖고 있는 커뮤니티 내의 사람들과 관망하고 있는, 혹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로 나눠져 있는데, 종국에 어떤 파급효과를 줄지는 모르겠지만 머리를 비우고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자세는 항상 필요하지 않을까란 교훈을 남긴다.
5. 공유오피스
공유오피스 비즈니스를 하면서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 중에 하나는 '몇 호점까지 낼 수 있을까요?', '얼마나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란 질문이다. 대개는 질문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그렇게 커지긴 힘들지 않을까'라는 의구심이 깔려있어서 굳이 자세히 얘기할 필요를 못 느끼긴 하는데, 현업에서 느끼는 바로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커지지 않을까란 생각이 있다.
Peter Thiel이 페이스북에 초기 투자를 하면서 두 가지 포인트를 봤다고 한다. SNS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미 학습이 끝난 상태였고, 첫 번째로는 현재 서비스를 이용하는 하버드/스탠포드 학생들의 이용 패턴에서 engagement level이 굉장히 높다는 걸 좋은 신호로 봤고, 두 번째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라 페이스북이 저평가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고 한다(잘 노출되지 않고, 투자자들이 피부에 잘 와닿지 않기 때문에). 공유오피스의 직/간접적인 이용자는 여전히 수만 명에 불과하고, 이를 이용자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 비즈니스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수백 명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 부분이 큰 기회요소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작년에 큰 투자회사의 회장님과 뵌 적이 있는데 '항상 머릿속을 비워야 새로운 걸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같이 온 직원에게 얘기하시는 걸 들었다. 그분은 만나본 사람 중 유일하게 60대임에도 불구하고 공유오피스의 가능성을 높게 본 사람이었다. 결국 사람이 본인의 경험과 감에 의해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고, 기존의 경험에 반하는 새로운 걸 접했을 때 그 가능성을 미리 점친다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냥 도태되는 꼰대가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