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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28. 2018

한국 스타트업의 활성화를 막는 7가지 요소들

군대, 존댓말, 효도, 결혼문화 등등

요새 여기저기서 경제 얘기를 많이 한다. 이미 만성적인 저성장 시대로 들어섰을 뿐 아니라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지금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기업들(특히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이 많이 나오는 수밖에 없다. 기업을 직접 운영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혁신기업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A급 인재들이 목숨 걸고 도전해도 될까 말까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정부지원금이나 정책 대신 인재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판을 잘 깔아주는 게 핵심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인재들의 그런 도전을 막는 7대 악이 있었으니...



1. 군대

참고로 이건 당장 군대가 없어져야 된다는 게 아니라 결과론적인 얘기다. 군대 2년과 그 앞뒤로 발생하는 공백을 고려하면 약 3년 정도가 20대에서 순삭 된다. 뿐만 아니라 군대를 갔다 오기 전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이 부담되는 것도 있고. 스타트업은 잃을 게 없을 때 빨리 시도해보는 게 여러모로 좋은데 20대의 3년은 그냥 날리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시간이다. 주커버그가 기숙사에서 페이스북 개발하고 군대를 가야 했다면 지금처럼 사업화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논산훈련소의 추억


2. 존댓말

존댓말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관료적인 공무원, 보수적인 대기업에서는 나이와 직급이 대체로 비례하기 때문에 그래도 문제가 덜 했겠지만 스타트업을 하는 입장에서 존댓말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스티브잡스와 워즈니악은 5살 차이다(잡스는 빠른 55년생, 워즈니악은 50년생). 존댓말 문화가 있었다면 그렇게 친해지고 동등한 관계에서 공동창업을 할 수 있었을까. 단순히 일하는 동료뿐만 아니라 외부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있어서도 ‘잘난 어린애들이 맘껏 휘젓고 다녀야’ 뭐라도 나오는 스타트업 씬에서 공손한 존댓말에 신경 쓰지 않으면 건방진 넘이 되기 일쑤다.


3. 효도문화

효도 문화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서로 다른 인격체인데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본인의 그것과 동일시하여 헌신하고(압축 성장의 결과물인가) 자식은 그런 부모의 헌신을 외면할 수 없다. 그렇게 효도는 아름답게 포장된다.


부모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원하는 직업을 선택해야 하고, 안정적인 성공이 유일한 정답이다. 불안정하고 평균이 실패인 스타트업은 불효의 지름길이다.


4. 결혼문화

결혼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연인 간에 평생을 약속하는 이벤트라면 얼마나 로맨틱하겠냐마는 현실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가치를 검증받는 이벤트이자 주변인들의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어려운 이벤트이다. 남이야 뭐라 하든 내 맘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그걸 무시할 수 없는 기질, 환경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남들이 얘기하는 최고의 직업을 갖고 최고의 배우자와 결혼해야 하는데, 불안정하고 평균이 실패인 스타트업은 결혼과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결혼한 스타트업 대표님들 중에 미래의 장모님에게 결혼을 허락받는 과정에서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짠한 스토리를 가진 분들이 많다. 군대까지 갔다 와서 20대 후반에 사회생활 시작했는데 스타트업에서 한번 삐끗하면 결혼에 있어서는 타격이 너무나 큰 게 현실이다.


5. 무모한 경쟁의식(사회 초년생)

스타트업에 도전하기 좋은 사회 초년생에게 친구들 사이에서 성공의 기준은 ‘연봉’이다. 이게 어디서부터 왔을까 생각해보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학교 다닐 때부터 맹목적인 경쟁에 노출된 결과라고 본다. 너무 경쟁에 목매다 보니 남들 잘되는 걸 배 아파하고 어떻게든 ‘이겼다’는 정신승리가 필수다.


사회 초년생은 알고 보면 오십 보 백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10년 뒤, 20년 뒤를 생각하는 게 맞지만 당장 나는 연봉 4,000인데 누가 IB를 가서 1억을 찍었다더라 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박봉에 미래도 불투명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친구들 사이에서 찌질이가 될 수 있다.


6. 사업에 대한 인식

위에 나온 것들의 사회적인 반영일 수 있는데, 사업 및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별로 좋지 않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에도 사업한다 그러면 왠지 금방 빚쟁이 되어서 독촉에 시달릴 거 같고(연대보증이 없어진 지 오래인데) , 철없는 삼촌이 집안 재산을 탕진하는 이미지가 있다. 그냥 빨리 뭐라도 해보고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의 니즈를 해결해서 돈 버는 게 어렵지만 재밌다는 걸 아는 게 좋은데. 사업을 시작하기까지 심리적 허들이 높다는 게 안타깝다.


7. 투자문화

뭘 해보려면 적게라도 돈이 필요하긴 하다. 대학생 때는 돈 100-200만 원도 큰돈이라고 벌벌 떨기 마련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큰돈에 무감각해지긴 한다. 이럴 때 건전한 엔젤투자 문화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는데 그런 게 아직 많이 부족하다.


건전한 문화라 함은 엔젤투자를 단순히 돈 벌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젊은 인재들이 하는 사업에 같이 여행하듯이 동행하는 느낌이자, 그 경험을 통해 배우고 그들의 열정을 높이 사는 경우인데(거기에 더하면 본인의

성공에 대한 환원의 차원까지) 그런 문화가 자리잡기까지는 너무 많은 선결 요건들이 필요해 보인다.



가끔 학창 시절에 정말 천재적이라 생각했던 친구들이 스타트업에 도전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런 친구들이 위와 같은 이유들 혹은 또 다른 이유로 전문직, 프로페셔널 펌, 대기업 등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포텐을 충분히 터뜨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


종합하면 만약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고, 60대 어르신과도 동등한 친구가 될 수 있고, 20살 이후로는 독립해서 부모님이 알아서 살라고 하고, 결혼에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고, 스타트업에 대한 도전을 축하해줄 뿐 아니라 자부심을 심어주고, 어리지만 좋은 팀이 있을 때 5천만 원 정도는 비교적 쉽게 엔젤투자를 받을 수 있다면 스타트업 생태계는 지금보다 훨씬 역동적이 될 것이고 저성장 시대에 혁신기업이 많이 출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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