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성취에 감사하며 조금씩 전진하기
(2009년4월17일 두 번째 스타킹 통역)
토요일. 스타킹에서 또 연락이 왔다. 당장 오늘 영어 통역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스타킹은 갑자기 출연이 결정되거나 미팅이 잡힐 때가 많은데 기존 통역은 스케쥴이 있어서 바쁜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 간단하게 가겠다고 대답했다. 사실은 번역하는 중이었는데 번역은 잠을 줄여서 밤에도 할 수 있기에 스타킹 미팅에 가기로 했다. 기쁜 마음으로 SBS로 달려갔다. 미국인 비보이 바이런과 인사를 했다. 시애틀에서 온 바이런은 가수 재범의 친구로 며칠 후 녹화를 앞두고 사전 미팅을 하는 자리였다. 최대한 밝은 에너지를 가지고 가운데서 정확하고 신속하게 통역을 하려고 노력했고 다행스럽게도 녹화 때 통역까지 의뢰를 받았다.
월요일 아침, 늦지 않도록 여유 있게 출발해서 SBS 등촌동 공개홀에 도착한 후 바이런과 인사를 했다. 처음 겪는 외국에서의 TV출연이니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대기 시간에 그날의 연예인 패널에 대해서 미리 설명해주었다. 바이런과 같이 헤어, 메이크업을 받았다. 스타킹에서의 첫 메이크업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대에 올라가면 TV에 나올 수도 있겠구나. 막연히 예능프로그램에 나오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메이크업을 받으니까 떨리기 시작했다. 곧 녹화가 시작되었다.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무대 옆에서 대기했지만 끝내 내가 올라가서 통역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터뷰보다는 퍼포먼스 위주였고 간단한 대화는 친구인 재범이 통역을 했다.
나탈리도, 바이런도 함께 녹화준비를 했지만 막상 녹화 때는 나 혼자 무대 뒤에서 바라봤다. 메이크업까지 받고 언제든지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솔직히 실망했다. 하지만 실망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비록 방송에는 나오지 못했지만 메이크업은 받아봤으니 이전보다는 조금 더 전진했다고 생각했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 혼자 뒤처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면서 실망할 것인지 아니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도 예전에 비해 성장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여기고 계속 나아갈지는 나의 선택에 달렸다.
직접 스튜디오에 와서 녹화를 하는 것만 봐도 좋은 경험이었다. 현장의 강력한 에너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되었다. TV에서 편집이 완료된 프로그램을 볼 때는 알 수 없는 현장에서의 분위기를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출연자와 MC 그리고 수많은 패널들이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바로 멘트를 날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람이 많으면 서로 말하는 타이밍이 겹칠 때가 있기 마련인데 질서정연하면서도 틈이 나면 파고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통역으로 올라갔을 때를 대비해서 참고했다.
(2009년4월24일 스타킹 세 번째 통역)
아침9시반. 스타킹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녹화 때 와줄 수 있냐고 묻길래 TV출연여부도 묻지 않고 무조건 OK했다.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번역일은 녹화를 끝내고 잠을 줄여서라도 하기로 했다. 바로 SBS등촌동 공개홀로 향했다. 당장 방송에 나오지 않더라도 우선은 녹화장을 계속 찾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바로 원하는 일을 하면 좋겠지만 그런 기회는 많지가 않다.
나는 필요할 때 연락하면 이런 저런 질문을 하거나 조건 달지 않고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것을 나의 장점으로 어필했다. ‘부르면 조건 달지 않고 신속하게 온다.’ 어떻게 보면 정말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별 거 아닌 것이 엄청난 차이를 가져다 준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방송가에서는 충분히 장점으로 어필 가능하다고 믿었다.
평소에 언젠가 스타킹에서 통역할 것에 대비해서 연습했기 때문에 갑작스런 연락이 와도 당황하지 않았다. 우선 스타킹은 퍼포먼스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평소에는 쓰지 않는 동작에 관한 영어표현을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외국 인기스타의 에어로빅 영상을 계속해서 보면서 '어깨를 펴고, 발을 가지런히 하고, 팔을 굽히면서 '와 같은 동작에 관한 유용한 표현들이 입에서 바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연습했다. 미리 준비했기 때문에 공개홀로 가는 길에 급하게 연습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 대신 나의 약점으로 지적된 딱딱한 얼굴표정을 부드럽게 하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오늘은 LA에서 온 세르지아와 알렉스 킴이 핫슬 댄스를 한국에 알리기 위해서 출연했다. 아나운서 겸 댄서인 세르지아의 통역을 도왔다. 알렉스킴은 교포이기 때문에 나는 이번에도 무대 아래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녹화 중간에 작가들이 출연자들에게 스케치북에 써서 지시를 내릴 때가 있는데 세르지아에게 전달할 일이 생길 것을 대비해서 작가들과 함께 무대 바로 앞 줄에 앉았다.
매번 무대 옆에서만 보다가 맨 앞줄에서 보니까 또 새로운 기분이었다. 출연자들의 작은 표정까지도 눈에 확 들어왔다. 비록 방송에 못 나가더라도 이렇게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즐거웠다. 거리상으로도 무대 옆보다는 무대 중앙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ㅋㅋ 대기하고 있다가 세르지아에게 지시를 내려야 할 일이 생기면 재빨리 스케치북에 영어로 써서 보여줬다. 프롬프트 바로 옆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강호동 선배님이 나를 보고 약간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때로는 보조 통역으로, 때로는 작가처럼 있었기 때문에 내 정체가 뭔지 궁금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성공적으로 녹화가 끝난 후 선배님이 지나가실 때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가셨다. 나를 알아보고 있다는 신호일까? 너무나 기뻤다. 마치 사사키씨가 나를 처음 알아봤을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