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도전하기(12)국내공부로 스페인어 통역

목표를 세분화해서 달성가능한 목표로 만들기

스타킹이 방영되기 시작한지 5년이 넘어가자 출연자 섭외가 어려워졌다. 신기한 재주를 가진 퍼포머는 거의 다 출연한 것이다. 매주 녹화는 계속 진행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출연자 찾기가 힘들어졌다. 새로운 출연자를 찾기 위해 고민하다가 스페인어권에 눈이 갔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굉장히 많은데 스페인어 전담 코디네이터가 없었다. 스페인어 통역이 따로 없어서 스페인에서 온 외줄타기 달인 통역을 영어로 한 적도 있다.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했다. 스페인어를 공부해서 섭외와 통역을 해보자! 예전부터 스페인어를 잘하고 싶었는데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자 동기부여가 됐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은 절대로 쉽지 않다. 단기간에 성과를 내고 싶다면 초반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한다. 다행히 2008년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했을 때 두 달 동안 스페인어 단기완성 코스를 공부한 적이 있다. 복학을 하면서 스페인어 공부에서 손을 놓아버려서 많이 잊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공부한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머릿속 약간 깊숙히 들어가 있을 뿐, 복습하면 돌아온다. 휴학했을 때 당장은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문법을 완성하고 기초를 닦아놓은 것이 본격적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하기로 결정을 내릴 때 큰 도움이 되었다. 일을 하느라 휴학했을 때처럼 집중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아마 스페인어를 처음부터 공부해야 했더라면 쉽게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에 따로 공부하러 나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어학연수에 갔을 때 주로 공부했던 방법이 학원을 다니고, 티비를 많이 보고, 현지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한국에서도 다 할 수 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스페인어 수업을 들을 수 있고 인터넷으로 스페인어로 된 컨텐츠를 얼마든지 볼 수 있다. 10년 전에 비해 한국에 사는 외국인도 많이 늘어났다.

오랜만에 초급자 입장에서 공부를 해보니 초급자 입장에서 어떤 점이 어려운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하면 외국어를 잘할 수 있는지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많이 보고 듣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왔는데 스페인어를 공부하면서 초급자의 입장에서 아무리 많이 보고 들어도 모르는 단어는 절대로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계속 듣는다고 갑자기 알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많이 보고 듣는 것이 중요하지만 초급자일 때는 어휘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단어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을 늘려가면서 동시에 많이 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라면 난이도가 쉬운 영상을 선택 후에 우선은 자막을 보면서 모르는 단어를 익히고 그 후에 자막 없이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내가 직접 실행해보면서 느낀 점을 기록했고 훗날 연예인들에게 외국어 공부법을 알려줄 때 큰 도움이 되었다.

공부하면서 도중에 그만 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스페인어 문법은 지금까지 배웠던 외국어와는 많이 달랐기 때문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실력이 향상 되는 속도가 더딜 때 회의감을 느끼기도 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 걸까? 도전 중에 정체된 느낌이 들고 흔들릴 때는 과정의 일부라는 것을 기억하자. 힘들어서 그냥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흔들릴 때마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왜 시작했는지를 생각하면서 힘을 주는 글을 읽은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었다.

 스페인어를 다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한지 1년이 지났을 때 스타킹에 쿠바에서 온 댄스팀이 출연하게 되었다. 통역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미팅에 동참했다. 출연자가 하는 말을 전부 이해했지만 통역할 때 원하는 단어를 떠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영어 일본어를 통역할 때처럼 생각하자마자 바로 원하는 단어가 입에서 나오지 않아서 답답했다. 나보다 더 스페인어를 잘 하는 사람이 보고 있어서 부담감이 더했다. 해외 체류경험이 있는 하바나 댄스의 스태프인 외대 후배가 나보다 스페인어를 훨씬 잘해서 결국 통역은 무산되었다. 

열심히 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미팅에 데려가줬던 작가님에게 부끄러웠다. 하지만 좌절하지 말자. 한국에서 거의 독학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여기까지 실력을 향상시켰다. 오늘 느낀 부끄러움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서 미팅에 참가했기에 느낄 수 있었다. 자부심을 갖자.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이 전진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의 실패를 자극으로 삼아서 대부분의 시간을 스페인어 공부에 투자하면 분명히 조만간 통역을 할 수 있다. 미팅을 해보고 모자란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부하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만약 아예 도전하지 않았다면 부족한 점을 알 수 없었을 것이고 자극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시도해봤기에 후회는 없다.

3달 뒤에 스페인의 재활용 연주가인 차비를 섭외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인터넷으로 이메일 주소를 검색한 후에 컨택을 했더니 차비도 스타킹에 출연하고 싶다고 했다. 출연의사를 확인한 후에는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고 2013년 12월 16일에 녹화하는 걸로 확정이 되었다. 고수지 작가가 차비의 스페인어 통역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질문을 받고 솔직히 잠시 망설였다. 같은 날 영어권 출연자도 녹화가 있기 때문에 영어 통역을 맡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스페인어 통역을 쿠바 댄스팀 미팅 때 제대로 못한 적이 있기에 이번에도 어설프게 했다가는 신뢰를 잃을 수 있다. 게다가 이번엔 녹화 통역이니 더더욱 잘해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위기지만 어떻게 보면 기회다. 이번이 아니면 다음에 언제 또 스페인 통역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알 수 없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잡자. 불안해도 자신을 믿자. 얼마 전의 실패 덕분에 객관적으로 나의 실력을 파악 후에 더욱 열심히 준비해왔고 그때보다 훨씬 발전했다. 두려워도 도전해야 한다. 도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고수지 작가에게 문제없다고 대답했다. 

  

망설여진다면 우선 하겠다고 대답하고 남은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준비하자. 준비가 다 되어있지 않더라도 일단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고 필요한 표현들을 빠짐없이 익히고 반복해서 연습했다. 

차비가 녹화 전날 한국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 출신의 잘 웃고 쿨한 성격의 차비 덕분에 즐겁게 녹화준비를 할 수 있었다. 미리 연습한 덕분에 미팅 때 스페인어로 문제없이 의사소통을 했다. 직접 부딪혀보니 내일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하는 스페인어 통역이기에 확실히 정신적으로 부담이 된다. 하지만 이왕 원해서 하는 것 긴장까지도 즐기자고 생각했다. 녹화 날도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걸스데이의 혜리와 소진, 그리고 패널들이 나에게 스페인어도 하냐고 물었다. 차비는 인터뷰도 연주도 프로다웠다. 아리랑, 크리스마스 캐롤 그리고 헤이쥬드 연주로 성공적으로 녹화를 마쳤다.

오랜만에 정말 가슴 뛰는 통역이었다. 스타킹에서 스페인어 통역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공부를 해왔고 주변 사람들에게 목표를 이야기를 했다.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먹고 자고 일하는 시간 이외에는 최대한의 시간을 스페인어 공부에 투자했고 드디어 결과를 얻었다. 2013년이 가기 전에 방송에서 스페인어 통역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일을 하면서 스페인어 실력도 향상되고 스타킹에서 스페인어 통역을 하겠다는 나의 꿈도 이뤘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만 공부해서 1년 5개월만에 스페인어를 마스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부터 단기간에 스페인어를 능통하게 한다는 거창한 목표를 설정했다면 아예 시작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어를 잘하고 싶다’는 목표는 너무 막연하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하고 싶은가? 외국어를 능통하게 해서 통역하는 것이 목표인가? 면접에 합격하는 것이 목표인가? 여행을 갔을 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길 원하는가? 외국어를 통역할 정도로 능통하게 하는 목표는 불가능하게 느껴지지만 면접에 필요한 외국어로 범위를 좁힌 후에 공부전략을 최적화하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여행을 갔을 때 활용 가능한 표현을 위주로 공부하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내 경우엔 스페인어 국제회의 동시통역이 목표가 아니었다. 예능에 최적화된 통역으로 분야를 좁히면 달성 가능한 목표가 된다. 스페인어로 된 예능방송을 모니터링하고 스타킹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 위주로 준비한 덕분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목표를 세분화한 후에 최적화된 노력을 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 가능한 목표로 바꾸면 더 많이 시도할 수 있다. 시도횟수를 늘리면 자연히 성공률도 늘어날 것이다. 절실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못하는 이유에 얽매이기 보다 할 수 있도록 목표를 세분화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