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은 때문이겠지만 나는 50대까지는 가끔 남자 동창들을 만났다.
모임이 있다고 연락 오거나,
상을 입었다고 알려주거나,
때로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다가 전화하거나, 뭐 이런 경우들.
선후배를 몇 번 우리 집으로 부른 적도 있다.
술 없이 밥만 차려줌.
ㅋ!
막 오십 들어설 무렵,
지들끼리 만나서 술 마시다 전화해서는 근처라고 나오라는데
와, 내가 30년을 이 짓을 하네, 짜증이 치밀어서.
머리 떡져서 집 밖에 안 나간다, 했건만 계속 전화가 와.
그 이후 술 마신 동창들 전화는 아예 안 받는다.
문자도 빛의 속도로 삭제한다.
40대 때 남녀 동창들 모였을 때 얘기다.
그날 인간 수명이 120세까지 가능하다는 보도가 있었다.
남자애들이 다들 싫다고,
지금도 힘든데 120살까지 어떻게 살란 말이냐고,
하나도 빠짐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반면 여자 동창들은 별무생각.
50대에 모였을 때 한 친구가 말기암 투병 중인 후배를 병 문안하고 왔다고 했다.
자기는 암 걸리면 치료 안 받을 생각이라고,
힘들게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했다.
남자 동기들이 모두 끄덕거리네.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지, 했는데 다들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60대가 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을 수 있다.
40, 50대가 특히 우리나라 남자들에게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사회적으로 너무 짐을 많이 지우는 것 같다.
다들 살아가기가 벅찬지 즐겁다는 중년남자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한 친구는 좋은 회사로 이직하면서 두 번째 높은 자리에 가서 모두의 축하를 받았다.
몇 달 뒤 나와 통화하면서 너무 힘들다고,
며칠 전에는 출근길에 도무지 회사에 들어갈 수 없어서
회사 주변을 뺑뺑 돌다가 결국 출근 못 한다 연락하고는,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부산 해운대에 갔다 왔다는 얘기를 했다.
그 성실한 친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또 이런 기억도 있다.
1992년 가을 무렵, 우리 집이 대대적으로 수리하느라 어머니와 내가 신라호텔에 장기투숙했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수리하는 거 보러 집에 가시고 나 혼자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점심 먹는데,
옆자리에 관록이 보이는 세련된 중년신사 네 사람쯤이 푸짐한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조용조용 식사 매너가 좋더니 순식간에 언성이 높아지면서 성토장 분위기가 되더라.
놀라서 쳐다보니 그쯤에 이혼 시 배우자와 재산분할 한다는 판결이 있었던 거다.
(당시 전업주부의 경우, 이혼할 때 남편 맘대로 집어주는 얼마 받을 뿐, 남편이 번 돈에 대한 법적인 권리가 없었다.)
왜! 내가 힘들게 번 돈을 이혼하는 여자에게 줘야 하냐고.
지가 한 게 뭐 있어!
내 돈 갖고 편하게 살았으면서 이혼할 때 내 재산까지 나눠야 해!- 거의 절규였음.
어떤 새끼가 그따위 판결한 거야, 하면서 판사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아니, 옆자리에서 혼자 밥 먹는 아리따운 처자(호호)를 곁눈질하던 양반들이,
그 처자가 대놓고 쳐다보는 데 아랑곳하지 않고 재산 분할 판결에 분노하데요.
지금 팔십 세쯤 되셨을 텐데,
여러모로 중년은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