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만화경>,
손세관 지음, 도서출판 집,
그림처럼 그려진 옛날 지도 보기를 좋아한다.
조선시대 도화서 화공들이 한성의 풍경과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삶까지 일일이 그려낸 그림 지도는 참 흥미로우면서 아름답기도 하다.
그때도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던 도로들이,
엄청나게 면적이 확장되고 인구 천만 가까운 지금의 서울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신기하지.
서구 도시에서는 오래전에 그려진 도시 지도의 복사본을 기념품으로 판다.
집과 거리들이 너무나 세세하게 그려진 그림지도는
볼 때마다 재미있다.
이 책은 현대적인 측량 지도가 제작되기 이전인 주로 17,18세기에 그려진 그림 지도에 근거해서,
서울 포함 동서양의 도시들을 설명한다.
그림지도도 좋아하고 사람들이 살아온 궤적을 쫒는 콘텐츠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방대한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도시는 행정. 상업, 종교 등 여러 기능이 집약되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규모가 커지면서 체계를 잡아나가는 경우가 있고,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도시계획을 수립해서 건설한 경우도 있다.
도시의 발달사도 재미있는데,
나는 이 책에 소개된 도시들 중 단단한 지반이 아니라 물렁물렁한 늪지에 세워진 도시들에 특히 관심이 갔다.
사람들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동하는 동시에,
많이 불편하더라도 자신이 거하고 있는 장소에 적응하거나,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고단함을 감수한다.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은 원래 바닷가 늪지였다.
배도 띄울 수 없고 건물도 짓기 힘든 곳.
그러나 교역에는 좋은 위치라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살 집과 사업장이 모자라니 사람들은 물컹거리는 늪지에 말뚝을 박고 건물을 지어 올렸다.
모두 인력으로 하는 일이라 처음에는 근처에서 구한 나무를 늪지에 촘촘히 박아 나무로 만든 가벼운 집을 지었단다.
그러다 점점 기술이 발달하면서 암스테르담 경우,
북유럽에서 자란 30미터 높이의 나무 기둥을 땅속 깊이 박아 단단한 파일을 세워 그 위에 벽돌집을 지었다고 한다.
그래도 무게의 압박이 있으니 3,4층 정도의 건물이 빈틈없이 늘어선 지금과 같은 도시경관이 되었겠다.
암스테르담은 17세기에 교역이 발달하면서 칼뱅주의자인 상인들이 앞장서서 이룬 도시여서,
실용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 토대 위에서,
"허세와 낭비가 없는 도시, 꼭 필요한 건물 꼭 필요한 공간만 있는 도시"(162쪽)
보통시민들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장소를 지향했다.
그래서 도시를 압도하는 대성당이 없고,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던 허황된 왕궁도 없다.
책에는 없지만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권력자의 서구에 대한 열망으로 만들어낸 도시다.
바닷가에 나무를 깊이 파묻어 화려한 도시를 세웠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도 원래 정글의 늪지였다고 한다.
깊이 10m 정도까지 사람들이 절구질하듯 일일이 땅을 다지고,
자갈과 흙을 퍼부어 기반을 다진 뒤에 그 무거운 돌의 사원을 건설했다고 한다.
그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까.
거대한 프로젝트는 오랫동안 남아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칭송받지만.
그 업적 밑에는 수많은 익명의 목숨과 인생들이 매몰되어 있다.
아이디어를 떠올려서 지시하는 권력자의 입장이 아니라
한갓 소모품으로 취급되어,
굶주리면서 늪지에 말뚝 몇 개 박고 죽어간 청년이 나라고 상상한다면.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