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

끄적끄적

by 기차는 달려가고

나는 사람을 봐도 남녀 구분을 잘 안 하는 편이다.

극히 일부 마음 드는 남자를 제외하고는 남자라도 남자로 느껴지지 않아서,

내게는 그냥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오해를 받은 뒤에야 아?, 하고 알게 된다.


아기 때는 그저 통통한 아기일 뿐이다가,

남녀가 외모로 구분되기 시작하는 어린이 시절을 지나,

10대, 20대에 남녀 외모의 구분이 확실해진다.

그 시기가 지나고 생활인으로 세상 깊숙이 들어가면

남과 여, 외모의 경계는 다시 흐릿해진다.

옷 입는 방식이나 행동거지는 다르지만 인체의 외모 자체만 보면-

남녀 모두 그냥 시들시들하거나,

억세고 질기거나,

속세의 때가 잔뜩 묻은 남자인 중년, 여자인 중년일 뿐으로 보이지.

그러다 힘 빠지는 노년에 들어서면,

여전히 청춘인 속마음과 상관없이,

겉모습은 세파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한, 호물호물 노인으로 보인다.



중년 남자 몇이 자전거로 세계의 오지를 여행하는 유튜브를 보았다.

어색한 멘트에 우중충한 외모, 촌스러운 옷차림-

세상의 굴곡을 헤쳐나가는 대한민국 중년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는데.

험한 길을 지나면서 생고생을 하고.

편의시설이라고는 전혀 없는 곳에서 노숙하면서.

마땅히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하거나,

흙바닥에 주저앉아 먹다 남은 밀가루 빵에 고추장을 발라먹거나 하는,

그 전투형 여행을 보면서 우리 어릴 적 골목에서 무리 지어 놀던 남자아이들 모습이 떠오르더라.


아오, 소리 지르면서 타잔 흉내를 내거나.

막대기를 휘두르면서 전쟁놀이를 하거나.

공을 차면서 차범근에 빙의하거나 했던.

우스꽝스럽게 오버하며 시끄럽던 그 남자아이들 말이다.

나보다 연배가 아래인 남자분한테서 듣기로,

그분 어릴 때 TV에서 일주일에 한 번인가 전쟁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단다.

당시 시골에 살았던 그분은,

동네 뒷산에 참호까지 파놓고,

전쟁 드라마가 방영된 다음날에는 온 동네 남자애들이 편을 갈라서,

그 드라마의 전투 장면을 재현하면서 놀았다고 했다.

그 자전거 여행자들의 흥분된 표정이 딱 그때 그 모습이더라.

신나고,

두근거리고,

도전정신이 넘쳐서.

세상아 기다려라, 내가 간다!- 까불까불거리는 나름의 용기와 긴장감.



지금은 누구도 만나지 않지만.

예전에 가끔 옛날에 알았던 남자애들을 10년, 20년 만에 만나서 얘기할 때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스무 살 때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멋대가리 없는 뻣뻣한 중년이었고.

몇몇 사람들은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사회인, 생활인의 외피가 살짝 벗겨지면,

스무 살 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도 했다.

현재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드세기만 한 아줌마들에게서도 가끔은,

재잘재잘 떠들던 열 살짜리 여자아이 시절이 엿보일 때가 있다.



나이 든다는 건 뭘까?

한 커플 한 커플 세상의 흔적이 덮이는 걸까?

아니면 화학적으로 변형되어 버리는 걸까?


결론은 좀 엉뚱한데,

하여간 나이 들면 남자, 여자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냥 인간일 뿐.

서로 안쓰럽게 여기면서 함께 연대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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