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바덴에서의 여름>, 레오니드 치프킨 지음,
이장욱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3
아마 1970년대가 끝나갈 즈음의 어느 겨울날 오후,
모스크바에서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점차 어두워가는 시간, 기차를 스쳐가는 풍경들.
모스크바 근교 역사들의 환한 불빛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던진 것처럼 다만 뒤로 흘러가고, 눈 덮인 교외의 플랫폼에는 깜빡이는 가로등들이 타오르는 띠 하나로 이어지며 사라지고 있었다.
(31쪽)
창 밖을 향하던 화자의 시선은 객실 내부로 옮겨지다가 손에 들고 있는 낡은 책에서 멈춘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아내, 안나 그리고리예브나 도스토예프스카야가 쓴 일기를 엮은 오래된 책.
화자가 이모에게서 빌렸던 낡은 이 책은,
도스토예프스키 부부가 결혼하고 반년쯤 뒤인 1867년 봄부터 시작된 독일 여행 시기를 담고 있다.
기차는 어두워져서 레닌그라드에 도착했고 화자는 어머니의 오랜 친구인 길랴 아주머니 댁으로 간다.
두런두런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길랴 아주머니가 준비한 음식을 먹으면서.
화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도시에서 대작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취를 찾아다닌다.
- 이런 시간과 장소의 틀 안에서,
안나의 일기를 손에 든 화자는 100년도 훨씬 전 도스토예프스키 부부의 행적을 (상상 속에서) 따라간다.
자기 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이 아가씨는 마치 짐나지움 학생처럼 보였다. 청순하고 맑은 얼굴의 여자는 바쁘게 오느라 뺨에 홍조까지 띠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한 집에서 영원히 함께 살 그의 아내가 된다는 사실이 그는 믿기지 않았다.
(92,93쪽)
대작가를 흠모한 어린 아내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중년의 남편.
독촉받는 채무들과 밀린 원고와 흡혈귀 같은 주변 인물들-
작가를 괴롭히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서 떠나 남편이 편안하게 글만 쓸 수 있도록,
어린 아내는 친정어머니의 물건을 저당 잡혀 가까스로 여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떠난 독일 여행은, 그러나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
이미 도박에 깊이 빠져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빈번하게 도박장을 들락거리고.
해소될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 시베리아에서의 긴 유형과 러시아 문단에서의 소외감-
살아오면서 견뎌야 했던 지독한 모멸감과 치욕의 길고 깊은 고통은,
이 예민한 대작가의 영혼과 마음을 이미 갈기갈기 난자하였기에.
넉넉지 않은 여행길에서 남편은 걸핏하면 분노를 터트리고
종종 악몽에 시달리며 때때로 발작을 일으킨다.
그는 침대 끝에 누운 채 온몸을 구부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일어나 앉고 싶지만 그를 침대에 결박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밧줄에 의해 방해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새파랗고, 입에서는 거품이 끓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떨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서 그를 침대 가운데로 옮겼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입술의 거품과 이마에 맺힌 땀을 수건으로 닦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로 조용히 누워 있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밧줄이 이긴 셈이어서, 그는 일어나 앉지 못한 것이다.
(53쪽)
남편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헌신하는 착한 아내.
아내가 깊숙이 숨긴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탈탈 털어낸 도스토예프스키가 도박장으로 달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이렇게 그려진다.
요컨대 그는 검은색의 베를린 프록코트와 바지를 입은 채 기묘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길게 늘인 검은 타이즈를 신고, 검은 실크 모자를 쓰고, 흰 장갑을 낀 피에로가 되었다. 그는 약혼반지와 옷과 안나 그리고리예브나의 가죽 모자를 교묘하게 위로 던져 올리고는, 허공에서 절묘하게 그것들을 낚아채면서 저글링을 하는데. 때로는 여기에 자기의 검은 실크 모자를 끼워 넣기도 했다.
(163쪽)
하지만 그가 공중에 던지는 물건들은 그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자기 실크 모자를 위로 던지면, 그것은 허공에서 문득 사라져 버리고, 베를린 양복으로 변한 타이즈 역시 허공 어딘가에서 문득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164쪽)
불쑥불쑥 충동에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타인이 자기를 무시하는 태도를 견디지 못해 작가는 종잡을 수 없이 화를 내고.
늘 안절부절못하며.
그러한 자신을 혐오하고.
그 혐오감은 마음에 분노를 일으키다가 방향을 틀어 바깥으로 터져 나온다.
기분은 널을 뛰고 언행은 극과 극을 오간다.
이따금 비에 젖은 서양자두나 포도, 자두를 들고 돌아오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는 사 온 것을 등 뒤에 숨기고는 안나 그리고리예브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걸 즐겼다. 물론 이런 일보다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녀를 천사라고 부르면서,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며 용서를 비는 일이 더 자주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옷을 깁다 말고 한숨을 쉬면서 말없이 서랍장으로 다가가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돈을 내어주었는데, 이럴 때 그녀가 기침을 하거나 재채기라도 하면, 그는 그녀에게 마구 화를 내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것은 그녀의 돈이며, 그녀 어머니의 돈인 것을 잘 안다, 그녀가 불평하지도 않고 순순히 그에게 돈을 내주는 것은 바로 그 선량함으로 그를 억압하려는 의도다, 등등. 하지만 그는 다시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는 그가 그녀의 돈을 훔쳤으며, 그녀가 자신을 혐오해야 마땅하다고 말하고는, 하지만 아직 자기를 더 혐오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또 어느 때는 혀가 빠질 만큼 열심히 해진 옷가지를 깁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그녀에 대한 감동과 연민에 사로잡혀서 그녀의 손과 치맛자락에 키스를 퍼붓고, 다시 진심을 다해 무릎을 꿇기도 했다.
(156, 157쪽)
도스토예프스키는 도무지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못하여 자신을 옥죄고 활활 불태우는 아물지 않는 고통에서,
죄인이 되어 군중들의 온갖 조롱을 받으며 십자가를 메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리스도의 외로운 고난을 떠올리고.
자신에게 쏟아진 시련의 무게에서 작가는 인간의 본질과 세상의 구조를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이끌어내었으며.
그래서 작가는 허물 많은 인간과 선을 향한 의지와 날뛰는 악이 뒤엉켜 굴러가는 부조리한 이 세상을 글로 옮긴다.
작가 레오니드 치프킨은 도스토예프스키 내면의 깊은 상처를 전하고 아내 안나의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을 그려내면서,
현실 속에서 자행되는 무자비한 권력의 이유 없는 핍박과 억압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왜 반복되는가?
철조망 같은 가시면류관을 쓴 그리스도는 팔꿈치를 무릎에 기댄 채 생각에 잠긴 자세로 혼자 계단에 앉아 있었다. 길고 가느다란 마디를 가진 그의 손은 생기 없이 아래로 내려뜨려져 있었다. 군중들 가운데에는 불그스레한 뺨과 주먹코의 속물스러운 얼굴을 가진 아주 무례한 자 하나가, 그 털이 숭숭 난 짧은 손가락으로 예수를 가리키고 있었다. 계단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를 향해서 몽둥이와 돌들이 날아들고, 누군가는 이미 구타당한 흔적이 있는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깊고 외로운 명상에 잠긴 표정이었으며, 그를 둘러싼 군중들은 미친 듯이 웃어댔다. 예의 그 낯익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합쳐진 이 웃음소리는, 이제 떨어지는 돌과 얼음덩이의 소음과 여러 번 반복되는 메아리에 의해 겨우 잦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위험한 비탈을 무릅쓰고 점점 더 높이 산의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152쪽)
소설에는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작가 솔체니친과,
러시아 내에서 반체제 활동을 하던 사하로프 박사가 잠시 등장한다.
그리고 주점에 앉아 술잔을 들이켜는 평범한 러시아 사람들이 그들을 조롱하는 장면도.
작가는 소설에서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일절 침묵하며 도스토예프스키와 안나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속 일화들만을 소개하는데.
딱 한 번, 소설에서 작가는 절규한다.
왜, 도스토예프스키 당신 마저,
왜!
..... 내게 믿을 수 없을 만큼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소설에서는 인간의 고통에 대해 그토록 예민한 사람이,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에게는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거의 미친 듯이 설파하던 사람이, 잎새 하나와 풀잎 하나하나에 환희에 찬 송가를 바치던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수천 년간 쫓기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의 옹호도 변호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218, 219, 220쪽)
자유와 정당성이 상실된 억압된 독재 체제 하에서 권력의 위험 요인으로 간주되어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사람의 대응 방식은,
개인의 성향에 따라, 상황과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일 수 있겠지.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정면으로 부딪치는 사람이 있겠고.
거리에 나서서 부당함을 소리치는 방법도 있겠다.
겉으로는 묵묵히 굴욕을 견뎌내지만 사실은 이를 악물고 혼자서 완벽한 고발장을 작성하는 레오니드 치프킨도 있다.
스탈린의 유대인 박해로 어릴 때부터 가정이 무너져,
권력의 시야에서 벗어나고자 문화예술계의 아무와도 연대하지 않고 의학연구원으로 조용히 생활하며 남몰래 글을 썼던 작가는,
그럼에도 평생 소련 당국의 핍박을 받아야 했다.
해외로 나갈 수도, 정당하게 일할 수도 없는.
도무지 옴싹달싹할 수 없는 형벌 속에서,
작가는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시련을 어떻게 견디어냈을까?
시베리아 수용소의 죄수 도스토예프스키가 목격했던,
억울한 태형을 미동도 하지 않고 견디던 이름 모를 죄수가 보여준 침묵과 인간적인 품위를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술 취한 권력의 폭거에 조금도 무너지지 않고 싶어 했다.
작가의 작품들은 그가 폭력에 지지 않았다는 증거이리라.
어린 아내 안나는 남편인 도스토예프스키가 사랑과 존경의 상대이면서 동시에 무거운 시련이었을 텐데.
현명한 아내는 남편의 상처를 감싸 안고 현실적인 문제를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작가가 작품을 쓸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조성하고 출판을 담당하여 작가의 작품들을 세상에 알린다.
레오니드 치프킨은 무지막지한 권력의 횡포를 몸으로 견뎌내며
한 자 한 자, 도스토예프스키의 고난을 글로 옮겼다.
작가들을 괴롭힌 권력자들은 죽고 악명으로 남았다.
고통받던 작가들 또한 사라졌으나 그들이 피 흘리며 쓴 작품들은 대대손손 살아남는다.
그럼에도 세상에서는 왜, 같은 일이 반복되는가?
그 장교는 얼큰히 취한 채 위병 한 명을 대동하고는 막사 문을 걷어차고 들어왔다. 그는 그날따라 몸이 아파 작업에 나가지 못한 죄수를 발견한다. 죄수는 등에 노란 다이아몬드 표식이 박힌 거뭇한 회색 수인복을 입고 판자 침상에 누워 있었다. 그는 온 목청을 다해서 고함을 질렀다.
"기립! 이리 와!”
이 시베리아의 죄수가, 바로 지금, 엘베 강변 위에 그림처럼 솟아 있는 레스토랑을 나와서 밤나무 길을 걷고 있는 이 사람인 것이다. 그는 그때 수용소에서, 마치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혹은 그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처럼, 사태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젠가 그는 초소에서 태형을 받는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벌 받던 그 사람은 미동도 않고 누워 매를 맞고는, 등과 엉덩이에 생긴 핏자국을 내버려 둔 채, 말없이 일어서서 꼼꼼히 죄수복을 챙겨 입더니, 그 옆에 서 있는 간수 장교 크리브초프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초소를 떠났다. 그 사람처럼 그도, 그렇게 침묵하며, 품위를 지키며 초소를 떠날 수 있을까.
(40, 41쪽)
상당히 완벽주의자였다는 작가는,
아마 쓰고 또 쓰고.
고치고 또 고치면서.
보석을 세공하듯.
불의한 세상을 견디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고통스러운 내면에 들어가,
분노로 자꾸 흐트러지려는 자신의 마음까지 다듬고, 다듬고 또 다듬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