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영화 연말결산

by 부곡하와이

2025년도 그 나름대로 특별한 한 해다. 내가 보낸 여러 해 중에서 2025년을 특징짓는 건 아무래도 영화다. 살면서 제일 많은 영화를 감상한 해라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번 연도에는 꼭 몇 편을 보겠노라 같은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다. 목표 자체가 없었고 그러니 목표 달성도 있을 리 만무하다. 그냥 어찌어찌 살다 보니 쌓인 성취일 뿐이다. 그냥 비교적 한가했던 이번 해의 빈칸들을 영화로 채운 셈이다.


내가 영화업계 종사자나 프로 비평가도 아니니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영화에 대한 욕구를 항상 갖고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나의 감상을 담은 글을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 훌륭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짜 맞춰져 글이 술술 쓰여진 경우도 있고, 붕 뜨는 생각들을 어떻게든 붙잡으려 끙끙대는 경우도 있다.


기억을 되짚어보면 이런 습관을 갖게 된 지 대략 5~6년 정도 되었다. 처음으로 왓챠피디아(당시에는 그냥 ‘왓챠’라는 이름의 서비스였다.)에 글을 남긴 게 2019년, 2020년 그쯤이기 때문이다. 그 후로부터 감상한 영화에 대해 항상 글을 쓰려고 노력해 왔고, 지금 시점에서 확인해 보니 80개 정도에 달하는 토막글을 작성했다. 글마다 길이가 들쭉날쭉하긴 하지만.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개수지만, 누가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내 생각의 창구에 그래도 이만큼의 기록이 쌓였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썩 대견하다.


나는 영화의 작법이나 구성, 촬영 기법 같은 테크니컬 한 부분에는 문외한이고, 몇몇 영화가 요구하는 교양적 배경지식에 대해서도 부족함이 많다. 그렇기에 나는 완벽하게 아마추어다. 이런 내 수준을 직면하면서도 꾸역꾸역 써내려 온 기록들에는 영화에 대한 선망이 있고, 끄집어낸 내 생각이 있고, 지우고 덧쓴 자국들이 있다. 그래서 난 이렇게 모인 기록들이 맘에 든다. 그리고 그게 지금 이 기록을 쓰게 만드는 동인이다.


토막글을 작성하며 깨달은 중요한 점 하나: 일단 빈 지면 위에 글을 굳혀내는 순간 글이 글을 낳는다는 것. 완벽주의를 표방하며 글쓰기를 미루면, 내 생각은 어느새 날아가고 영화의 인상도 흩어져 버리기 일쑤다. 사실 그렇게 날려버린 기록들이 대다수다. 왓챠피디아에 평가해 놓은 영화가 대략 800개인데 남아 있는 글들은 80개니 거의 90%는 증기처럼 날아간 생각들인 것이다.

글을 쓰지 않았더라도 내가 영화를 본 시간이 의미 없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애석하지는 않다. 비록 제일 뜨거웠을 때의 생각은 대부분 날아갔지만, 그래도 아직 내 뇌 어딘가에 둥둥 떠다니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2025년을 되돌아보며 ‘살면서 제일 많은 영화를 본 해’라는 의미를 집어넣고 그 추진력으로 생각의 증기들을 작게나마 굳혀보고자 한다. 일 년을 다루는 이 거시적인 기록이 2026년 내년의 생각, 그리고 내년에 감상할 영화들을 성공적으로 기록에 안착시키기 위한 훈련이자 밑작업이 되길 꿈꾼다.




아래는 2025년도에 내가 감상한 영화 목록이다. 2025년도 개봉작들이 아니다. 예전에 감상했지만 이번 해에 다시 감상한 경우도 있기에 정확한 목록은 아니다. 목록은 감상한 순서대로지만 그것도 그리 정확하진 않다. 영화 정보는 정확하게 왓챠피디아를 참고했다.


감상한 작품 수는 총 123편이며 장편 112편, 중·단편 11편이다. 평균적으로 약 2.9일에 한 번씩 영화를 감상한 셈이다. 영화관에서 관람한 작품은 총 54편, 장편 43편, 중·단편 11편이다. 평균적으로 약 일주일에 한 번 영화관에 간 셈이다(여러 편을 연속 관람한 적이 많긴 하지만). 볼드처리가 되지 않은 64편의 작품들은 OTT서비스를 이용하여 감상했다.

5점 만점에 0.5점 단위를 기준으로 평가했다.

5점으로 평가한 작품은 2편,

4.5점으로 평가한 작품은 13편,

4점으로 평가한 작품은 41편,

3.5점으로 평가한 작품은 46편,

3점으로 평가한 작품은 14편,

2.5점으로 평가한 작품은 5편,

2점으로 평가한 작품은 1편,

1.5점으로 평가한 작품은 1편이다.


대부분 3.5점이나 4점을 매겼다. 아무래도 평가들이 넘쳐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그게 영화 선정의 행태에 영향을 미쳤을 거라 생각한다. 요즈음엔 다들 맛집인지 아닌지 검색해 보고 가니깐. 오히려 악평이 더 정확할 테다. 하지만 평점은 개인적 취향의 반영일 뿐 그 영화를 헐뜯고자 하는 건 절대 아니다.


글로써 평을 남긴 작품은 20편이다. 영화를 많이 감상한 한 해인만큼 글도 많은 편이다. 확실히, 영화가 취향에 맞든 안 맞든 글로써 생각을 굳힌 작품들은 그 기억이 오래가는 편이다. 나중에 글만 다시 읽어봐도 그 영화의 감상이 전해지는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해당 작품들은 Topsters를 이용해 정리하고, 글의 길이가 제멋대로여서 대략 200자 이내의 짧은 토막글로 다듬어 결산에 올린다.




OTT 감상 장편-검은색 글씨 / 중·단편-회색 글씨

영화관 감상 장편-검은색 볼드체 / 중·단편-연회색 볼드체


작가 미상 (2008),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4/5


고립된 남자 (2023), 바실리스 카추피스 3/5


하나비 (1997), 기타노 다케시 4/5


쇼생크 탈출 (1994), 프랭크 다라본트 4.5/5


도그데이즈 (2024), 김덕민 2.5/5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2008), 밥 퍼시케티 3.5/5


라이트하우스 (2019), 로버트 에거스 4/5


더 위치 (2015), 로버트 에거스 3.5/5


더 배트맨 (2022), 맷 리브스 4/5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 (2006), 타셈 싱 4.5/5

이야기는 화자의 일방적인 전달에 그치지 않고, 청자와 소통하며 자신의 몸을 바꾸어 나간다. 이야기로 소통하는 청자가 있기에, 또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그 이야기 바깥에서 분투하는 인물들이 있기에 영화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다시금 태어난다.


서브스턴스 (2024), 코랄리 파르자 4/5

Substance라는 단어는 흔히 마약이라고 일컬어지는 중독물질을 지칭하지만, 무언가의 실체, 본질, 중요성이라는 의미 또한 갖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어 어느새 사용자가 그것에 종속되는 자기파괴적인 굴레 속에서 어느 순간 삶의 본질은 관심 밖이 된 지 오래고, 심지어는 그 물질이 삶의 구원자처럼 보인다. 결국 이 모든 의미로서의 Substance는 보잘것없는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멀홀랜드 드라이브 (2001), 데이빗 린치 5/5

내용적으로는 근대에서 탈근대를 잉태시킨 꿈이라는 요소를 다루는 동시에, 형식적으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꿈이 되어 영화적 근대와 탈근대의 그 중간에 서 있다. 이 영화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더 나아가 그 자체가 하나의 기이한 꿈이 된다. ‘이것은 모두 녹음된 것’. 즉 영화와 꿈 둘 다 현실의 추출물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상이니, 영화는 꿈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애니멀 킹덤 (2023), 토마스 카일리 3.5/5

사회적 동물이라며 자위하는 인간 사회의 여러 가지 안전망은, 어느새 선을 넘어 인간 개개인의 자유와 성장을 옥죄는 철창으로 작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어떤 모습이 될지도 모르는 채 거친 세상을 직면하는데, 그곳에는 더 이상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주는 부모도 경찰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사춘기를 지나 독립적인 존재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취약하지만 강인하고, 위태롭지만 자유롭다.


벌집의 정령 (1973), 빅토르 에리세 4/5

영화와 현실을 동일시하는 아나의 순수하고 맑은 눈을 통해, 영화를 예찬하는 동시에 사회를 목도한다. 세상의 때가 묻어 더러워진 유리창이 그 안의 순수한 영혼에 내리쬐는 빛을 가려버리는 사회. 영혼이 없는 듯 분주하게 일하고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는 벌집 같은 사회. 그리고 벌집의 규율에 순응하여 재단될 때 묻지 않은 아기 꿀벌들의 영혼.


러브레터 (1995), 이와이 슌지 4/5


씽씽 (2023), 그레그 퀘다르 4/5


브루탈리스트 (2024), 브래디 코베 4/5

인간과 건축은 닮아 있다. 둘 다 태어나기 전부터 죽어 없어질 때까지 지고한 세월을 견뎌내며 그 존재를 영위한다. 주인공 라즐로는 해당 사조의 건축을 다룬다는 의미에서 브루탈리스트가 아니라, 그 인간의 곡진한 삶이 브루탈리즘과 닮아 있다는 측면에서 브루탈리즘 건축이 의인화된 브루탈리스트로 보는 게 맞아 보인다.

콘클라베 (2024), 에드워드 버거 4/5

상처 구멍에 직접 손가락을 넣고 나서야 의심이 믿음으로 바뀐 토마스를 보라. 그 믿음은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 아무도 모르고, 다시 흔들리는 의심 속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 그것은 흔들릴지언정 그 자체로 복되다. 끝없는 과정으로서의 의심들과 덧없는 결과로써의 확신. 그 여러 확신들 사이의 존재는 흔들리는 믿음이 불러일으키는 의심을 통해 훔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스 리틀 선샤인 (2006), 조나단 데이턴 3.5/5


미키17 (2025), 봉준호 3.5/5

복제인간 미키는 분명히 매력적인 인물이고, 영화는 특유의 유머로 이야기를 훌륭하게 끌어나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야기는 갑자기 흥미를 잃고 진부해지고 말았다. 서로 다른 두 미키가 멀티플임을 들키고 외부의 적들과 맞서는 순간, 둘을 둘러싼 복합적인 대립들은 평면적인 인물들의 단순한 대립으로 한순간에 압축되어 버린다. 매력적이었던 대립의 서사는 끝나고 흔한 선악의 이야기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철남1 (1989), 츠카모토 신야 3/5

몸과 기계 그리고 그것이 꿈꾸는 욕망이 한 몸으로 엉겨 붙는 교접. 눈알로 칼날을 핥은 듯 쇠비린내를 풍기는 모노크롬 영상과 그 속에서 기관(혹은 부품)들이 내지르는 교성. 이건 문자 그대로 섹스테이프다.


시빌 워: 분열의 시대 (2023), 알렉스 갈랜드 3.5/5

조준경은 적들을, 뷰파인더는 피사체를 포착하고 총구와 플래시는 번쩍번쩍 빛난다. 이들을 총괄하는 것은 눈앞의 것들이 쏘아야 하는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판단 그뿐이다. 내전의 사람들 또한 이들을 닮아, 마치 자동초점 카메라처럼 피사체의 표면에만 집중한다. 이제 중요해진 건 쏠 것이냐 말 것이냐, 또는 쏘일 것이냐 피할 것이냐인 것이다.


컴플리트 언노운 (2024), 제임스 맨골드 3.5/5


릴리 슈슈의 모든 것 (2001), 이와이 슌지 3.5/5


계시록 (2025), 연상호 3/5


승부 (2025), 김형주 3.5/5


빈폴 (2019), 칸테미르 발라고프 3.5/5


메기 (2018), 이옥섭 3.5/5


체리향기 (1997),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5/5

살아간다는 것은 한편으론 죽어간다는 것이기에 살지 않을 이유는 곧 죽지 않을 이유가 되고, 죽음을 위한 여정은 삶을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카뮈의 말마따나 삶의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는 자살이 진정으로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라면, 결국 그 모든 것은 땅에서 시작해서 땅에서 끝나고야 만다. 이 땅에는 깊게 묻혀 잊히는 죽음도, 새로운 생명을 싹 틔우는 삶도 있기에, 그 여정은 아름다우면서도 추하고 희극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글래디에이터 (2000), 리들리 스콧 3.5/5


와일드 씽 (1998), 존 맥노튼 3/5


피아니스트 (2001), 미카엘 하네케 4.5/5


스윙걸즈 (2004), 야구치 시노부 3.5/5


그림자 군단 (1969), 장 피에르 멜빌 4/5


아메리칸 뷰티 (1999), 샘 멘데스 4.5/5


이 투 마마 (2001), 알폰소 쿠아론 4.5/5


뜨거운 녀석들 (2007), 에드가 라이트 3/5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011), 데이빗 핀처 3.5/5


엘리펀트 (2003), 구스 반 산트 4/5


클래스 (2008), 로랑 캉테 4/5


곤돌라 (2023), 바이트 헬머 3.5/5


알리타: 배틀 엔젤 (2019), 로버트 로드리게즈 3/5


롤러코스터 (2013), 하정우 3/5


아기 천사 (2024), 데빈 시어스 4/5


퀸즈 (2024), 클라우디아 레이니케 3.5/5


겨우살이 (2025), 황현지 2.5/5


불쑥 (2025), 김해진 2/5


별나라 배나무 (2024), 신율 2.5/5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요아킴 트리에 4/5

극과 극은 맞닿듯, 최선을 갈구하다 보면 역설적으로 최악을 맞이하곤 한다. 원하는 것이 무언지도 모르고 눈앞의 최선만을 좇아대지만 아름다울 수 있는 그 시절의 치기.


해피엔드 (2024), 네오 소라 4/5

사실 이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지진과 그 경고음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모든 삶은 그것에 맞서 흔들리고, 버티고, 숨고, 무시하고, 이용할 뿐이다. 무엇 하나 틀린 방법은 없다. 어린 청춘들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행복할 결말을 찾아나갈 테다. 하지만, 그렇게 행복한 끝남을 좇지만, 사실 모든 것이 지난 시점에서의 해피엔드는 유명무실한 행복-끝남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것.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며 달려왔지만 사실 그 모든 과정들이 행복 그 자체일 수도 있다는 것.


브로큰 (2021), 김진황 1.5/5


아멜리에 (2001), 장 피에르 주네 4/5


줄스 (2023), 마크 터틀타웁 3.5/5


천애해각 (1996), 이지의 4/5


귤레귤레 (2024), 고봉수 4/5


페니키안 스킴 (2025), 웨스 앤더슨 3.5/5


바다호랑이 (2025), 정윤철 2.5/5


씨너스: 죄인들 (2025), 라이언 쿠글러 4/5


어댑테이션 (2002), 스파이크 존즈 4/5


퀴어 (2024), 루카 구아다니노 3.5/5


콜드 워 (2018), 파벨 파블리코브스키 4/5


글루미 선데이 (1999), 롤프 슈벨 3.5/5


머니볼 (2011), 베넷 밀러 4/5


F1 더 무비 (2025), 조셉 코신스키 3.5/5


해리건 씨의 전화기 (2022), 존 리 행콕 3/5


열대의 묵시록 (2024), 페트라 코스타 4/5


지옥의 묵시록 (1979),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4.5/5


아무렇지 않은 얼굴 (2003), 하마구치 류스케 3.5/5


미세리코르디아 (2024), 알랭 기로디 3/5

마치 고속도로 위에 있는 운전자의 마음처럼, 온갖 종류의 긴장 속에 있지만 한없이 지루하기만 하다. 영상이 눈을 사로잡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 자체도 그리 문제적이지도 않으며, 전체적인 철학적 주제도 깊지 않다.

총을 든 스님 (2023), 파오 초이닝 도르지 3.5/5


패터슨 (2016), 짐 자무쉬 4/5


어쩔수가없다 (2025), 박찬욱 4/5

어쩔수가 없는 사회의 부조리가 어쩔수가 없다 라는 개인의 변명으로 오역되는 과정의 흥미로운 조각조각들이다. 피와 땀을 흘려 일할 자리를 피와 땀으로써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우면서도 애잔한지. 거목을 베어내는 듯한 거대한 폭력에 모아서 맞서기보다는 그것에 다시금 편입되기 위해 경쟁을 제거하는 개인의 폭력은, 하나의 우화로서 씁쓸한 현대 노동사회의 구조를 그린다.


우아한 시체 (2025), 김경래 3.5/5


판쿠의 시간 (2025), 레자 라하디안 3.5/5


관찰자의 일지 (2025), 임정환 3.5/5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2025), 폴 토마스 앤더슨 4.5/5

아직 닫히지 않은 현재 동시대를 훌륭하게 그려내며,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미래적이다. 정치, 신념, 인종, 젠더적 다양성과 그간 알력들이 계속해서 증식하는 이 시대, 수없는 욕망들이 들끓으며 가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각자의 16년들이 거대한 눈덩이처럼 모인 시간의 덩어리는 반복될 터이고,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끝없는 전투와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피넛 버터 팔콘 (2019), 타일러 닐슨 3.5/5


더 포스트 (2017), 스티븐 스필버그 4/5


그저 사고였을 뿐 (2025), 자파르 파나히 4.5/5

가려진 길 위에서는 그저 사고일 뿐이고, 일어날 일이어서 일어났고, 거대하신 신의 뜻에 불과하다. 우리 모두는 안대로 눈을 가리고 도로 위 들개들처럼 서툴게 살고 있다. 얼굴도 모르는 무언가를 감각하고 두려워하고 또 욕망하면서 기다린다. 그리고 그 미래의 암흑 속에서, 옳은지도 그른지도 모르는 깜깜한 신념 속에서, 정녕 모든 감각이 까맣게 멀어버린 에크발이 곧 들개들을 치어버린 자동차가 아닐는지.

미러 넘버3 (2025), 크리스티안 페촐트 3.5/5


황혼에서 새벽까지 (1996), 로버트 로드리게즈 3.5/5


서스페리아 (2018), 루카 구아다니노 4/5


반칙왕 (2000), 김지운 3.5/5


내 말 좀 들어줘 (2025), 마이크 리 3.5/5


아티스트 (2011), 미셀 하자나비시우스 4/5

이 영화는 말이 아닌 다른 것들로 웃음과 사랑, 슬픔과 그리움을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 강아지를 통해, 인물들을 통해, 그리고 영화 자체를 통해. 그건 가장 원시적인, 그래서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강렬한 믿음이 아닐까.


굿뉴스 (2025), 변성현 3.5/5


프랑켄슈타인 (2025), 기예르모 델 토로 4/5


극장판 체인소맨: 레제편 (2025), 요시하라 타츠야 3.5/5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2025), 캐서린 비글로우 3.5/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8), 김지운 3.5/5


푼돈 도박꾼의 노래 (2025), 에드워드 버거 3/5


28년 후 (2025), 대니 보일 3/5


비트윈 투 펀스: 더 무비 (2019), 스콧 아우커만 3/5


네브라스카 (2013), 알렉산더 페인 4/5


부고니아 (2025), 요르고스 란티모스 4.5/5


파프리카 (2006), 콘 사토시 4/5


세계의 주인 (2024), 윤가은 4.5/5

진실, 그것은 우리가 딛고 서 있는 이 현실 세계의 존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주 짧은 순간 동안만이라도 그것이 없었던 것처럼 여기고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 진실이 없는 환상의 세계도 현실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어떤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진실이 없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무래도 좋은 세계일지 모른다. 그런 주인의 세계와 그 세계로 이끌어갈 마술사 주인을 모든 관객이 바라고 있으니까.


남매의 집 (2009), 조성희 3.5/5


감상과 이해, 청산별곡 (2004), 이상근 3/5


갈치괴담 (2003), 김한민 2.5/5


완벽한 도미 요리 (2005), 나홍진 4/5


몸값 (2015), 이충현 4.5/5


숲 (2012), 엄태화 3.5/5


12번째 보조사제 (2014), 장재현 3.5/5


사이드웨이 (2004), 알렉산더 페인 3.5/5


코메디의 왕 (1982), 마틴 스콜세지 4.5/5


왼손잡이 소녀 (2025), 추시경 3.5/5


우주전쟁 (2005), 스티븐 스필버그 3.5/5


국보 (2025), 이상일 4/5


고당도 (2025), 권용재 3.5/5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 (2013), 요시다 다이하치 4.5/5


어 퓨 굿 맨 (1992), 롭 라이너 4/5


파벨만스 (2022), 스티븐 스필버그 4/5


여행과 나날 (2025), 미야케 쇼 4/5

누군가의 여행은 누군가의 나날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이분법이랄까, 그렇게 여행은 나날과 우연 속에서 만나 정반합의 짝을 이룬다. 이 둘은 꼭 껴안으며 서로가 서로를 덥히고 식히며 온도를 맞춰 간다. 태양이 내리쬐는 더운 여름날이지만 입술이 파래질 정도로 차가운 바닷물이 살갗을 차게 식히고, 꽁꽁 얼어버린 겨울밤이지만 따뜻한 산장의 온기가 나를 보듬어 주듯.


아이들 (2008), 윤성현 3.5/5


사운드 오브 폴링 (2025), 마샤 실린스키 3.5/5


늑대와 춤을 (1990), 케빈 코스트너 4/5


조조 래빗 (2019), 타이카 와이티티 4/5


미스터&미세스 스미스 (2005), 더그 라이만 3/5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 맨 (2025), 라이언 존슨 3/5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 (2001), 피터 잭슨 3.5/5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2002), 피터 잭슨 4/0


담뽀뽀 (1985), 이타미 주조 4/5



※ 영화 정보 출처 - 왓챠피디아

※ 영화 스틸컷 자료 출처 - KMDb(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FILMGR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