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찢는 진동의 밭

『시라트(Sirāt)』

by 부곡하와이

음악은 청각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 촉각적이다. 음악이기 전에 소리, 소리이기 전에 진동인 탓일까. 레이브(Rave) 음악은 특히 더 그렇다. 거대한 우퍼 스피커는 반복적인 드럼과 베이스로 담금질되고, 그 진동은 개개인의 귓구멍보다는 즉각적인 몸의 반응을 노린다. 이는 마치 무릎 반사처럼 즉발적인 생리작용인 것이다. 이렇게 움직이기 위한 음악을 즐기는 레이브 파티는 집단적이지만 개인적이다. 고막으로 해석되기 이전의 혼미한 진동이 가득 찬 공간에서 각가지 몸짓들이 촉발되고, 그 몸짓들은 무작위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는, 긴장과 불안을 자아내는 혼돈의 풍경은 영화 속 척박한 사막의 배경과 어우러져 기묘한 아포칼립스적 진동을 자아낸다.


정신없는 파티를 마무리 짓는 건 모로코 군인들의 투입과 정연한 도열이다. 분주하게 파티장에 도착해서 군인들이 몸으로 세운 한 줄의 방패 대열은 혼돈스러운 레이버들의 무리와 맞선다. 그 대열이 만들어내는 방어선은 군인에게는 깨져서는 안 되는 것이고, 레이버들에게는 깨고 불만을 표출해 내야 하는 대상인 것이다. 이 대립 또한 군국주의가 장악한 전체주의적 아포칼립스의 풍경을 자아내는데, 레이버들은 일단 그 선의 힘에 순응하고 차를 타서 다시 또 다른 선 위에 서게 된다. 결국 그 선에서 탈선하고야 말지만.


여기에서부터 영화는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형식을 그리게 된다. 그곳에 있을지 아닐지도 모를 딸을 찾아 나선 한 가족과, 다시 그 몸을 흔들어 재낄 혼돈의 공간을 찾아 나선 대안적 가족이 합심한 유쾌한 여정을 기대하게 만든다. 여느 로드무비가 그렇듯 이 여정은 선을 피하기도 하고 따라가기도 하면서 좌충우돌 여러 굴곡들을 만들어 나간다. 소리의 진폭이 무음 상태의 직선을 위아래로 흔들어 파형을 그려내듯이, 사막 속 여정의 굴곡들은 리듬을 만들고 선율을 만든다.


나름 차분하게 시작한 음악이 점점 고조되고, 조금씩 다른 전자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소리는 다양해지고 커지면서 파형 위아래의 공간이 서서히 채워진다. 드럼도 이에 맞춰 몸집을 불리고, 전체적인 파형은 아슬아슬하게 양 끝단을 터치한다. 그렇게 넘칠 듯한 긴장을 유지하다 잠시 뮤트. 클라이막스의 해결감을 위한 발칙한 장치다. 파형은 다시 일직선에 가까워져 있다. 아마 이제부터 몇 초 뒤, 다시 소리들이 터져 나와 끝까지 달려 나갈 것이다. 몸도 리듬을 심장박동에 일임한 채 그 질주를 위해 잠시 멈춰 있다.


하지만, 무언가 장비가 고장 났는지 아니면 엔지니어의 실수인지, 뮤트 뒤에 터져 나온 소리의 진폭이 한계를 넘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른다. 고막은 뚫린 듯한데 몸은 자연스레 움직이지 않고 심장은 과열로 멈춰버린 것만 같다. 마치 하울링처럼, 기괴한 소리들은 녹아 뭉그러진 채 서로가 서로를 삼키며 폭발하듯 엉겨 붙는다. 무서울 정도로 살벌하게 고막을 찢어놓곤, 그 상흔에 또 거대한 파열음들을 욱여넣는다. 이제 소리의 파형은 선이 아니라 면에 가깝다. 주먹으로 쥔 연필로 색칠한 낙서처럼 무작위적이고 폭력적인 선들의 덩어리. 로드무비로 시작했던 영화는 갑자기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며 진동한다. 고장 난 스피커가 몸을 난자하는 레이브 파티처럼.


고른 숨으로 차분하게 그려내는 정연한 하나의 선은 잠깐 순간의 방심이나 참을 수 없는 기침처럼 사소한 상황에서도 너무나도 나약하게 삐끗하곤 한다. 영화의 제목 '시라트(Sirāt)'는 최후의 심판 날, 모든 사람이 건너야 하는 지옥 위의 다리를 뜻한다. 그 다리는 머리카락만큼 가늘고 칼날처럼 날카롭다. 어름산이가 외줄을 타는 것 마저도 그리 불안할진대, 그 가느다란 최후의 다리 위에 서 있다는 건 얼마나 아슬아슬한지.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목적지, 전쟁, 국경선, 지뢰와 또 다른 수많은 존재들. 언제 전쟁에 휘말려 죽을지, 식량이 떨어져 죽을지, 길에서 떨어져 죽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 종말론적인 세계 속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선은 '시라트'처럼 얇디얇다. 본래 선이라는 것이 수학적인 개념인 바, 그 선의 존재는 수학적인 개념이 아니라면 파악하기 어려울 테다. 그건 땅에 파묻혀 있는 지뢰처럼 육안으로 관찰되지도 않는 것이다. 존재의 양상이 선 위에 있거나 그 밖에 있거나 둘 중 하나라면, 현실의 존재는 찰나의 시간을 제외하곤 내내 선을 벗어나 있다. 볼 수도 없고 형용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는 선 바깥의 공간. 치명적인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광란한 곳. 우리는 몸을 찢어버리는 진동의 지뢰밭에서 어쩌면 아주 우연적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이곳에 어떻게 지금까지 무사히 왔는지도 모르게, 어떻게 다시 나아가야 할지도 모르게 말이다.



26.01.31.

사진 출처 : 시라트,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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