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
내가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처음 관람한 것은 몇 년 전, 추측컨대 2018년도쯤이다. 21세기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는 이 영화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있었고, 데이빗 린치 감독의 독특한 작품 세계에 대한 여러 소개글들은 나를 이 영화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데이빗 린치 감독의 2006년작 『인랜드 엠파이어』부터 시작해, 그다음 『이레이저 헤드』를 본 후 이 영화로 향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관람한 지 몇 년이 지난 만큼 이 영화들에 대한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하지만 초현실적 이미지들과 이에 얽힌 난해한 경험으로 만큼은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관람한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대한 경험은 비교적 더 자세하게 남아 있었는데, 나머지 두 영화보다는 이 영화가 조금 더 내가 아는 영화 그러니까 나에게 익숙한 영화에 가깝게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쉬웠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여간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재개봉은 꽤나 가슴 뛰는 소식이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 영화의 불가해함을 영화관에서 다시 제대로 경험할 수 있겠다는 것과 더불어, 두 번째 관람으로써 이 영화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다는 일종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내용적으로는 꿈에 대한 영화, 형식적으로는 꿈-영화 또는 영화-꿈이다. 풀어쓰자면 이 영화는 내용적으로는 꿈이라는 주제를 통해 이야기를 꾸려간다. 그러면서 특유의 형식을 통해 이 영화가 그 자체로 하나의 꿈임을, 또 꿈도 그 자체로 하나의 영화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꿈’이라는 주제를 적극적으로 이용한 영화적인 실험으로도 읽을 수 있다.
이 점에서 꿈이 예술사와 사상의 흐름에서 차지했던 위치를 생각해 본다. 프로이트의 저작들에서 제고된 꿈과 무의식의 역할, 살바도르 달리를 위시한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들과 방법론을 살펴본다. 이들을 통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하지만 또 너무나도 불가해한 꿈, 이 영화의 뿌리이기도 한 그것에 대해 다시금 살펴볼 수 있게 된다. 꿈속 세상에서는 비현실적인 장소와 상황이 펼쳐진다. 그리고 우리는 현실 세상에서는 하지 않음직한 사고와 행동을 하게 된다. 꿈속 세상의 논리는 현실의 논리와 다르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깨고 나서 그 꿈을 곱씹어보면 결국 꿈의 재료는 현실의 존재들이며, 꿈의 이야기는 현실의 무의식적 욕망에서 비롯한다. 마치 탈근대가 그 안에 근대를 함축하듯, 꿈은 그 안에 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이 점에 착안하여 그렇게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면서 영화로써 하나의 꿈을 그려낸다. 꿈같은 영화, 꿈-영화. 그리고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영화와 꿈을 비슷한 위치에 올려놓는다. 사실, 영화의 목소리가 말해주듯, ‘이것은 모두 녹음된 것’이다. 즉 영화와 꿈 둘 다 현실에서 추출해 낸 샘플들로 만들어진 가상의 세상이니, 영화는 꿈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실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욕망은 꿈이 되어 감긴 눈앞에 상영되지만, 그 괴이한 이야기를 다시 현실에 돌려놓고자 할 때 본래의 강렬함은 쉽게 탈색되곤 한다. 누군가에게 내가 꾼 괴이한 꿈을 자세하게 이야기해 줄 때, 불가피하게 거쳐야 하는 표현과 소통의 단계들이 너무나도 논리적이기 때문이다. 그 단계들을 거치며 꿈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탈색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조직해 내는 것에 있어 초현실주의는 지나치게 함축적이며 모호하다. 초현실주의 영화들이 영화라기보다는 영상미술에 가깝게 보였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근대주의는 현대사회와 시스템, 그리고 현대인의 논리적 사고와 행동의 기반을 구축했다. 이에 반해 탈근대주의는, 합리성과 이성주의에 취해 경도되어 버린 근대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상의 논리를 탐색한다. 이것이 미약하게나마 내가 이해하고 있는 개략적인 시대 지식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의 틈을 벌리는 데 꿈이라는 요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맥락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익숙한 근대적 논리를 해체한 탈근대적 반反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근대적 논리에 기반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단순히 실험적인 초현실주의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 근거는 이 영화가 이 모든 것을 탄탄한 현실적 논리로 조직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초현실주의 영상(내가 느끼기엔 영상-꿈)을 넘어 영화 같은 꿈, 영화-꿈으로서 거듭난다. 이 영화는 무의식과 꿈을 자동기술의 방식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적 논리를 이용해 그것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흥미로운 영화적 논리로, 누군가의 기이한 욕망을 관객의 부릅뜬 눈앞에 날것의 꿈처럼 올려놓는 이 영화는 시대적 반열에 오르기에 충분하다. 아주 꿈같은 영화다. 영화 같은 꿈이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