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외국인' 그리고 '대치키즈'가 된 아들

by 살찐사마귀

내 아이가 특별한 재능이나 무언가를 가졌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가장 큰 이유는 나와 아내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이 점을 서로 잘 알고 있고, 아이에게 숨겨진 재능 같은 것에 기대하지 않는 점이 지금의 평온함을 유지하게 한 것 같다.


어설프게 영어를 배워 한국말이 서툴던 아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대한외국인'이었다. 하지만 영국에서의 생활을 걱정하듯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즐거움이 컸던 아들에게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는 '행복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학교를 사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상담을 3월에 진행했는데, 담임선생님은 반에서 한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아이가 두 명 있다며, 그중 한 명이 아들임을 알려주셨다. 아들이 못해서가 아니라, 보통은 다 할 줄 알아서 오히려 학교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집에서 무언가 도와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아들은 여전히 내색 없이 학교 수업을 따라갔고, 영국에서 영어를 배웠듯이 한국어를 빠르게 흡수해 나갔다. 부모가 모두 한국 사람이고 사방에서 한국말이 들리니, 영어보다 배우기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영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했던 영상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이 웃고 있는 뒷모습에서 짠함으로 느껴졌다. 노을이 지는 시각이라 주황색으로 물든 하얀 티셔츠에 살짝 굽은 목이 더욱 애틋해 보였다.


이제 좀 학교에 적응해 나갈 무렵, 부모의 욕심으로 강남으로 이사를 오면서 사귀었던 친구들과 헤어졌는데도 아들은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한국에 들어올 때와 비슷했다. 감정을 참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감정 표현에 무딘 것인지 가끔 헷갈렸지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렇게 온 강남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아니, 대치동은 정말 달랐다. 모두가 SKY나 의대를 가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모두가 부유하고 여유가 넘치며 전문직들로 가득할 것만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다만, 알게 모르게 '열심히 달리는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딱 하나, 그나마 영국에서 배워온 영어를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었고, 소위 '3대 영어학원'이라 불리는 곳에 보내는 것 정도였다. 일종의 부모 욕심이었지만, 아들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굳이 이렇게까지 영어학원을 다녀야 하나 싶을 정도이지만, 이곳은 들어가고 싶어도 쉽지 않은 학원이었다. 우스갯소리로 대치동의 엄마들 사이에선 명품백보다 학원 가방을 부러워한다는 곳이다. 물론, 이 영어학원은 학원 가방 따위 주지도 팔지도 않는다.


솔직히 초등학교 1학년이 영어를 얼마나 하겠나 싶었는데,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리터니(Returning Student)도 아니고 오로지 영어 유치원을 나왔음에도(물론 과외도 했겠지만) 그 수준은 상당했다. 내 기준으로는 초1의 수준이 고1 정도였다. '정상인가' 싶다가도, 따라가는 데 문제가 없어 보이고,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이 그 정도를 하다 보니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하튼 매주 시험 보고 발표하는 그 모습이 처량해서 아들에게 하기 싫으면 언제든 그만두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다 최근 그만 다니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서, 다른 학원 레벨 테스트를 여러 번 응시했다. 합격 여부를 떠나 네 군데에 응시했고, 아이가 학원을 별 5개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더니 결국 학원을 옮기지는 않았다. 레벨 테스트를 보면서 학원의 수준을 스스로 파악했던 것 같다. 가고 싶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않았다. 어차피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니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물론 속으로는 너무 궁금했다).


'이 영어학원을 그만 다니고 싶은 것이지, 영어를 그만두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라는 아들의 말에, '욕심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아들은 영어학원을 다니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그 스트레스는 주말에 본인이 하고 싶은 만들기나 운동으로 해소하는 듯싶다.


그러다 며칠 전,

'대치키즈가 무슨 말이야?'


라고 물어보는 아들에게, 뭐라고 답해야 될지 몰랐다. 약간은 당황한 기색으로 나는,


'그게 바로 너야!'


라고 말하면서도 설명을 해주진 않았다. 그리고 설명해주고 싶지도 않다. 난 그저 네 삶이 풍요롭고 행복해지길 바란다라는 이상적인 생각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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