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핫배지 #30

사랑 그리고 에필로그

by 임경주

9/ 현(現)


인연은 절대로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늘의 뜻과 인연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끼리는 서로의 심장이 빨간 색 실로 연결되어 있어,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된다.



시은의 집 앞.

다시 정보를 바꾸고 찾아왔더니, 다행히도 핫배지가 울린다. 그래서 휘나는 포기하지 않고 있다.

어둠이 물러가고 새벽이 밝아왔다. 어느새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졌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 신문을 돌리는 사람.

젖은 몸으로 밖에서 날을 새워 추위에 떨고, 지친 몸에 재채기를 연신 해대다가 잠깐 잠이 들었나?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시은이가 서 있었다.

“…….”

시은은 휘나의 가슴에서 울리고 있는 핫배지를 잠시 바라보다, 그새 또 정보를 바꾸었니? 하는 표정으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시은아!”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말할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냐? 너무하잖아! 나 여기서 꼬박 밤을 샜다고! 나랑 확실히 끝낼 거면 왜 핫배지는 버리지 않는 거야.

핫배지가 울리고는 있지만, 시은은 착용하지 않고 있었다.

왜 이렇게 되고 말았을까.

핫배지고 뭐고, 확! 가슴에서 떼어 바닥에 내 팽개쳐버리고 발로 밟아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시은이와 연결된 마지막 끈이기에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축 쳐진 어깨, 집으로 향하는 지친 발걸음.

핸드폰이 울린다.

눈빛이 살아나며, 급하게 확인한다.

그러나 복순이다.


토요일 밤, 오랜만에 두 사람은 만났다.

“오빠, 시은이 언니 때문에 힘든 거죠?”

복순이는 더욱 수척해진 휘나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아, 아냐.”

“거짓말하지 말아요. 오빠는 거짓말하면 얼굴에 다 써져요.”

“…….”

“오빠, 오빠는 시은이 언니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아요? 얼마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시은이? 괴팍하고, 엉뚱하고, 때론 순수하고, 또 부모가 재벌이고. 좋겠다, 재벌이어서. 그래서 그렇게 건방진 거냐! 또 뭐가 있지?

휘나는 시은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이상, 아는 것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미치도록, 죽을 만큼 시은이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만 확실했다. 그러나 그 사랑을 쟁취하기에는 자신은 너무도 무기력했다.

시은이는 특별하니까.

갑자기 시은이 냄새가 났다. 햇볕에 잘 마른 빨래냄새. 그에 비해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서는 습기에 절은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피어올랐다.

“시은이는……. 특별해. 나와는 너무도 달라.”

별을 바라보는 복순이의 눈, 그 젖은 눈을 들어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 누구나 다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오빠도요. 노력하기에 따라 다르지 않겠어요? 난 오빠가 시은이 언니랑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요.”

휘나의 눈이 발갛게 충혈 되고 어깨가 흔들리더니 힘겨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끝났어.”

“아니요, 진심은 진심을 알아본다고 했어요. 특별하든 특별하지 않던 간에 오빠의 진심, 시은이 언니가 분명 알게 될 거에요.”

동생 앞에서 눈물이 날 것 같아, 휘나는 벌떡 일어났다.

“고마워. 그만 들어가자.”

휘나가 앞섰고, 복순이가 뒤를 따른다.

오빠, 안녕.

언니랑 행복해야 해.

“오빠, 이거 받으세요. 사실, 이 핫배지 제것이 아니었어요. 주운 거예요. 신기하죠? 오빠 거랑 정말 똑 같아요. 속여서 정말 죄송해요. 저 먼저 들어갈게요!”

“으, 응? 뭐, 뭐라고? 야, 야! 복순아!”

똑같이 생긴 핫배지를 손에 들고, 휘나가 불렀지만 복순이는 집을 향해 뛰었다. 주책없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참 주책이다.

차복순!

이런 스토리, 삼류소설에도 흔하잖아!

하지만 눈물이 계속 흘러나온다. 민희가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


많은 시간이 흘렀다.

시은이랑은 처음처럼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린 채로. 복순이가 실토하며 내놓은 핫배지 역시 서랍 속에서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었다.

가을은 있는 듯 없는 듯 성큼 지나가 버리고, 겨울이 찾아 온지도 며칠 되지 않은 것 같은 데 겨울방학을 맞이했다.


일찍 귀가하는 수많은 아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운동장을 떼 지어 가로지르고 있다. 시은과 휘나도 그들 틈에 섞여 있었다.

휘나가 이순신장군 동상 앞을 지나갈 때,

“미쳤어?”

라는 시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은이는 저 만큼 앞에 가고 있었다. 이제 교문을 빠져나가면 공포의 검정색 고급승용차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데, 미련이 남아서일까? 휘나의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시은아!”

휘나가 부른 게 아니다.

시은이가 뒤돌아본다. 그러다 휘나와 눈이 마주쳤다. 휘나는 깜짝 놀랐고, 시은이를 뒤에서 부른 녀석이 떡! 하고 등장했다. 바로 인성이다.

“방학 잘 보내.”

“응, 너도. 일부러 나온 거야?”

시은이가 활짝 웃으며 인성이놈과 대화를 나눈다.

“…….”

휘나는 앞으로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다가 에라, 하며 두 사람을 지나쳐 버렸다. 뒤에서 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체육관 가는 길이었는데 너 보여서 달려왔어.”

“그랬구나. 고맙다야. 너, 이번 방학 때는 검도 더 열심히 해서 시합도 다 뛰고 원하는 대학도 가야지?”

“응! 물론이지! 하하하!”

“호호, 그럼 잘 가.”

“응.”

휘나는 발걸음을 천천히 했다. 뒤에서 인성이 방향을 바꾸어 걷는 소리가 들려왔고, 시은의 발자국 소리도 들려왔다.

교문이 10미터도 남지 않았다. 교문을 통과하면 방학 동안 얼굴보기 힘들 테고 3학년이 되어 반이 갈리면 이제 완전히 끝이다.

돌아서자, 돌아서서 말하자. 이 천하의 미련한 놈아, 인성이처럼 자연스럽게 방학 잘 보내라는 말이라도 하면 되잖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돌아서려는 그 때다. 휘나 앞에 검은색 정장을 입은 대머리 덩치 세 명이 딱 버티고 있었다. 모두 쌍둥이처럼 대머리에 검은색 썬글라스를 착용했다. 덩치도 다 똑같이 거대했고, 대통령 보디가드인 마냥 한쪽 귀에는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언제, 이 아저씨들이 있었지? 시은이 운전기사는 대머리도 아니고, 교문 안에 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이 덩치들은 뭐냐?

그들의 손에는 매우 정교해 보이는 작은 사각 모양의 첨단기계가 들려있었다. 시은이에게 볼일이 있나? 하는 순간,

“학생, 잠깐만.”

하고 휘나를 가로막는다.

“왜요?”

뒤에서 시은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 말고 뒤에 따라오는 저 예쁜 여자 애에게 볼일 있는 거 아닌가요? 라고 물으려는 그 때, 앞을 가로막은 덩치가 휘나의 손목을 붙잡는다.

“왜 그래요?”

휘나는 깜짝 놀라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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