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의 요물들은 인간의 몸을 바꿔가며 불사의 삶을 살아왔다.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천년의 세월을 기다리며.
전쟁발발 하루 전,
월악산자락과 충주호의 절경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 탄지(炭枝).
동구 밖 아이들은 달팽이집놀이에 푹 빠져 있었다.
색동한복을 곱게 차려 입어 유난히 예쁜 소녀는 땅바닥에 그려진 달팽이집을 따라 숨 가쁘게 뛴다. 선을 밟으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선 옆으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는 동무들의 응원을 받으며 앞사람을 만났다.
가위, 바위, 보.
소녀의 승리였다. 소녀는 달팽이집 밖에서부터 시작해 나선의 회전을 따라 중심점(상대방의 집)까지 들어와 열 명의 도령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이끌었다.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
“이겼다!”
새색시들처럼 어여쁜 소녀의 친구들이 환호한다. 소녀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었다. 소녀의 웃음소리가 마을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승리도 승리지만, 달팽이 선을 따라 뛰는 동안 어깨를 스치며 만나는 친구들과 마음이 열렸고 하나로 통했다.
달팽이집놀이의 묘미였다.
“다시 해!”
패배의 씁쓸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도령 한 명이 재경기를 제안했다.
“좋아!”
다시 편이 갈라졌다. 도령들은 달팽이중심에서 벗어나 밖으로 모였고, 소녀들은 달팽이집 중앙에 모였다.
“자, 시작!”
양편의 소년소녀들이 힘차게 발을 박차는 바로 그때였다.
“저, 저기……! 꺄아아악!”
색동한복의 소녀가 달리기를 멈추고 밤나무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비명을 질러댔다. 소녀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마을 초입을 알리는 밤나무 밑으로 피처럼 빨간 붉은색이무기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기어 내려가고 있었다.
“뱀이다!”
“아냐, 구렁이야!”
“뱀이라니까!”
“아냐, 구렁이라니까! 저렇게 큰 건 구렁이야!”
아이들이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뱀이든 구렁이든 잡자!”
한 도령이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는 소리쳤다. 모두 멍하게 서 있다가,
“그래, 잡자! 때려잡자!”
하며 밤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와와!”
도령들이 일제히 작대기를 하나씩 주워 들고는 밤나무를 향해 달려가자, 소녀들도 뒤를 따랐다.
“야, 야! 안 돼! 가지 마! 그건 뱀도 아니고 구렁이도 아니야!”
색동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만 홀로 남았다. 소녀는 알고 있었다. 일 년 전, 이무기의 습격으로부터 간신히 살아난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저건 이무기다.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이무기들은 한 번 정한 먹이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단다.
소녀는 이무기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야부법사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가지 마! 가지 말란 말이야!”
소녀는 달팽이집을 벗어날 수도, 친구들을 따라갈 수도 없었다. 망설이고 있는 그때, 한줄기 바람이 불어왔다. 때 아닌 강풍이었다. 강풍이 일으키는 먼지는 땅바닥에 그려진 달팽이집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다. 치마가 날린다. 소녀는 바람을 등지고 뒤 돌아 섰다. 두 눈을 꼭 감았다.
먼지가 사라지고, 소녀가 눈을 뜨자 눈앞에 시커먼 검은색이무기 한 마리가 아가리를 떠억 벌리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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