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화 #23

이기어검

이성을 잃은 도윤의 움직임은 성난 원숭이 그 자체였다. 우냉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원숭이와 곰의 처절한 싸움이었다.

도윤은 원숭이처럼 날렵한 움직임으로 재주를 부려가며 우냉선의 시야를 어지럽히는가 싶더니 어느새 상대의 등 뒤에 올라타 있었다. 곰의 손이 도윤의 머리 위로 우악스럽게 스쳐지나간다. 스쳐도 한방이었다. 도윤은 꽥꽥거리는 원숭이의 성난 소리와 함께 상대의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붙잡고는 쥐어뜯어버린다. 망건이 찢어지고 동곳이 빠져나와 튀는 것을 도윤이 허공에서 낚아챘다. 우냉선의 머리가 산발이 되어버렸다.

곰이 네발로 엎드려 몸을 털 듯, 등 뒤에 달라붙은 원숭이 한 마리를 어쩌지 못해 괴로워하더니 다시 똑바로 섰다. 잔재주를 부리던 원숭이가 곰의 손아귀에 붙잡히기 바로 직전이었다. 도윤이 다시 거꾸로 곰의 등을 타고 내려와 두 다리 안쪽을 통과해 정면으로 올라왔는데 우냉선에게 똑바로 안긴 꼴이었다.

“!”

우냉선이 흠칫하더니 이놈 제 발로 찾아온 게 너무 반가워 도윤의 머리통을 깨 부서 버릴 듯 붙잡고는 소리를 내지르며 포효하는 순간이었다. 도윤이 동곳을 들어 우냉선의 한쪽 눈에 박아버렸다.

“크악! 내 눈!”

고통으로 인해 투법의 주술이 순간 풀렸다. 우냉선의 동곳은 암기 그 자체다. 치명적인 맹독이 묻어 있다. 우냉선이 자신의 손으로 눈알을 직접 뽑아냈다. 독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분노에 찬 우냉선이 가슴을 펴고는 똑바로 서서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며(한쪽 손에는 자신의 눈알을 든 채로)포효한다. 가슴팍을 치며 고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 때 도윤은 우냉선의 머리 꼭대기에 서 있었다. 정수리를 한 발로 밟고 서서 자신의 얼굴을 박박 긁고 있는 중이었다. 뭔 일 있었냐는 표정으로 여유가 만만했다. 바로 그 때다. 홍화가 동사십낭을 보는 순간, 도윤도 동사십낭을 보았다. 도윤이 즉시 동사십낭을 향해 동곳을 던져버렸다.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동곳을 동사십낭은 자신이 들고 있는 곰 인형으로 막아냈다. 인형의 가슴에 동곳이 박히는 순간 우냉선이 더욱 더 끔찍한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도윤은 상대가 아프든 말든 관심 없이 그저 원숭이처럼 우냉선의 머리에 쪼그려 앉아 머리카락 사이를 뒤져가며 이를 잡아준다. 이물질을 발견하고는 입안에 넣고 씹다가 우냉선의 머리를 박차고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렇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그 때였다.

텅!

어느새 지면을 밟고 솟구쳐 오른 우냉선의 손아귀에 도윤은 발목을 붙잡혔다.

“?”

원숭이의 잔재주는 끝이 났고 전세가 역전되는 순간이었다. 도윤은 그대로 끌려 내려와 바닥에 내리꽂혔다.

발로 밟히고 다시 머리를 붙잡혀 세워져 주먹으로 쥐어터지기를 반복했다.

홍화는 도윤이 우냉선에게 마구 짓밟히고 있는 상황에서도 신조를 제압하고 있는 종청괴와 주술로 우냉선을 다루고 있는 동사십낭의 표정과 동작에만 집중했다.

도윤을 통제하고 있는 주술을 과연 언제 풀어야 하는가.

홍화는 그것을 계산하고 있는 중이었다.

홍화가 도윤에게 걸려 있는 원숭이 주술을 풀고 혼멸검을 다시 손에 쥐면 지금 눈앞의 모든 적들을 다 베어버리고 신조를 구출해 동사십낭을 제압할 수가 있다. 하지만 홍화가 주술을 푸는 순간, 동사십낭이 다른 인형으로 도윤에게 즉시 주술을 걸어 통제할 것이다. 동시에 두 명을 주술로 통제하는 것은 어려울 테니 우냉선이 주술에서 풀려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냉선이 정신을 차리고 주술에 걸려 꼼짝 못하는 도윤을 베어버리면 그 때는 모든 게 끝난다. 홍화는 도윤을 지금처럼 계속 주술로 통제하거나, 그 통제를 풀었을 경우에는 우냉선을 주술로 통제해 잡아내든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