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의 중재
도윤이 멍한 눈으로 신선을 올려다보았다.
홍화가 즉시 합장을 한다. 동사십낭이 공포와 증오가 뒤섞인 표정으로 온 몸을 부들부들 떠는 바로 그 때다. 저 아득한 에메랄드의 바다 수평선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빛의 폭발은 귀를 찢는 천둥소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청아하고도 애잔한 선율이 부드러운 파도처럼 흘러와 타워크레인을 감싸고 도화나무를 흔들고 지나갔다.
누구하나, 손가락하나 까딱거리는 이가 없었고 숨을 쉬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웠다.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을 하는 그 때 신선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 음성은 모든 것을 감싸 안았다.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회한과 애정이 담긴 여인의 음성이 모두를 사로잡는다.
“지상(地上)의 업보(業報)가 하늘의 이치(理致)를 어지럽히노라. 이 싸움은 본디 천도(天道)의 섭리가 아니거늘.”
타워크레인 가장 높은 곳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살짝 떠 있는 것인지 모를 우아한 자태로 서 있는 신선이 도윤을 내려다보았다.
도윤과 눈이 마주쳤다.
“누구세요?”
도윤이 묻자 신선이 합장을 한다.
“어리석은 중생의 업을 떠나 마음으로 보시는 자여. 저의 모든 존경과 예를 갖춰 인사 올립니다. 소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서천(西天) 부처님의 연화좌(蓮花座)를 모시는 두 등불 중 우 등불의 심지였습니다.”
“등심지요? 그 양초 심지 같은 거 말하는 거 맞나요?”
“네.”
“아니 어떻게 등심지가 사람의 모습을... 혼멸검은 어디로 가버리고?”
“연화좌의 좌우등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자, 부처님의 깨달음과 자비를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였습니다.”
연화좌의 부처를 모시는 양쪽등불의 심지는 본래 무형(無形)의 존재이거나, 빛과 기운 그 자체로 존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 심지들은 오랜 시간 부처님을 모시면서, 중생(衆生)의 고통과 인연에 대한 깊은 연민을 품게 된다. 특히 지상에서 피고 지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고집멸도와 생사고락에서 후회와 회한으로 점철되는 인간의 감정은 심지(心志)에게 하나의 인격을 부여하고 끊임없이 흔들었다.
이러한 간절한 염원과 더불어 좌우심지는 천년 인연의 고리를 지켜봐야 할 사명을 부여받게 된다. 부처는 좌우 심지에게 색즉시공의 깨달음으로 마음의 눈을 가진 자와 인연의 불꽃을 상접(相接)하는 기간 동안은 한시적으로 인간이 가장 갈망하는 아름다운 형상을 취할 수 있는 권능을 허락한 것이다.
“부처께서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겨 그 악업을 끊고자 스스로 등 심지를 거두시고 빛 대신 어둠을 택하셨으니 그 심지 하나를 청하로 이름 지으셨고, 나머지 심지 하나는 자하로 이름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그쪽 이름은.... 청하? 아니 자하?”
“네, 제가 자하입니다.”
자하가 고개를 돌려 신공을 보았다. 순간, 종청괴가 뜨끔 한다. 자하는 지금 신공 속에 갇혀 울부짖고 있는 신조가 걱정되는 것이다.
“혼멸은요?”
도윤이 다시 물었다.
“혼멸은 부처께서 저 자하로 만든 부러지지 않는 검입니다. 원혼과 함께 까르마(업)를 벤다하여 혼멸이라 불리우 게 된 것이죠.”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