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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홍화 2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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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화 #25

흡성대법

by 임경주

잡아야 한다. 그것이 바람일지언정, 구름일지언정 어떻게든 붙잡아 그 힘을 무력화 시켜야 했다. 그 어떤 치명상을 입더라도 혼멸검을 붙잡는 것, 그것은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동사십낭을 지켜야만 자신도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동사십낭이 죽으면 자신들도 끝이다.

우냉선과 종청괴를 비롯한 7악들은 동사십낭의 절대악을 자양분을 삼아 그림자처럼 불사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혼멸검이 눈앞에서 사라진 순간, 우냉선이 흡성대법의 초식을 발동했다.

보이지 않아도 기의 흐름에 따라 혼멸검의 움직임을 포착해낸다.

아지랑이처럼 다가온다!

“놈!”

도윤의 마음과 하나 된 혼멸검은 우냉선의 목을 정확히 노리고 들어왔지만 우냉선의 두 손안에 걸려들었다.

마치, 우냉선의 두 손이 강력한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자기력으로 혼멸검을 공중 부양시켜 가둬버린 것과 같은 꼴이었다.

“!”

도윤이 깜짝 놀랐다. 공격이 허무할 정도로 막혀버렸다. 더군다나 혼멸검이 적의 두 손안에 갇혀 있다. 빼낼 수가 없다. 우냉선이 가진 힘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실로 엄청난 적, 막강한 상대다.

“킥!”

우냉선은 그저 혼멸검을 두 손안에 가두어 붙잡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흡성대법은 상대가 무엇이 되었든 가지고 있는 기운을 모조리 빨아버린다. 그리고 그 빨아들인 힘을 자신의 힘으로 만든다.

혼멸검이 왼쪽으로 도망치려면 우냉선의 움직임은 좌측으로 이동하고, 오른쪽으로 도망치려면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반복하며 혼멸검이 가진 기운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흡성대법…”

홍화가 알아차렸다. 혼멸검은 단지 우냉선의 양손아귀에 갇힌 것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도령! 빨리 빼내야 해요!”

도윤도 혼멸을 빼내고 싶다. 하지만 손가락이 벌벌 떨린다. 아니, 온몸이 다 떨린다. 혼멸을 붙잡은 채로 공력을 빨아들이고 있는 상대의 힘이 그만큼 무시무시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우냉선은 혼멸과 하나되어 있는 도윤의 천년내단까지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도윤의 두 발이 질질 끌려 점점 우냉선에게 가까워지고 있다. 홍화가 그런 도윤의 허리를 붙잡고 버티니 두 사람 다 끌려가는 꼴이 되었다.

우냉선이 혼멸검과 도윤이 가진 모든 힘을 자신의 공력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빠지고 없던 자리의 눈알이 다시 생겨나 흰자위가 뒤집어지더니 홍채가 자리 잡혔다.

눈알을 회복한 것이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우냉선이 공력을 회복한 채 광기 어린 웃음소리를 터트렸다.

“애송이 놈! 네놈의 검과 네놈이 가진 천년내단의 힘은 아주 좋구나! 하하하하! 하하하하!”

“잘했다! 우냉선! 역시 7악의 맹주답구나!”

동사십낭이 이제야 안심이 된 듯 가슴을 활짝 펴고는 소리쳤다. 몸에 달라붙은 원혼들은 더 이상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저 두 놈 년 흡성대법에 질질 끌려가는 꼴 하고는! 종청괴 보고 있느...?”

동사십낭이 신공으로 신조를 제압하고 있는 종청괴에게 시선을 옮기는 바로 그 때다. 종청괴는 마침내 한계에 다다랐다.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신조를 억압하던 힘이 풀리며 피를 토하고 무릎을 꿇었다.

“3악!”

종청괴는 동사십낭의 7악 중 세 번째 악이다. 신공이라는 거대한 쇠종을 무기로 삼아 무엇이든 그 안에 가두어버리는데 신조를 가두는 동안 모든 공력을 사용했고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른 것이었다.

“이 종청괴, 한번 붙잡은 걸 그냥 풀어줄 것 같으냐?”

종청괴는 신조를 더 이상 가두지 못하게 되자, 마지막 남은 힘을 가장 악랄하게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우냉선에게 질질 끌려가고 있는 도윤과 홍화를 향해 씩 비웃었다.

“혼귀주(魂歸呪)!”

종청괴는 손가락을 꺾어 기괴한 인을 만들더니, 자신이 방금까지 가두고 있던 신조를 향해 마지막 주술을 던졌다.

쾅!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신공이 로켓처럼 쏘아져 올랐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 충격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우냉선이 붙잡고 있던 흡성대법의 힘을 잠시라도 무력화시켰다. 우냉선의 집중을 방해한 것이다.

종청괴가 발동시킨 혼귀주라는 주술은 신조가 신공으로부터 탈출할 때의 순간을 노리고 신조의 힘을 역이용한다. 이 주술을 위해 지금까지 신조를 상대로 고문에 가까운 신공의 종소리와 회전 그리고 수천도의 고열을 뿜어냈다. 지속적으로 악랄하게 신조를 괴롭혀 온 것이다.

혼귀주. 신조가 해방되는 순간을 노려 그 정신을 잠시나마 원한 덩어리로 변질시키는 무서운 주술이다. 비록 신조가 부처님을 모시는 연화좌의 등 심지였기에 주술이 완전히 먹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신조는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종청괴의 속박에서 풀려난 신조는 즉시 부엉이의 형태를 벗고, 폭발적인 불꽃과 함께 불사조의 형태로 변해 하늘을 맴돌았다. 그러나 종청괴의 악랄한 주술로 인해 여기가 어디, 나는 누구? 그냥 열 받고 화가 나 미치겠는데 지상의 아무나 다 쪼아 먹어버려? 이러면서 하늘을 맴돌며 먹이를 찾고 것이었다.

“종청괴도 잘했다!”

동사십낭은 끝까지 신조를 붙잡고 있는 부하의 악랄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신조와 혼멸은 자신의 천적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천적을 두 부하가 이렇게도 훌륭하게 제압하고 있으니 너무나도 좋은 것이다.

동사십낭은 이 싸움이 이제야 겨우 끝났다고 생각했다.

우냉선이 더 이상 천년내단의 힘을 흡수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할 때였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도윤은 모든 것이 다 쪽 빨리고 빈 껍질만 남을 것이다.

하지만 신조가 하늘을 맴돌고 있는 순간 우냉선의 얼굴에 의문표가 맴돌기 시작했다. 흡성대법이 더 이상의 공력을 가져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냉선이 동사십낭의 표정을 보았다. 주군이 지금 방해하는 겁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

동사십낭이 난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왜 더 이상 흡수되지 않는 걸까?

“!”

우냉선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아낸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도윤이 오히려 천년내단의 힘을 끌어올려 흡성대법의 힘과 정면으로 부딪쳐버린 것이다. 도윤은 상대의 흡성대법이 아무리 강력한 것이라도 홍화가 가진 천년내단의 힘과 그 순수함을 믿었다.

동사십낭도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도윤에게 맹렬히 돌진했다. 거대한 뱀의 형태로 변했다. 아가리가 쫙 벌어졌는데, 턱관절을 무시하고 180도로 열렸다.

홍화가 두 눈을 질금 감으며 도윤의 허리를 꽉 붙잡았다.

“둘 다 한입에 먹어주마! 드디어 천년내단을 삼키는 구나!”

바로 그 때 도윤이 홍화와 눈빛을 교환했다. 홍화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달팽이등껍질을 반대로 회전시켰다. 불꽃을 튀기며 야부법사의 염주들이 밖으로 튀어나왔다. 홍화는 지금 원혼들을 다시 소환하는 것이었다. 원혼들이 달팽이껍질로 다시 소환되는 과정에서 동사십낭의 몸을 묶은 채로 통제했다.

거대한 뱀의 아가리가 도윤을 향해 덤벼들다가 그 방향이 원혼들에 의해 틀어져 도화나무에 쳐 박혔다. 그 힘에 의해 홍화도 도윤의 허리를 더 이상 붙잡지 못하고 동사십낭이 처박힌 곳으로 날아가 떨어진다. 도윤이 도화나무가지를 조정해 홍화를 안전하게 받았다.

“이놈들이!”

뱀의 아가리가 다시 도윤을 목표로 하고는 혀를 날름거린다. 무서운 속도로 덤벼들었다.

도윤은 동사십낭의 돌진을 공중제비로 피하며, 손가락을 세워 혼멸검을 통제한다.

“크악!”

혼멸검이 우냉선의 결박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우냉선의 양손가락을 갈가리 찢어버리는 것도 모자라 손목 하나를 허공에 날려버렸다.

“혼멸! 가라!”

혼멸검이 도윤의 의지에 따라 회전과 함께 날아 오른다. 이기어검으로 동사십낭의 몸을 향해 다시 돌진했다.

“천년의 업보를 끊을지니!”

도윤의 의지에 따라, 혼멸검은 모든 속박을 뚫고 동사십낭에게 돌진했다.

홍화가 달팽이등껍질을 다시 반대로 회전시켜 원혼들을 풀었다. 원혼들이 동사십낭의 몸에 달라붙고 동사십낭의 머리에도 달라붙어 눈을 가로막아 시야까지 가두었다. 동사십낭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을 배배꼬았다.

동사십낭은 공포에 질려 방어하려 했으나 늦었다. 혼멸검은 빛의 속도로 날아와 동사십낭의 몸을 베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원혼들이 하나 둘 사라져간다. 한 때 혼례를 치렀고 신혼 첫날밤이라며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었던 도윤의 신부들의 희생으로 거대한 이무기의 몸을 베어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혼멸검은 동사십낭의 몸을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여섯 번을 연달아 갈랐다.


첫 번째, 머리.

두 번째, 목.

세 번째, 심장.

네 번째, 몸통.

다섯 번째, 허리.

여섯 번째, 꼬리까지.


우냉선이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것은 종청괴도 마찬가지였다. 우냉선의 하나 남은 손은 이미 손가락이 잘려나가 젓가락질도 못할 정도로 회복이 불가능한 정도였다. 종청괴는 피를 토한 뒤 그대로 바닥에 몸을 눕히고 말았다. 모든 공력을 다 사용한 것이었다. 둘 다 동사십낭이 죽어버리면 그들이 누려왔던 불사의 삶도 그 끝을 맞이한다.

거대한 이무기의 몸체가 정확히 여섯 토막으로 잘려나가며 피와 살점을 공중에 흩뿌렸다. 잘려나간 조각들 사이로 수많은 원혼들이 해방되어 환희의 비명을 내지르며 흩어졌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킥킥킥킥!”

동사십낭은 마지막까지 발악하듯 처절한 웃음 섞인 비명을 내질렀으나, 이미 산산조각 난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동사십낭의 두 눈은 공포와 경악으로 가득 찬 채 생기를 잃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 홍화가 도화나무 위에서 한숨과 함께 내려와 도윤에게로 향했다. 도윤이 홍화를 안아주었다.

“끝났어. 이제 괜찮아.”

“?”

하지만 홍화가 우냉선과 종청괴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왜?”

“저기....”

도윤도 뒤를 돌아보았다. 우냉선과 종청괴가 공력을 회복해나가기 시작했다.

동사십낭이 멸했는데 그의 절대악에 의존해 불멸의 삶을 살던 우냉선과 종청괴가 멀쩡하다?

함께 소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력을 회복하고 있다?

이게 뭐지?

도윤이 무간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랑이 지켜보고 있다. 모든 것을 파악했으리라.

다시 시선을 돌려 동사십낭의 도막난 몸을 보았다.

도막난 여섯 개 몸이 허수아비로 뒤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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