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창동댁 Nov 17. 2022

임신과 백수생활

휴직 4개월 차. 하루는 생각보다 금방 흘러간다.
계획하지 않고 늘어져만 있다 보면 자신이 한없이 잉여롭게만 느껴져 울적해질 때가 많다.
물론 내겐 백수생활이 정당함을 주장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그건 내 아이를 지키는 일_
남들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8,9개월까지 잘만 품고 아이 낳고 하는데, 나는 그럴 수 없음이,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름을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다.
임신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수차례 수술대에 누울 일이 있었을까..
나름 건강을 자부하며 살아왔던 삶이라 생소하고 두렵고 원망하며 그렇게 살아오기를 몇 년.
우여곡절 끝에 품을 수 있었던, 지금도 유지해 감이 기적 같은, 그런 감동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마음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중 하나가 관계다.
급히 입원하고 안정을 취해야 하는 관계로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왔던 직장생활.
그곳에서만 10년을 일했지만 매일 자주 나눴던 대화들이 공중으로 날아갈 때 관계들도 같이 날아갔나 싶으리 만큼 느껴지는 그 단절이 두려웠다. 원망하거나 서운한 건 절대 아니다. 나름 날 배려해 주시는 거라는 걸 알지만 어떤 소속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 상실감을 받는 일이었다. 관계를 잘 맺지 못했구나 하는 자책감이 들면서도 얼른 포기해야지 하는데 실은 잘 되지 않는다. 일중심보다는 관계중심으로 살아왔던 나인데 집에서만 하루를 보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고, 또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될까 봐 소식 끊고 고립된 삶을 살고 있는 까닭에 더 마음이 어려울 수도 있다.


태교를 생각하며 밝고 기쁘고 힘차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매일 아주 간절하게 하면서도 실상은 이러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임신 중 찾아오는 우울증이라고 그렇게 치부해 버리고만 싶은데 내 마음은 실은 내가 잘 안다.
이따 마스크를 끼고서라도 잠시 산책을 다녀와야겠다. 30분을 넘기지 않게 잘 계획해서..
무거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털어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2018년 여름

작가의 이전글 오후 1시의 봄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