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즈음 아이는 나중에 입학할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학교생활이 걱정되기도 했고,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인기가 대폭 하락해 한 반 정원이 1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도 유치원 선택에 큰 몫을 차지했다. 병설유치원이라 초등학생들과 같은 급식을 해야 하는 건 마음에 여전히 걸렸다. 매운 음식이라곤 입에도 못 대는 아이는 반찬 하나 입에 넣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매운맛에 놀라 얼른 국물을 입에 넣는다. 하지만 부대찌개의 매운맛에 다시 입을 공격당하고는 수저를 놓고 물을 들이켰을 것이다. 급식표를 보면서 오늘은 몇 개나 먹었을까 생각하는 것이 하루 일과에 포함되었다.
세브란스 병원까지는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다. 진료 시간은 오후 2시 20분. 초진인 데다 병원 근처 차 막히는 것까지 고려하면 12시 반쯤 출발해야 했다. 남편은 오전 근무를 채 마치지도 못한 시간에 집으로 퇴근했고, 아이만 유치원에서 점심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날 남편과 내가 점심을 어떻게 챙겨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병원에서 근무할 때 학회 참석과 보수교육 일정 때문에 1년에 한 번은 갔던 곳이 분명 맞다. 그런데 이렇게 낯설 수가. 어린이 병원 소아 정신과를 찾아야 했다. 병원에서는 본관 주차 후 2층 (실내 이동), 3층 (실외 이동) 연결통로로 이동하면 편하다고 카톡 메신저로 여러 번 알려주었지만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지나가는 직원에게 길을 묻는다 한들 그 설명조차 알아들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아이가 평범했다면 들어오지 않았을 세계였다.
신체 계측 후 그동안 다른 병원에서 검사했던 기록지들을 간호사에게 건넸고, 우리는 진료실 앞에서 대기했다. 대기시간이 길 것을 대비해 색종이와 아이가 좋아하는 워크지를 잔뜩 챙겨 갔는데, 긴장감에 거의 꺼내지 못했다. 순서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마스크와 안경으로 인해 거의 가려진 얼굴로 차분히 아이와 간단한 대화를 이어갔다. 핑퐁 대화가 여러 번 오갔고, 아이가 동문서답을 하자 멈추셨다. 대략 아이에 대해서 파악이 되었다는 끄덕임 후에 어떤 것이 궁금하고, 왜 오게 됐는지를 물으셨다.
인지는 평범했지만 숫자와 글자, 신호등과 터널 등에 집착했으며 친구가 옆에 있어도 혼자 놀았고, 화용언어가 엉망이라 사회성 끌어올리는 데 우리 부부는 온 힘을 다 썼다. 아이는 검사 결과지로는 자폐가 아니었지만, 상호작용의 질 저하를 놓고 봤을 때 자스 그 경계선일 거라고 여럿 검사를 기반으로 판정을 들은 바 있다. 의미 없는, 상황에 맞지 않는 소리를 할 때마다 그건 이상한 말이야, 마음속으로는 해도 되지만 입 밖으로 내뱉어서는 안 돼.. 하며 그나마 평균이었던 지능지수에 기대하며 말했다. 아이는 말을 할 때마다 거르면서 했을 텐데, 미안하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러면서 언어와 놀이치료, 감통수업, 사회성 그룹 수업을 센터에서 매주 받았고, 그룹으로 하는 사교육(종이접기, 보드게임 학원 등)을 통해 아이가 일반화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평일엔 교육비로 돈을 쏟아부었고, 주말에는 박물관, 유아숲, 식물원, 놀이동산으로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만 4세를 지나고, 6세가 되면서 아이가 많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쏟아부은 치료 덕분인지, 커가면서 인지가 발달되서인지 모르겠지만, 그간 뇌불균형이라고 생각했던 게 맞았나 싶을 정도였다. 센터 피드백이 나쁘지 않았고, 이상 행동들도 많이 소거되어 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말했다. 만 4세 때 병원에서 자폐 스펙트럼 경계일 것이고, 그나마 지능이 높기 때문에 예후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진단명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들었고, 우리 부부가 봤을 때 아이는 좋아지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히 말씀드렸다.
의사는 조심스레 자폐 방향보다는 약간의 부산스러움에서 나오는 사회성 부족 같다는 말씀을 하셨다. adhd를 진단하기에는 아직 어리기에 만 6세가 지나고 풀배터리( 종합심리검사)를 해보자고 하셨다. ad로 진단받을 경우 약물을 쓸 수도 있다는 얘기를 나눴고,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폐는 치료약이 없지만, ad는 맞는 약을 적절히 쓴다면 좋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2번의 재진을 더 봤고, 이제 8월에 풀배터리 검사를 앞두고 있다. 지난번 재진 때 검사 후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봐서는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라고도 하셨다. 더이상 첨언해 줄 것이 없다는 말씀까지 해주셨다. 너무 기쁘면서도 참 이상했다. 무엇에서 시작되었을까, 아이를 그저 존재로 사랑해주지 못하고 결핍이 있는 모습만 걱정스레 바라봤던 지난날이 속상했고 아쉬웠다. 아이의 눈에 걱정하는 내 모습이 그대로 담겼을 텐데, 참으로 미안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다.
아이를 센터 수업에 들이밀고는 40분간 대기실에서 써 나갔던 글들. 그걸 쓰지 않으면 답답해 살지 못할 것 같아 쓰기 시작했던 글들. 아이가 좋아진 까닭에 '느리지만 괜찮을 거야'는 이제 마무리를 지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