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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r 03. 2023

지난 3년간의 희로애락

너덜너덜 커리어우먼이 되어가는 일기


어제는 회사에 입사(2020.3.2 월)한 지 만으로 3년이 되는 날이었다. 3년은 길고도 짧은 시간이어서 시간을 헤아리면 아득하기만 한데,  시간이 다 어디로 흘러가버렸다는 게 놀랍다.

(이런 속도로 살다 보면 환갑 금방, 팔순 순삭, 임종도 금방 맞을 것만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의 끝에 

지금의 나는, 3년 전과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실장님들이랑 점심 먹으면서 벌써 여기서 일한 지 만으로 3년, 4년 차가 됐다고 말씀드렸더니 이제 젊은 피 수혈해야 되니까 눈치껏 퇴사해 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ㅎ ㅏ ㅎ ㅏ ! ....ㅎ(무시)





1년 차(2020)에 나는 의기양양했고 행복했다. 뚜렷한 방향이나 목적 없이 관성적으로 일했고 자주 게을렀다. 나는 책임도 의무도 없었다. 들뜬 마음에게는 심상한 일도 심상치 않았다. 전문직, 커리어우먼, 좋은 회사와 오피스룩, 나에게 친절한 사람들, 새로운 네트워크
행복했다. 세상에는 재밌는 게 너무 많았고 아 행복했다.


2년 차(2021)는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됐었다. 재밌었다. 일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매주 새로 만들어야 했으므로 나는 거의 매일 밤을 새웠지만 그래도 재밌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 겪는 종류의, 불특정 다수와 관계를 맺으면서 생기는 트러블을 경험했다. 나는 스트레스를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술을 마시고 돈을 많이 썼다.

술을 마실 때, 돈을 쓸 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쉬운 방법은 늘 중독적이고 파괴적이다. 술에서 깰 때 나는 자괴감인지 숙취인지 모를 것 때문에 구역질이 났고, 내가 무절제하게 사들인 물건들을 볼 때마다 갑갑해졌다.

그래도 나는 자신에게 침잠하거나 생각에 잠기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가 원하던 일을, 원하던 방식으로 하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일하는 게 재밌었고 보람도 의미도 느낄 수 있었지만,

왜 가끔 우울하고 왜 가끔 불안한지 잘 몰랐다.

내가 나를 소진시키는 줄은 차마 몰랐다.


3년 차(2022)는 운이 좋았다. 생각보다 일의 규모가 커졌다.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크고 작은 불만이나 비난, 비판이 있었고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내가 무엇을 포기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쉽게 말하는 사람들을 미워했다.

미운 사람이 많았고, 몸과 마음이 아팠다. 일하고 싶지 않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눈으로 확인되는 지표에 마음을 쓰고, 지표가 전달에 비해 부진했을 때는 그게 내 가치인 것만 같아 괴로웠다.
아팠고 불행했고 그만두고 싶었다.



4년 차, 나는 이제 지금의 내가 좋다. 물론 여전히 나는 바쁘고 그래서 피곤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작년에 경험한 '일종의 불운'이 사실은 나에게 전환점이 되었다고 믿게 되었고,

그동안 내가 받았던 비난이나 비판에 대해서 마냥 억울해했던 것도 그다지 성숙한 자세는 아니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일하게 만드는 것이 더 이상 '지표'가 아니게 되었다.
나는 이제 스트레스를 자기 파괴적으로 해소하지도 않고, 지표로 불행해지지도 않고,

누군가의 비난에 하나하나 마음을 쓰지도 않는다.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힘듦을 극복하기 위해서,

내가 진짜로 더 잘할 수 있었을까? 나는 원래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자기부정의 굴레에서 내려오고 싶어서,

소모적으로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잠재우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나 자신에게 되묻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일하고 싶었던 건지

나는 언제 행복한지

내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래서 내가 결정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결정'했고, 타협하고 싶은 순간마다

나를 일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답을 구했다.


변화된 내 마음을 나침반 삼아서

어영부영 걸어 나가길 여러 날





그러니까 
내가 나 자신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단단함과 여유,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내가 보내는 믿음.
그런 것들을 공들여 쌓아 갈 수 있는 '지금'이 좋다는 결론!

뭐 살다 보면 공든 탑은 무너지고, 자존감도 얄팍해지고, 어느 날은 너무너무 불행해질 때도 있겠지만
대체로 보아서 괜찮은 나 자신, 괜찮은 삶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5년 차, 10년 차에도
그때의 변화를 감사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기를!







+) 새해에 받은 반갑고 고맙고 따듯하고 그리운 편지 덕분에

오랜만에 용기 내서 올려봅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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