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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미 Dec 14. 2021

02 지금의 행복을 의심하지 마

[인터뷰] 아주 천천히, 좋아하는 걸 찾아가고 있어 - 김지홍

02

지금의 행복을 의심하지 마

(이 대화를 끝까지 읽기 위해 4분의 시간을 내어주세요.)



너희 부부는 늘 서로 힘이 되는 든든한 파트너 같아 보어. 상당히 이상적인 모습이랄까?     

지홍: 사실 남의 가정사는 진짜 모르는 거지. 우리도 싸움과 불신으로만 가득했던 적이 있어. 첫째 낳은 후 육아는 대구에 있는 엄마한테 맡기고 팀장으로 일할 때, 그땐 일도 미치도록 힘들었지만 신랑이랑 마주치기 싫어서 더더욱 새벽까지 술 마시다 퇴근하고 그랬던 때야. 한 마디만 해도 툭, 탁, 틱. 무조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싸움이었지.   


지금과 같은 사이로 회복하는 데 어떤 계기가 있었을까? 말해줄 수 있어?

지홍: 우린 결혼하고 나서도 경제적으로나 육아 문제로나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거든. 그게 너무 감사한 한편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데서 오는 압박감과 스트레스도 컸던 것 같아. 독립을 하지 않으면 우리 사이가 개선되지 않겠다는 생각도 늘 있었지만 당장 독립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러다 우리 부부에게 정신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던 꽤 큰 규모의 대출을 얼마 전에 전부 다 갚게 됐거든? 그 날이 정말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아. 우리 이제 진짜 잘 살자고 얘기하면서 둘이 정말 많이 울었어. 그 뒤로 신랑이랑 조금씩 관계 회복이 된 것 같아. 이번에 분양을 받아 진짜 우리 집이 생기게 된 후로는 자신감이 더욱더 생겼고. 


이번엔 정말 너희가 바랬던 완전한 독립이구나.   

지홍: 그렇게 과도기를 겪었지만 그다음에도 사이가 늘 좋을 순 없지. 회사일에 치이고, 애들 때문에 치이니까. 난 골프도 원래 안 좋아했거든. 예전에 처음 시작할 때는 남편이 워낙 하고 싶어 했는데 나는 ‘이걸로 돈을 쓰겠다고? 그럼 나도 돈 쓸 거야!’ 하는 마음으로 같이 했어. 그러다 쉬면서 작년에 다시 골프를 시작하게 됐는데, 이게 우리 둘을 서로에게 엄청 집중하게 만드는 운동이더라? 예를 들어, 카페에 가더라도 핸드폰 보기 바쁘고 제대로 된 대화를 하긴 힘들잖아. 근데 골프를 치러가면 아무리 개인플레이더라도 상대방의 볼을 봐주고 같이 타깃을 논의하고, 이동할 때도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 시간 동안 완전히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 들어. 둘이 보내는 시간이 너무 좋더라고 진짜. 그래서 골프에도 빠지게 된 거야.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니가 골프 하는 시간을 즐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골프를 부부 관계의 차원에서 해석해 본 적이 없었네. 

지홍: 이젠 신랑이랑 대등한 플레이를 하고 싶어서 더 욕심이 나. 비슷한 경기를 하면 훨씬 더 재밌을 것 같잖아. 근데 내가 골프를 정말 못 치니까 잘 치고 싶고, 그래서 더 빠지게 되고 그래. 

 

얼핏 보기에 요가랑 골프는 상반된 이미지의 스포츠잖아. 골프는 계속 한 방향으로 치느라 자세가 틀어질 것만 같은데, 그건 요가에서 균형을 잡는 것과 반대되는 느낌? 또 요즘은 요가에서 시작해 채식이나 동물권 보호, 친환경 활동으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골프라고 하면 대표적인 반환경적인 문화라는 이미지도 있으니까.   

지홍: 그래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 

 

니가 그 둘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이나 차이점을 느끼는지가 궁금했어.   

지홍: 나도 그 부분을 생각하면 진짜 죄책감이 들었어. 요가는 자연 친화적이고 스스로를 절제하는 느낌인데, 골프를 좋아하면서부터 나도 좀 모순되는 감정이 생기더라고. 이 기분이 뭔지 모르겠고 답은 못 찾았어. 그런데 요가 수련을 엄청 오래 하신 마이뜨리 선생님이 하는 말도, 자기 감정에 솔직하라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용기를 좀 얻은 것 같아. ‘난 요가가 좋은데… 근데 난 골프도 좋아!’ 그러면서 인스타그램에도 골프를 좋아한다는 얘기를 숨기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됐어. 요가 정신과는 다르지만 같은 운동이라는 맥락에서 골프의 좋은 점을 나는 분명히 느꼈고, 요가가 혼자 하는 거라면 골프는 우리 부부가 공유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니까. 


생각해 보니 둘이 서로 반대된다는 느낌도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겠다. 모순 하나 없이 산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기도 하고. 

지홍: 맞아 맞아. 요가를 하다 보면 가끔 스스로 너무 피곤해질 때가 있거든? 계속 마음을 다잡고 나를 제어하는 것에 대한 피곤함. 예를 들면 ‘현재에 충실하자’ 해놓고 ‘출근하자마자 점심 뭐 먹지?’하거나 애들이랑 놀아 주면서 ‘언제 재우고 요가하지?’하는 생각을 해.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닫고 ‘이렇게 현재에 집중 못 하면 안 돼!’ 하는 거지. 그렇게 내 안에서 계속 싸우는 거야. 근데 지난주에 들은 요가 철학 수업에선, 그 감정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하더라. 요가원에 같이 수업 듣는 사람들도 다 자기 얘기 같다고 하니까 안심이 됐어. 가끔 그렇게 엇나가다가도 다시 돌아와서 마음 다잡고 현실에 충실하면 되는 거지, 매번 나를 너무 다그치진 말아야겠다고.

 

왠지 아이들도 요가 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     

지홍: 한 번은 아파트 상가에 문구사가 없길래 ‘엄마가 여기 문구사 하나 차릴까?’라고 했더니, 재인이(첫째)가 ‘아니, 엄마는 요가해야지.’라고 말하더라. 엄마가 요가 하러 다닌다고 자랑도 엄청 하고 다니나 봐. 웅이(둘째)도 알아. ‘엄마가 좋아하는 게 뭐야?’ 물으면 요가라고 대답해, 하하. 결국 내가 행복하니 애들도 좋아하는 거야. 나 스스로 먼저 만족해야 행복도 전파가 되더라. 애들은 내 영향을 크게 받잖아. 예전에 저녁마다 남편이랑 싸우던 시절엔 첫째의 정서불안이 심했어. 하루 종일 예민하고 짜증내고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는 거야. 친언니가 낮 동안 잠깐 아이를 봐주던 때였는데, 언니가 전화해서 말하길 우리 부부 관계가 아이한테 얼마나 나쁜 영향을 주고 있는지 아느냐고… 내 행동 하나하나가 애들한테 영향을 주는 걸 그땐 몰랐던 거야. 그런데 요가를 하고 나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는 게 보인다? 코로나로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있는데도 애들은 너무 즐거워해, 엄마가 짜증을 안 내고 같이 놀아주니까. 내 마음이 정리가 되니까 애들과 재밌게 놀아줄 수 있고, 재밌게 놀아주니까 또 요가가 잘되고, 신랑한테 짜증을 안 내고, 애들도 나한테 잘 해주고, 모든 게 선순환이 되고 있어. 


지홍이에게서 뭔가 변화와 성장이 느껴져서 참 보기 좋다. 우리 또래들은 이제 스스로에게 성장이라는 표현을 쓰기가 쉽지 않잖아. 너의 그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지홍: 이 사전 질문을 받고 어제 많은 생각을 했는데, 정말 좋은 질문이더라. 이 마음가짐과 동력은 모두 가족한테서 오는 거야. 얼마나 가족이 중요한지 아니까, 이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필요한지 아니까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이제 내가 좀 더 신경 쓰는 건 우리 엄마야. 동생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오랫동안 아파서 엄마가 고생이 많으셨거든. 겉으로 보기엔 우아하고 멋지지만 마음이 많이 힘든 사람이야. 그래서 우리 애들 육아 도와주실 때도 난 엄마의 육아 방식에 대해선 전혀 잔소리를 안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알고, 이젠 내가 엄마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싶어. 그러니까 요즘엔 엄마도 나에게 의지를 많이 하는 게 보여. 그러면 내가 또 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그런데 ‘성장’이라니… 나를 한 번도 이렇게 바라본 적은 없는데 이 단어를 오래 생각해 보게 되네.  


앞으로 좀 더 바라는 점이나 아쉬운 점은 없어?   

지홍: 요즘은 진짜 마음에 거슬리는 게 하나도 없어. 회사도 즐겁고, 요가도 잘 되고, 자격증 코스도 듣고 있고, 골프도 재미있고, 남편도 여유가 생겼고, 애들도 잘 자라고, 엄마도 요즘 되게 좋아졌어. 요즘 좀 괜찮은 것 같아. 아니, 너무 완벽한 것 같아. 그러니까 또 불안해지더라? 


그건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그쳐도 되는가 하는 불안감이야? 아님 이 완벽함이 깨질까 봐 오는 불안감일까? 

지홍: 후자. 너무 좋은데 어디선가 불행이 올 것 같은 느낌. 지금은 모든 톱니바퀴가 딱딱 맞아떨어져 돌아가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잖아. 늘 불안불안하게 살았으니 또 불행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만족하면 좋을 텐데, 그 생각에 완벽하게 즐기진 못하고 있는 것 같긴 해.  


좋은 때도 꼭 그런 생각이 들더라. 행복에 좀 더 익숙해질 필요도 있는 것 같아. 

지홍: 그치, 나만 그런 건 아니지?


(다음 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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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김지홍 (인스타그램 ID: @jazz486j)

인터뷰: 오주미 (인스타그램 ID: @fayetree)

대화 시기: 2021년 9월

사진 제공: 김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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