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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주미 Nov 13. 2024

내 안의 방해꾼을 탐구해보자

밑미 <오프더레코드> 전시, 영화 <스터츠>에서 소개된 내면의 비판자

1. 주말에 다녀온 밑미의 <오프더레코드> 전시 덕분에 내 안에는 어떤 ‘방해꾼’이 있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2. 방해꾼이란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을 방해하는 내면의 목소리라고 한다. 그게 무엇이 됐든 불가능할 거라고 속삭이는 목소리. 내 안의 비판적인 자아. 


3. 방해꾼 캐릭터에 대한 밑미의 소개를 요약하자면,  

사감선생님은 늘 더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지적쟁이다. 

스포터라이터는 타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스스로를 꾸미는 무대 위 주인공이다. 

스마일 마스크는 거절하지도 솔직해지지도 못한 책 친절한 가면을 쓰고 있는 아이다.  

카멜레온은 문제의 본질을 마주하기 보다 외부의 핑계를 대며 상황을 모면하는 눈치왕이다.   

넝마는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고 미리 포기함으로써 고통을 피하려는 안전주의자다.


4. 내 안의 방해꾼 찾기 테스트 결과 내 안의 방해꾼은 “스포터라이터”라고 한다. 결과가 좀 의아하다. 내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쓴다고? 오히려 꽤나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이지 않나? 그런데 확실하게 답하긴 애매했던 답변들 몇 개를 바꿔봐도 결과는 3번 연속 스포터라이터다. 사실, 캐릭터 설명을 처음 들었을 때는 나는 “사감선생님”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말이다. (스포라이터도 아니고 스포라이터라는 말이 있었나, 왜 제작물에서 이렇게도 쓰였다 저렇게도 쓰였다 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던 나는 누가 봐도 “사감선생님” 스타일...)


5. 내면의 방해꾼들을 캐릭터화하는 과정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제작 과정을 보는 것도 최종 결과물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캐릭터들이 왜 이렇게 귀엽고 정이 가나 했더니 픽사가 인사이드아웃 캐릭터들 만드는 과정을 볼 때랑 비슷한 기분이다!) 전시 관람을 시작하면서부터 방해꾼 개념에 가장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전시 공간 곳곳에 이스터에그처럼 등장하는 방해꾼 캐릭터들을 찾는 즐거움도 있었다. 


6. 어쨌든 내 안의 방해꾼으로 열일하고 있다는 그 아이 -- 타인의 관심을 받기 위해 무리하게 스스로를 꾸미는 스포터라이터에 대해서도 앞으로 좀 더 알아가기로 했다. 왜 나에게 스포터라이터라는 결과가 나온 걸까, 어쩌면 나에겐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나 자신"을 결국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더 다면적인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어쨌든 인간의 심리가 그렇게 하루이틀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닐 테니, 일단 질문만 그물망처럼 던져놓고 어떤 답들이 걸려 나오나 지켜봐야겠다. 앞으로 내가 하는 행동이나 선택들 중에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날 더 좋아하고 인정할거야'라는 마음이 개입하고 있는 건 어떤 것들인지도 좀 더 들여다보기로.  


7. 굳이 스포터라이터가 아니더라도 내 안에는 수많은 방해꾼들이 존재한다. 고백하자면, 상반기에 밑미에서 이런 전시를 준비하고 있고 참여를 희망하는 멤버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좀 회의적이었다. 이 많은 사람의 비슷한 기록물들을 잔뜩 모아 놔서 뭘 할 수 있겠어 - 그 때의 나는 “사감선생님”이자 “넝마”였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좋은 뜻이 모이면 결국 시작 시점에선 쉽게 상상할 수 없었던 그림을 향해 모두가 함께 나아가게 된다는 걸 이 전시가 또 한 번 증명했다.) 

8. 한편, 전시를 예약해 뒀지만 다녀오는 게 좀 망설여진 데도 내면의 방해꾼이 작용했다. 좀 더 솔직해 보자면, 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한꺼번에 내 안으로 쏟아져 오는 게 버겁다. (이 고백은 어쩌면 내 안의 “스마일 마스크”를 벗어내는 작업이다.) 북페어 같은 곳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 공간에서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저마다 들어달라고 아우성 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런데 또 다 듣지 못하고 돌아오면 그 죄책감이 큰 것도 문제이고. (그래서 최근부터 취하고 있는 전략으로, 이번에도 애초에 아주 제한된 수의 전시물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보고 나오는 법을 택했다.) 아무튼 이건 타인들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일 때도 마찬가지라서, 내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내 글이나 기록을 단체 전시하는 것도 잘 끌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여기서는 인스타 자수 제한을 넘어서기 직전까지 쓰고 있다.) 


9.전시에서 소개된 방해꾼이라는 컨셉은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라는 다큐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필 스터츠는 이 방해꾼을 파트 X (Part X)라고 정의했다. “파트 X는 비판하는 자아예요, 반사회적인 자아에 해당하죠. 이 보이지 않는 힘은 여러분의 변화나 성장을 끝없이 방해해요. 진화하지 못하게 끝까지 막으려고 하죠. 잠재력을 차단하고 싶어 해요.” 그러면서 자신이 가진 파트 X에 대해서는 이렇게 얘기했다. “이게 다 시간 낭비라고 느끼게 해요. 내가 고안한 이 모든 것(심리치료법)들이 그 자체로 훌륭하고 나 자신도 뿌듯하지만 사회 깊숙이 퍼지진 못할 거라고요.” 


10. So, what does your ‘Part X’ say to you? 당신의 파트 X는 당신에게 뭐라고 속삭이나요?
(이건 집가서 혼자 일기장에 써야지.)



덧)
<스터츠: 마음을 다스리는 마스터>에서 이 구간 반복해서 듣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받아 적었다. 

(필 스터츠)

Part X is the judgmental part of you, the antisocial part of you.

파트 X는 비판하는 자아예요, 반사회적인 자아에 해당하죠.

It’s an invisible force that wants to keep you from changing or growing,

이 보이지 않는 힘은 여러분의 변화나 성장을 끝없이 방해해요.

It wants to block your evolution; it wants to block your potential.

진화하지 못하게 끝까지 막으려고 하죠. 잠재력을 차단하고 싶어 해요.


(조나 힐)

So part X would be the villiain in the story of a being a person.

그러니까 파트 X는 악당 역할인 거네요, 한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요.


(필 스터츠)

The part X is the voice of impossibility.

맞아요, X파트는 불가능을 상징하는 목소리죠.

Cause whatever it is you think you need to do, it’s gonna tell you that’s impossible. “Give up.”

여러분이 뭘 해야 하건 불가능하다고 말해요. 포기하라고요.

It gives you a very specific dossier about who you are, what you’re capable of.

여러분이 누군지, 뭘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증거자료들을 들이밀어요.

And it creates that primal fear of human beings.

인간의 원초적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거예요.


(조나 힐)

What does your part X say to you?

선생님의 파트 X는 뭐라고 하죠?


(필 스터츠)

It makes me feel like I’m wasting time.

다 시간 낭비라고 느끼게 해요.

It tells me that I’ve invented all the stuff, and the stuff is great, I’m very confident,

내가 고안한 이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훌륭하고 나 자신도 뿌듯하지만  

but it won’t spread deeply enough into the culture.

사회 깊숙이 퍼지진 못할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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