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나의 의지대로 옷을 입지 못했다.
허리까지 내려오던 긴 머리였던 내게
엄마는 매일 등교하기 전
양갈래로 머리를 예쁘게
땋아주었고, 한복집을 하는
엄마답게 직접 만들어주신
체크무늬 치마에 블라우스,
흰 타이즈에 빨간 구두를 신겨
학교에 보내었다.
엄마의 유일한 취미가 나였다.
매일 나의 스타일을 엄마는
직접해 주셨고, 난 아침마다
1시간이 곤욕의 시간이었다.
싫어도 싫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엄마의 친구인 박약국댁
주인아지매는
"우리 영감이 우리 면에서
경이가 제일 예쁘다더라.
참하게 생겼제, 인사성도 밝제.
예뻐죽는다. 경이 잘 키우라.
나중에 부잣집 시집갈끼구만은"
그 말씀 때문인지
엄마친구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생각하셨는지,
엄마의 자존심이 나였기에
가난했던 형편이었지만
엄마는 나를 최대한 예쁘게 꾸며
집 밖으로 내보내셨다.
여름엔 깔깔이 원피스를
만들어주셨고, 겨울엔
빨간 망토를 본인손으로
짜서 입혀내보기도 하였다.
국민학교 친구들이 나를
기억할 때는 우리 집이
부잣집이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고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엄만 나의 옷을
지적했고, 엄마의 스타일대로
입길 원했으나, 어릴 때의 내가
아니었다. 싫으면 싫다고
말을하는 더 이상 예쁜 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난 남자스타일의 옷을
고집하였으며, 여러 직장을
가졌던 내가 근무복이 편하게 되어
근무복에 맞추어진 일상복들이
나의 옷스타일이 되었다.
아들이 유치원 다닐 때
엄마그림이나 가족을
그려보세요! 하면 아들은
나를 남자로 그리긴 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내게
"어머니!ㅇㅇ(아들이름)이는
항상 엄마를 남자처럼 그려서
물어보니 우리 엄마는 바지만
입어요! 하더라고요."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남편이 우리 집에 살게 되었을
초반에 옆집오빠가 남편에게
"쟈가 어릴 때 무척 예뻤는데
뭔 일 있었는지 지금은~~"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남편은 가끔 묻는다.
"뭔 일 있었던 겨?
다시 돌려줘. 예쁜 마누라로"
지금
박약국아재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경이는 이제 없다.
뚱뚱하고 얼굴이 못생기고
주름살이 깊어지는,
남편에게 '퐈이어' 불을 내뿜는
아따맘마의 아지매가 나다.
"당신은 파란색이나, 분홍색이
어울려! 이걸로 입어봐.
살을 조금만 더 빼면 되겠어!"
옷가게에 같이 가서 이것저것
입어보라 말하며 권해주는
예전 엄마의 취미가, 이제는
남편의 취미가 되어버렸다.
다만
남편도 자기가 입을 옷을
코디해 보며 거울을 쳐다본다.
남자옷은 전부 우중충한
색깔밖에 없냐며, 여자옷을
살짝 탐내는 남편이다.
옷장 속에 고이 숨겨둔
예쁜 원피스와, 예쁜 스커트를
오랜만에 꺼내어
입어보며 미소를 지어본다.
예쁜 걸 좋아하는 나였구나!
나도 여자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