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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어른'이 그리운 요즘

누군가의 등이 그리운 날

by 빛나는 윤별경


"니 고등학교 다닐 때

수업납입금하고

맹장수로 병원입원비 내놔라"


22살.

맹장수술 후 집에서

쉬고 있을 때,

아버지에게 용돈 조금 달라고

하다가, 돈 없다 딱 잘라 말하시던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아버지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

대들다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아버지께 대들던

나 자신이 밉기도 하였고

아버지의 대답에 서러워

펑펑 울고 있었다.


우리 아버진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꿀삐(욕심쟁이의

경상도 사투리) 영감이었다.

논. 밭한평도 없는 가난한 집에서

어린 나이에 땔감으로 나무하러

지게 지기가 싫어서

6.25 전쟁시기 군입대하여

월남전 나라를 위해

싸웠고 부상을 입기도 하셨다.

아버진 영광의 상처라며

자랑스러워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절약정신은

혀를 내둘릴 정도로 아끼셨다.

매달 월급을 엄마에게

준 적 없으시며, 아버지가

관리하며, 엄마는 매달

생활비를 타쓰게되었다.

오빠가 공무원이 되면서

형편이 나아졌지만, 오빤

교통사고와 통사고의 후유증.

그리고 신부전증으로 인해

입.퇴원을 자주하면서

우리의 형편은 나아지지않았다.


부모님이 계셨지만

그 시절은 너무나 가난했고,

경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내 돈 내 삶의 인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려운 선택 앞에서

늘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마음을 다잡곤 했다.


다 보면,

인생의 큰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할 때가 많다.

나에겐 그런 시간이

유난히 많았다.


혼자 감당해 온 시간이

길어서인지, 편과의 결후에도

남편에게 경제적인 짐을

지우기가 늘 미안했다.

그저 내 몫의 일이라 여기며

속으로 삭이고

끙끙거릴 때가 많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며

남편은 섭섭하다고 하였고,

이젠 같이 의논하며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간다.


하지만

부모님이 계셨던 그 시절엔

비록 돈으로 도와주지

못하셔도 정서적으로는

언제나 든든했다.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이 조금은 덜 두려웠다.

가족을 넘어 삶을 지탱해 주는

큰 그림자였었다.


힘들 때마다 엄마의 따뜻한

위로, 아버지의 따스한 눈빛.

오빠의 힘있는 조언들이

세상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아버지에 이어,

오빠도, 엄마까지 떠나고 나니

문득 느껴진다.

이제는 나를 꾸짖어줄

어른이 없다는 걸.

잘못했을 때 타이르듯

말해주고, 살아가는 날들에

조언 한마디 해줄 '진짜어른'

사라졌다는 걸 말이다.


살아보니 혼자서도

충분히 강해질 수 있지만,

가끔은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고

“괜찮다, 다 잘하고 있어.”

그 한마디를 해줄 어른이

유독 그리운 날이 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고,

삶의 동반자인 남편도 있지만

그들과는 또 다른 결의

빈자리가 있다.

조건 없는 사랑이 주던 안정감.

그리고 내 이야기를 다 들어준 뒤

"괜찮다" 한마디로 모든 걸

감싸주는 어른의 온기일 것이다.


아마도 그게

내가 아직도 마음속에서

찾아 헤매는‘진짜 어른’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없어진 세상에서

나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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