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아노 관광단지(2)_ 내가 놓쳤던 시그니처 홀
얼마 전, 무심히 TV 채널을 돌리다
어딘가 제법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 열리는 유일한 LPGA 대회,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그 장소가 다름 아닌,
지난 글에서 소개했던 오시아노 관광단지,
그 안의 파인비치 골프장이었습니다.
초록의 잔디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화면은
그 자체로 한 장의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방송에서도 코스의 완성도와 경관을
연신 칭찬하고 있었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제 마음은
왠지 모르게 씁쓸했습니다.
골프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간이
아직 채워지지 못한 채 멈춰 있는,
이 관광단지의 현실을 떠올리면
여전히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파인비치가 여전히 명성을 이어오며,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저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그런 미묘한 마음으로,
이 골프장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 보려 합니다.
제가 처음 이 과업을 맡았을 때,
당초 계획된 골프장은 24홀 규모였습니다.
다소 어중간했던 홀 구성을 27홀로 조정하고,
그중 18홀은 민간이, 나머지 9홀은
사업시행자인 한국관광공사가 직접 운영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이후 기본적인 Lay-out은 해외 설계사가,
세부적인 실시설계는 국내 업체가 담당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에는 코스 설계뿐 아니라,
대규모 개발사업의 기본 방향 수립 자체를
주로 해외 설계사들이 주도하던 때였습니다.
여기 해남의 기본계획 역시 그 흐름 속에 있었고,
제가 참여했던 동부산 관광단지, 강원카지노 리조트 등
여러 대형 프로젝트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국내 기술력과 설계 역량이 크게 성장하면서,
이제는 대부분의 사업이 국내 기술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관광단지 전체 계획을 담당하고 있어,
골프 코스의 세부 설계는 민간에서 진행했지만
골프장의 전반적인 인허가 업무는 제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업을 진행하던 중 문제가 생겼습니다.
설계된 코스 계획 중 일부가
환경영향평가의 규제사항에 저촉된 것입니다.
환경 분야에서는 해안선 보호를 위해
바닷가에 인접한 시설 배치를 엄격히 제한했습니다.
그린 하나와, 티잉 그라운드 하나가
해안선과 너무 가까워 협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코스의 조정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설계사는 단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고,
저 역시 의견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결국 협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고,
환경 협의는 시행사가 주도적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여곡절 끝에 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면서
골프장 인허가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안의 선 하나를 두고 벌어졌던 그 논쟁은
지금도 제 안에 조용한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
이곳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해남에 정말 멋진 시그니처 홀이 생겼다고 말이지요.
골프를 조금 친다는 주변 사람들이
가끔 이 코스를 이야기할 때면,
제가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 멋진 Par3 홀이,
그 시절 제 고집스러운 원칙에 막혀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 뻔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제가 골프를 잘 몰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아도,
그때 제 입장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골퍼들이 선망하는 코스가 되었지만
그건 라운딩을 즐기는 이용객의 시선일 뿐,
해양 환경적인 측면에서 과연 옳은 결정이었을까—
아직도 저는 그 정답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저도 골프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코스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지만,
아직 파인비치는 찾아가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직접 그 바다를 건너 치는
비치 6번 홀 앞에 서게 된다면,
그때는 어떤 생각이 들지 저도 궁금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세계 TOP100 골프장 선정 기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기존 자연지형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가'입니다.
즉, 인위적으로 만든 코스가 아니라
마치 '발견된 듯한 코스'.
그 부지에 들어서면,
'이곳에는 원래 이렇게 골프 코스가 있었을 것 같다.'
그런 느낌을 주는 공간이 좋은 코스라는 뜻입니다.
비록 해남의 시그니처 홀을 반대했던
아쉬운 흔적은 남았지만,
언젠가 사람의 손이 아닌,
땅이 스스로 말하게 한 공간처럼
진정한 코스 계획에 다시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날이 온다면,
저는 조용히 자연의 언어에 귀 기울이며
새로운 코스를 그려 보고 싶습니다.
오늘 같은 날,
아이유가 이렇게 묻는다면요.
"해남 파인비치 골프코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네. 그곳을 보면 늘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아름답게 완성된 풍경이지만,
그 안에는 제가 지키려 했던 원칙과
놓치고 온 아쉬움이 함께 있거든요.
그래서 제게 파인비치는,
지금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 남아 있는 자리입니다.
언젠가,
그 바람과 파도 사이에서
제가 놓쳤던 그 답을
조용히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