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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 한 줄

by 정수만


어쩌다 혼자가 된 여자는 다시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는 한 남자를 만났고 그와 처음으로 나들이 가기로 한 날 아침에 무수한 고민 끝에 김밥을 싸기로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단단히 김밥을 말고 가지런히 잘라 도시락에 넣은 후에 정성스럽게 담은 김밥을 물끄러미 살펴보다가는 빨갛고 노란 김밥 속이 왠지 은밀한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는 것 같은 수치심에 끝내 나들이에 김밥을 들고나가지 못한다. 오래전 읽은 어느 여류작가의 단편 소설 속 김밥은 생존을 위한 섭식 본능을 넘어 음식에 투영된 주인공의 연애 심리를 묘사한다.

동일한 사물이라도 그것을 접하는 세대마다 조금씩 다른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김밥도 어쩌면 세대별로 그 의미와 무게감을 다르게 한 채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거나 혹은 삶의 단면을 반영하는 음식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김밥은 의외로 오래된 음식이지만 식용으로 김을 활용하는 민족은 한중일에 국한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삼국시대부터 김을 식용으로 활용하였고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이미 종이 형태로 가공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김밥은 우리보다 좀 더 늦게 김을 먹기 시작한 일본에서 18세기 중반에 김을 넓게 펴고 그 위에 다양한 재료를 얹어 돌돌 마는 노리마끼라는 음식의 대중화로부터 시작된다. 이렇듯 김을 식재료로 개발한 것은 우리 민족이었으나 다양한 음식으로 대중화한 것은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의 품질 면에서는 여전히 한국의 김이 수위에 있고 지금은 김밥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한국 식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먹은 김밥에는 일명 다꽝이라 불렀던 단무지가 핵심 재료였고 그 밖에 시금치나 얇게 펴 구운 계란 지단, 우엉 뿌리가 주 재료였지만 80년대 이후로 육가공 기술이 발전하여 햄과 소시지가 들어가면서 제법 고급스러워져 소풍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그래서 유신 후반 시대를 살아온 세대들에게 있어서는 소풍을 회상할 때 점심때 먹었던 김밥에 대한 추억을 결코 빼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팍팍했던 그 시절에는 소풍에도 그나마 김밥을 싸 오지 못하고 도시락 위에 달걀 프라이나 잔 멸치조림을 평소와는 다른 특별 반찬으로 싸 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80~90년대에는 김밥 프랜차이즈가 생겨나면서 아예 김을 배제한 누드김밥, 고급스러운 불고기 김밥, 샐러드, 야채, 치즈, 돈가스등을 활용한 다양한 김밥이 개발되어 소풍 때뿐만이 아니라 일상 속 음식으로 보편화되었다. 요즘에는 편의점에서도 판매하고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기다림 없이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이 된 셈이다. 그러나 누이들이 적지 않았던 유년에는 소풍날 김밥을 싸는 어머니 곁에서 맨 처음 잘라내거나 끝에 남은 김밥 꼬다리를 차례로 얻어먹던 일조차도 감칠맛 나는 기억으로 남아 있을 만큼 김밥이 특별한 음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일정한 두께로 날카롭게 재단되어 가지런히 눕힌 김밥이 메인이었으나 각기 다른 길이의 소재들이 남아 있는 꼬다리에는 칼날의 규격화로부터 자유로워진, 그리고 탄력으로 단단히 결속된 김의 장력으로부터 조금은 여유로워진 삶의 부산물 같은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꼬다리는 잉여 재료가 풍성하다 보니 그 맛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져 지금은 꼬다리 김밥이 따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풍 때나 먹을 수 있었던 김밥이 간편식으로 바뀌면서 김밥의 신분도 다양해졌다. 출근 시간에 쫓기는 도시의 직장인들에게는 지하철로 이동하며 간단히 식사를 해결하는 이동식이 되기도 하고 주머니가 여유롭지 못한 이들에게는 한 줄의 김밥이 그래도 다른 음식보다는 저렴하게 밥을 입에 넣을 수 있는 공식적인 한 끼의 식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이들에게 있어 김밥의 의미는 다소 비장하다. 음식의 맛을 즐기는 것보다 헛헛한 위장에 채워 넣고 밥벌이를 위한 에너지로 활용해야 하는 생애의 절박한 단면 이거나 밥이 곧 하늘이던 시절의 절대가치가 퇴화된 흔적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프리미엄 김밥 체인이 곳곳에 생겨 김밥 한 줄이 밥 한 끼에 버금가는 가격으로 판매되기도 한다.

김밥과 연관하여 늘 연상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나왔던 안성기 씨가 아내와 시내버스를 타고 가며 아내가 팔다 남은 김밥을 먹는 장면이다.

이 영화는 2006년에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안성기, 박중훈이 주인공으로 열연했던 브로맨스 영화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1980년대를 풍미하며 가요왕에 올랐던 인기가수 최곤(박중훈)이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대파초와 폭력 사건으로 퇴물이 되어 이제는 미사리 라이브라수로 겨우 명맥을 유지한다. 그러던 중 최곤은 손님과의 다툼으로 합의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그의 오랜 매니저였던 박민수(안성기)는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최곤을 영월 라디오 방송국 DJ로 추천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조차 건성으로 막장을 연출했던 최곤은 스튜디오 안으로 커피를 배달시켰다가 다방 아가씨 김양에게 마이크를 넘기고 가출했던 김양은 눈물로 엄마에게 사죄를 하게 되며 지역사회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킨다. 또한 비틀스 흉내나 내는 무명 인디밴드였던 이스트리버(노브레인)에게 기회를 주어 영월 천문대에서 공개 방송할 때 최곤의 히트곡인 비와 당신을 락 버전으로 부르게 하며 작은 지역 방송이 전국에 크게 이슈가 되고 결국 대형 기획사에서 최곤에게 스카우트를 제안한다. 그러나 매니저인 박민수를 제외하고 최곤만 계약하겠다는 기획사의 의도에 갈등을 빚다 결국 둘은 헤어져 박민수는 김밥을 파는 아내를 도우러 서울로 가고 최곤은 DJ로 남지만 기획사의 콜을 거절하는 과정에서 매니저를 제외한 계약 조건을 내세웠던 기획사의 의도를 알고 불같이 화를 낸다. 돌아보면 스타로 정상의 자리에 있을 때나 한없이 낮아져 영월 방송국 DJ로 있는 지금이나 변함없는 애정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던 매니저의 깊은 애정을 깨닫고, 라디오 방송 중에 울면서 매니저인 박민수에게 다시 돌아와 달라는 멘트를 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매니저였던 박민수는 아내와 함께 김밥을 팔고 돌아오는 시내버스에서 팔다 남은 김밥을 먹다가 이 방송을 듣게 된다. 박민수가 시내버스에서 흘러나오는 최곤의 멘트를 들으며 억지로 욱여넣던 김밥만큼 슬픔의 농도를 진하게 우려낸 장면이 또 있을까 싶다. 김밥 한 조각도 시원하게 식도로 넘기기 어려울 만큼 북받치는 슬픔의 무게가 얼마나 절절한지를 알게 된 박민수의 아내는 다시 최곤에게로 다시 돌아가라고 말을 한다. 개인적으로는 안성기 씨의 감정 연기에 대한 진수를 실감하게 된 장면이 아니었나 싶고 실제로 안성기는 이 영화로 그해 대종상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 근처에는 프리미엄 김밥집이 있다. 식사 때를 놓쳐 밥을 함께 먹을 이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나 혹은 간단하게 속을 채우고 싶을 때 혼자 그곳을 찾아간다.

매장에 들어서면 아줌마 김밥 한 줄요~라는 아날로그적 주문 대신 키오스크에서 화면을 터치하여 김밥의 종류를 선택하고 휴대폰 속 앱 카드로 결제를 한 후 김밥이 나오기까지 기다린다.

김밥의 종류들도 다양해져서 원하는 여러 종류의 김밥을 선택할 수 있지만 나는 혈당 상승에 대한 부담으로 야채가 잔뜩 들어가고 밥이 들러리를 서서 겨우 밥의 구색을 갖춘 샐러드 김밥을 먹는다. 어쩌다 라면 한 그릇에 김밥 한 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몸이 되었는지 통탄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칼로리를 고려한 김밥도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김밥을 주문을 하고 기다리거나 김밥을 먹을 때 나는 때때로 매장에 손님들을 슬쩍 둘러본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김밥을 먹는 젊은 여자들과 젊은 연인들과 중고등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나처럼 남자가 혼자 휴대폰을 보며 먹는 모습도 보인다. 혼밥 이란 게 유행한 지 오래라 식당마다 벽을 보고 먹을 수 있는 1인용 식탁이 마련된 곳도 많다. 세상은 이미 혼자 사 먹는 밥이 보편화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내겐 혼밥은 낯설고 거기다 허겁지겁 먹고 나가기 바쁜 이들이 시야에 들어오면 문득 생애의 비애 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함부로 기어 올라오기도 한다. 음식이란 게 꼭 격을 갖추고 분위기 있게 먹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먹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본다면 최소한 먹는 동안만큼은 마음이든 시간이든 표정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여유로워야 할 것만 같은 것이다.

김밥의 구조는 먹고 산다는 게 그러하듯 허술하지 않고 아주 조밀하고 단단하다. 내부 압력을 견디지 못하면 툭 터져버리기도 하는 맨 가장자리 김 안쪽으로는 인류의 오랜 먹거리인 밥이 둘러쌓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삶의 경계는 때때로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들의 압력을 견디다 못해 끝내 툭 터져버리기도 하는데, 이는 가장 중요하다는 것의 무게감은 가장 치명적인 생존 위협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엄혹한 이치를 시사하는 것이다. 그 안으로는 삶의 모습만큼 다양한 재료들이 빼곡히 어깨를 맞대고 김밥 전체의 맛을 조율한다. 외형은 비슷해도 맛을 좌우하는 것은 속 재료들이다. 삶의 개별성도 김밥 속 같은 환경과 조건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따라 확연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오징어무침을 곁들이지 않으면 도무지 음식 같지도 않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충무 김밥 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이나 돈가스가 들어간 퓨전 형태의 김밥도 있을 만큼 구성의 자유와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김밥은 어쩌면 그 다양성과 편의성으로 인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k-푸드가 될지도 모를 일이며 간편식을 좋아하는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여 더 친근한 먹거리로 우리의 삶에 자리매김할지도 모르지만, 김밥 한 줄에도 공연히 인생의 단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연륜의 눈은 왠지 서글프다.

김밥 위키 백과.jpg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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