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순천-여수-대전 여행을 다녀왔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처음 떠나보는 기차여행에 여간 설레는 것이 아니었다. '무궁화호를 타고 여행'이라니! 이 짧은 문장 하나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여행이었다.
계획형 인간인 나는 여행 전 일목요연하게 여행 일정을 짜고, 동선을 체크했다. 물론 제일 먼저는 최저가로 괜찮은 호텔을 잡았다. 비수기에 떠나는 여행은 괜한 이득을 보는 기분이 든다.
일단 성수기 대비 절반 혹은 그 이상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좋고, 성수기나 주말이었다면 분명 사람이 바글거렸을 곳을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는 것도 큰 이점이다.
첫 번째 여행지인 순천에 도착했다. 순천의 가장 큰 볼거리는 국가정원과 순천만이라고 하여 도착하자마자 국가정원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국가정원으로 향했다. 가기 전부터 하도 규모가 크다고 해서 각오하고 갔는데 정말이지 너무 컸다.
이탈리아, 태국, 일본, 튀르키예, 미국 등 각국의 특색을 담은 정원들이 있었는데 전반적으로 아쉬웠다. 여러 나라의 정원을 만드는 것보다 몇 개국 안 만들더라도 그것들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이겠으나 과거에 비하면 세월의 흔적이 슬슬 몸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내게 넓고도 넓은 국가정원 둘러보기는 녹록지 않았다. 다행히 사람이 없고 앉을 곳은 많아서 중간중간 쉴 수 있었다. 썬베드처럼 누울 수 있는 곳도 있어서 다만 10분-15분이라도 눈을 감고 쉬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고 쉬는 게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경험상 제법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여행 중에 느낀 점이 있다. 여행지에 있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내가 묵는 호텔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발견되거나 끝없이 걷고 걷는 이번 여행에서 더 이상 못 걷겠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나 그랬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러면서도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역시 '집이 최고'라는 생각과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여행지에서 보내는 이 시간들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여행의 순간들을 오랫동안 기억하려고 열심히 사진 찍으며 눈과 마음에 담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여행에 대한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대체로 집이 최고지만, 가끔은 여행도 괜찮다!
순천을 뒤로하고, 여수로 향했다. 여수와 순천은 가깝기 때문에 기차로 이동을 했는데 자연스레 유럽여행 갔을 때가 떠올랐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다 국경도 넘었었는데, 이동수단이 그때와 같아서인지 유독 10년 전 그때가 많이 떠올랐다.
이번 여행은 처음 가본 곳이었음에도 유독 기시감을 많이 느꼈다. 여행지 곳곳을 관광하며 타 여행지와 닮은 구석을 나도 모르게 찾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여행을 통해 지난 여행들의 추억을 다시 떠올리는지도 모르겠다.
여수는 확실히 순천보다 더 본격적인 관광지 느낌이 들었다. 유명맛집도 많았는데, 이순신 광장 근처에 즐비한 맛집들을 보면서 힐링과 마케팅이 혼재하는 그야말로 혼돈의 도가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수에 가면 상당히 많은 수의 '딸기 찹쌀떡'집을 볼 수 있다. 여수에 딸기가 많이 나는 걸까? 여수에 찹쌀떡 명인이 많은 걸까? 어쨌든 찹쌀떡을 싫어하지 않는 나로서 하나는 맛보고 싶었는데 시식으로 먹어 본 멜론맛 딸기 찹쌀떡을 먹어보고 마음이 급격히 식었다. 이건 무슨 환장의 조합이냐고!
샘플만 맛본 것은 내 혈당을 생각하면 다행이고, 사장님 입장에서 생각하면 불행이지만 어쨌든 취향 확실한 내 입맛엔 맞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그 지역 특산물을 맛보는 것은 꽤나 즐거운 경험이다. 그러나 여수의 딸기 찹쌀떡은 아직도 의문이다. 여수에서 딸기랑 찹쌀떡이 왜?
그냥 어쩌다 딸기 찹쌀떡 집이 하나 생겼는데 대박이 나서 그 뒤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걸까? 답을 알 수는 없으나 사실 딸기 찹쌀떡이 여수와 딱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닌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그나마 딸기 모찌가 아닌 딸기 찹쌀떡으로 표기된 곳들이 많아서 다행이었다.
맛집 하면 빠질 수 없는 나의 3일 차 여행지, 바로 대전이다. 유명한 식당이 있어서라기보다 최근 들어 무지하게 뜨고 있는 '성심당' 덕분이다. 성심당에 대한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여러 명의 후기를 본 뒤 가성비 좋고 맛도 적당한 빵집이겠다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 채 줄을 섰다.
같은 성심당이지만 샌드위치, 케이크, 빵, 떡, 음료 등 종목에 따라 매장이 모두 다르다. 매장을 분야별로 쪼갤 생각을 하시다니 사장님의 사업수완이 좋으시다. 케이크는 생각보다 줄이 없었고, 빵은 생각보다 줄이 길었으나 줄이 빨리 줄어서 10분 정도 기다린 뒤 입장할 수 있었다. 샌드위치와 빵 쪽은 아예 줄이 없었고 음료(성심당 문화원) 쪽도 매장 내부에서 조금 기다리면 자리가 나는 정도였다.
빵 쪽에 줄을 서며 인상 깊었던 것 한 가지. 직원의 표정이 정말 밝았다. 혹시 성심당 3세였을까? 기분 좋게 손님들의 줄을 정리하며 응대하는 게 보는 나까지 기분 좋아졌다. 그래, 전국구 맛집이라면 이 정도 서비스까지 갖춰줘야 기분이 나지. 나처럼 성심당 하나만 보고 대전에 오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사야 할 빵과 내 취향이 아닌 빵을 미리 골라갔던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빵을 골랐고, 제일 별로일 거라고 생각했던 샌드위치 애플브리샌드위치가 예상외로 너무 맛있어서 감동받았다.
가성비 좋고 맛도 그럭저럭인 빵집일 것으로 생각했던 내 생각을 완전히 깨버렸다. 솔직히 한 번 오면 두 번은 안 오고 싶을 줄 알았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여긴 다음에 일부러라도 일정을 만들어서 방문해야 할 찐맛집이구나! 그런데 가격까지 또 저렴해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혼자 또 괜히 씁쓸했던 건 성심당 근처의 디저트 매장이나 식당들은 거의 한산했다는 것. 딱 한 군데 소금빵 맛집 외에는 대기가 아예 없었다. 근처에는 성심당에서 구매한 빵을 맡아주는 곳들도 있었지만, 그 외엔 이렇다 할 시그니처 맛집은 없는 듯했다. 대전이 왜 성심당의 도시로 불리는지 피부에 확 와닿는 순간이었다.
빵 맛집 성심당 근처에 다른 종류의 맛집도 있었더라면 이 거리의 상권이 더욱 살았을 텐데 대전 사람은 아니지만 괜히 아쉬웠다. 다른 곳들은 한산한데 성심당만 사람이 미어터지는 게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아마 대전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이번 여행을 하며 스쳐 지나갔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나열해 보니 별 것 아닌 글이지만, 기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문득, '그때 그 여행이 어땠지?' 싶을 때 이 글을 다시 꺼내 들여다보아야겠다. 그 여행지에 다시 가지 않아도 그때의 감성과 느낀 점을 다시 느껴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귀한 일이다. 남들이 읽을만한 글도 좋지만 내가 두고두고 읽을만한 글을 쓰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