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렸다

<명랑한 은둔자> 캐롤라인 냅

by 미스준
성인이 된 뒤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그 밑바탕에는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기를 기다렸고,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렸고, 내게 맞는 남자나 직업이나 신발, 옷, 헤어스타일 따위가 휙 하고 나타나서 나를 바꿔주기를 기다렸다. 내가 행복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마음이 평화로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외부에서 내게 주입해주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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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은 늘 엄격하다.

자기개발서들은 내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교훈은 왜 그리도 주장하는 건지.

내가 늘 부족한 사람인건 알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반드시 어떤 방향으로라도 바뀌어야 한다는 건 증명된 진실일까?

변신을 한다면 과연 어떻게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오늘까지는 이제까지의 나로 살고, 내일부터 다른 나로 산다는게 가능하긴 한걸까?


입사를 하고나서 3년까지는 후회와 자괴감의 일상이었다.

상사나 사수는 어리석어 보였고,

상사는 늘 말같지도 않은, 또는 부당한 지시를 한다고 여겼고,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않으면 직장에서 평판이 형편없어질 거였고,

평판에 따라 부서선택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거라고 믿었고,

업무 프로세스는 내 능력에 비해 너무 구렸다.

이런 직장에 내가 쭉 다닐 수 있을까?

저런 사람들과 동료의식을 가지고 일할 수 있을까?

이런 허접한 일들로 내 커리어를 쌓는게 부끄럽지 않을까?


나는 기다렸다.

너무나 무력해졌던 직장생활과 그 생활속에서 밝혀진 나의 무능을 한방에 해결할 그 무엇인가를!

좁은 시각과 일천한 지식을 한방에 업그레이드해줄 멘토를.

성격 좋고 리더십 강해서 나를 사교적으로 인도해 줄 애인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20년쯤 기다렸나?

나는 변하지 않았다.

대신 나는,

후배가 겪을 시행착오를 좀 줄여줄 수 있게 도와주는 선배이자 상사가 되어 있다.

어릴 때 보이는 작은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나의 부족함은 영원한게 아니라고 조언해주는 부모가 되어 있다.


누구를 통해서도 나에게 만족하는 법을 배울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가 가진 단점 이외에도 꽤나 장점인 듯 보이는 특징들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스스로 기특해했다.

왜 사람들과 잘 안어울리고 일만해? 라는 비난은, 어느 자리에서나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평가되었고,

업무처리에서 공정함이 최우선이었던 빡빡함은, 소신과 강단으로 평가되었다.

나의 핸디캡에 매몰되었던 오랜 열등감은, 남의 부족함에 공감하는 이해심으로 평가되었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 결국 변하지 못했다.

나를 해석하는 여러 기준이 모이고 모여, 꽤 다채로운 내가 되었다.

나에 대한 나의 판단만이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끈덕지게 버텨낸 시간의 힘이다.


누군가에 의해, 무슨 일이 벌어질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드라마처럼 어려움에 처한 나를 전폭 도와줄 키다리아저씨는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지 성형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에게 그것은, 꾸준한 글쓰기였다.

나의 일주일이 무력했더라도, 쥐어짜낸 단 몇줄의 글 만으로도 성과있는 시간으로 포장되었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쓸모있는 사람으로 산 것이 된다.

나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그 꾸준한 시간을 통과하니, 드라마틱 하진 않지만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중이라 위로가 된다.

시간을 들이지 않고서는 내가 기대한 '무슨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명랑한_은둔자 #시간의_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