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단 한 번의 삶> 김영하

by 미스준
"제가 작가가 될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가능성이 있다고 하시면 한번 열심히 해보려고요."
그 학생들은 '하고 싶음'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의 마음. 나는 누구에게도 답을 주지 않았다. 답을 몰랐고, 알아도 줄 수 없었다.
SE-2f923625-fd37-4177-a7b4-b998bb269ff6.png?type=w773 Pixabay로부터 입수된 愚木混株 Cdd20님의 이미지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무언가가 될 줄 알았다.

목표가 명확하다면,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그것이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초딩일때는 티비에 등장한 미국 여성외무장관에 매료되어 외교관을 꿈꾸었다.

고등학교때 수업시간에 태백산맥을 몰래 읽으며 역사학자를 꿈꾸었다.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선택하면서 큐레이터로 살기를 바랬다.

오랫동안 꾸준히,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한 때는, 나의 가능성이 정말 무한대라 여겼다.

어림없는 소리라는 걸 안 건, 대학원 입학을 취소했던 그 때였을거다.

대학생활 중에, 나 자신도, 선배도, 교수님도, 그 누구하나 내가 연구자로 남을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럼에도, 삶은 내 뜻대로, 의지대로 풀리지 않았다.

이미 학부시절부터 (무료로~) 대학원 수업에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을 받았고 전공교수님까지도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상태에서, 예상치 못한 '집안 사정'이라는 것이 생겼다. 나는 한 학기분 등록금을 도로 찾아 나왔고, 취업준비에 들어갔다.

그때, 끝까지 내 뜻을 굽히지 않고 대학원에 입학했더라면, 보습학원강사를 여러개 뛰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빠듯하게나마 벌면서 버텼더라면, 부모님의 생계에 보탬이 되는 순간을 조금만 더 늦춘다는 각오를 했더라면, 지금 나는 연구자로 살고 있을까?


고작해봐야 24살이었던 나는, 나에게 닥친 당장의 어려움이 긴 인생에서 한 순간에 불과한 것이라는 걸 알 턱이 없었다.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당시 내가 마음으로 의지했던 대학선배도 자신의 진로때문에 고민하던 시절이어서 나를 인도해달라 말할 수 없었다. 그 선배도 그래봐야 25살. 인생을 길게 보기에 우린 다 너무 어렸다.


나는 꿈을 포기한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 그렇게 정리했다.

외교관도 못되었고, 역사학자도 되지 못했다.

그런 순간에도 내가 유일하게 꾸준히 한 것이 있다면, 띄엄띄엄이지만 21년 동안 나에 대한 글을 썼다는 것.

블로그의 시작이 그렇듯, 처음엔 '일기'라고 생각하며 썼고, 지금은 스스로 '글'이라고 칭하며, 나도 에세이스트야~라고 말한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다.

내가 조정래는 아니지만,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나의 희망사항을 위해 오랫동안 빌드업해온 결과물들과 그것을 남기기 위해 기울였던 꾸준함은 나의 프라이드가 되었다. 누가 나를 작가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무방하다.


빌드업에는 근성과 시간이 필요하다.

때로는, 무엇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계속 하다보니 무엇이 되기도 한다.

그 '무엇'이 되고 싶어 안달났었던 욕심과 원하는 만큼 되지 못해 품었던 깊은 후회와 절망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동안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액션이 필요하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그게 나의 근성이다. 난 무언가 되어가고 있는 거겠지?


끈기가 부족하고 쉽게 절망하는 내 아이에게,

떡 벌어지는 성공적인 삶은 아니더라도,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내가 좋은 사례로 이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단_한_번의_삶 #김영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