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2007년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허경영 후보의 공약을 국민권익위원회가 소환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정부가 출산한 산모나 출생아에게 1억 원의 파격적인 현금을 직접 지원해준다면 아이를 낳는 동기 부여가 되겠느냐”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5월 1일 발표했다. 응답자의 62.6%가 ‘동기 부여가 된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충북 괴산군에서 현금을 집행한 사례가 있다. 셋째 아이를 낳은 가정에 출산 장려금 5천100만 원씩을, 추가로 만 6세가 될 때까지 3천800만 원을 380만 원씩 10회로 나누어 지급한다고 한다. 2007년 당시 허경영 후보의 ‘출산수당 3,000만 원, 결혼 수당 1억 원 지급’ 공약에 국민은 황당해했었다.
현재나 과거나 혼인과 출산은 주요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다. 경국대전에 “자녀가 30세에 가까워도 가난하여 시집을 못 가는 자가 있으면 예조(禮曹)에서 임금에게 아뢰어 헤아리고 자재(資材)를 지급한다. 그 집안이 궁핍하지도 않은데 30세 이상이 차도록 시집가지 않는 자는 그 가장을 엄중하게 논죄한다.”라고 쓰여 있다. 정조는 1791년 2월 한성(서울)에서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 노처녀를 조사하여 돈을 지원해주며 모두 결혼시켰다. 세종은 1434년 4월 26일(음력) 남자의 출산휴가를 지시했고, 세 아이를 낳은 부모에게 출산지원금을 하사했다는 기록도 있다. 서양도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고대 도시 스파르타는 미혼 남녀에게는 300%의 세금을 부과했고, 세 자녀 가족에게는 노동 면제, 네 자녀 이상은 세금을 면제했다.
2022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8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족 지원 예산이 가장 많은 스웨덴의 1.52명 대비하여 절반가량이다. 2023년 국회입법조사처는 가족 지원 예산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1.5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29%)에 크게 밑도는 수준이라고 보고서를 내놨다. 한국은행은 ‘경제전망 중장기 심층 연구 보고서’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청년고용과 가족 예산, 육아 휴직 등의 여건을 개선하면 출산율이 대략 1.6명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4월 16일 익산시 의회 제259회 임시회 5분 자유발언에서 한동연 의원은 2023년도 익산시 출산율은 0.70으로 전국출산율 0.72보다 낮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1월 15일 최재현 의원은 제257회 임시회에서 저출산과 여성 경력단절의 대책으로 익산시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적극적인 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다. 발언 안에 명확한 정답과 합리적인 오답이 모두 존재한다. 로마는 미혼여성에게 독신세 매겼고, 공직 등용할 때 같은 능력이라면 다자녀 가구에 우선적 취업 기회를 제공했다고 한다. 배려로 생각했던 제도는 차별이라는 지적이 있다.
1989년 펠리스 슈바르츠는 기업이 직장 내 출산 여성을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로 ‘하버드 비즈니스 리브’에 기고한 글에서 마미 트랙(Mommy track), 육상 트랙에서 1번도 8번도 아닌 재택근무 등 다른 유형의 번외 트랙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이후 기업은 육아 휴직 후에 돌아온 직원에게 탄력 근무, 쉬운 업무 등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한다. 쉽고 완만한 경로로 중요 직무에서 배제된 오르막이 없는 자리다. 고용노동부 ‘모성보호 제도 관련 신고 처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부터 5년간 임신·출산·육아 휴직 등을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다고 신고된 2,335건 가운데 실제로 기소되어 과태료로 이어진 사례는 6.8%인 159건이라고 한다. 배려의 의미로 만들어진 마미 트랙이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마미 트랩(Mommy trap, 엄마의 덫)으로 변질하였다.
정책이란 느낌표로 시작하여 마침표로 평가를 받는다. 저출산 문제는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육아를 지원해야 한다는 쪽으로 바뀌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렵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부모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부담이 너무 크다. 4월 30일자 이데일리에 “돈 없으면 운동 못 하는 한국, 돈 없이도 운동하는 일본”이라는 기사가 떴다. 한국은 부모의 주머니에서, 일본은 정책적으로 학교에서 동아리 형태로 ‘1인 1기’를 후원한다. 한국은 조금만 부족하면 ‘부모로서 자격이 없다’라고 치부한다. 당연히 출산과 육아의 벽이 너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론적인 정책인 주거 문제, 유급 육아 휴직 기간 연장, 유연근무제도 확산 등만으로는 부족하다. 2022년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1.26명이다.
출산율 저하는 지금의 사회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한다. 1950년대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州)는 오늘의 익산시처럼 시민이 떠나는 주였다. 이에 주 정부와 민간, 대학은 노스캐롤라이나를 살리기 위하여 ‘리서치 트라이앵글 개발 위원회’를 만들어 도시 재생 작업을 시작했다. 70여 년이 지난 현재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esearch Triangle Park)’라는 인구 130만 명의 연구 도시가 형성됐다. 익산시는 스쳐 가는 도시가 아닌 머무르고 싶은 도시, 정착하고 싶은 도시로서의 이미지 혁신이 필요하다. 지역대학을 중심으로 혁신이 이루어져 해결책을 찾아낸 사례가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익산시도 진정성을 갖고 심도 있게 고민해 볼 시점이다.
2024년 5월 17일 소통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