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권태로운 이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by 은도정신과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친구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예상해서 내가 답을 해버리는 경우 말입니다. 우리는 보통 소리가 외부에서 내부로, 즉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뇌의 신경 작동 방식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특별하고 놀라운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귀에서 소리를 감지하고 뇌로 전달하는 청각 신경 세포, 즉 뉴런들은 사실 양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한 방향은 바깥세상의 소리를 뇌로 전달하는 것이고, 다른 방향은 뇌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두 방향 중 뇌에서 바깥으로 향하는 신경 세포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반대로 외부에서 뇌로 들어오는 신경 세포는 겨우 10%밖에 되지 않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외부의 소리를 들을 때, 사실 대부분은 우리 뇌가 이미 '예측한 소리'를 듣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듣고 싶었거나 예상했던 소리만 잘 들리고, 그렇지 않은 소리들은 우리 뇌가 스스로 걸러낸다는 말입니다. 마치 중요한 정보만 골라 듣는 똑똑한 비서 같죠. 대화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측하는 내용이나 익숙한 이야기는 귀에 쏙쏙 들어오지만, 관심 없는 내용은 아무리 들어도 잘 인식되지 않습니다. 우리 뇌는 외부 세계의 모든 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 뇌는 외부 세계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부분만을 인식하죠. 뇌는 마치 효율적인 살림꾼처럼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끊임없이 '추측'하고 '가정'을 세웁니다. 그리고 꼭 필요한 만큼만 세상을 보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매일 걷는 길의 모든 돌멩이 모양을 기억하지 않듯이, 뇌는 익숙한 환경에서는 세부적인 정보들을 생략하고 전체적인 윤곽만 파악하려 합니다.

이러한 뇌의 작동 방식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스스로 질문을 던지기 전까지는 의식조차 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매일 지나치던 동네 가게의 간판 글씨체나 길가의 풀꽃 모양에 대해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저 가게 간판 글씨체 좀 봐봐"라고 말하거나 "이 풀꽃 이름이 뭘까?"라고 질문하는 순간, 비로소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때까지는 뇌의 '필터'에 걸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죠.

어린아이들은 어떨까요?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세상의 모든 것이 신기해 보입니다. 이는 아이들의 뇌가 어른들보다 외부 세계의 정보를 더 많이, 더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직 뇌 속에 '예측'이나 '필터'가 견고하게 자리 잡지 않아서, 모든 것을 새롭고 흥미롭게 받아들일 여지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점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뇌가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것, 예측하지 못한 것을 걸러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고, 세상이 점점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마치 늘 보던 같은 풍경만 보는 것처럼 말이죠.


우리가 권태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도 내면이 너무 많은 것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효율성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예측하고 여과하면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 공간'이 부족해진 상태입니다. 마치 완전히 가득 찬 방에는 더 이상 새로운 물건을 들여놓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내면의 '소음'이 너무 커서 외부 세계의 신선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음을 줄이고 여백을 만드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뇌가 익숙한 방식으로만 세상을 인식하지 않도록, 의도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제기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평소에 가보지 않던 길을 걸어보거나,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분야의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접근법입니다. 내면에 진정한 여백이 생겨야만 비로소 새로운 것들이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내면에 빈 공간이 생기면, 우리는 다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하고 맑은 호기심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그 여백을 통해 다른 이의 이야기가 들어오면 깊은 공감과 따뜻한 사랑이 피어날 것이고, 세상의 놀라운 아름다움이 스며들면 경건하고 숭고한 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권태로움은 어쩌면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의 공간을 정리하여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은밀한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 빈 공간에 채워질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여백을 기꺼이 허용하는 마음가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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