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기적 같은 일

기적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by 은도정신과

어느 시인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읽다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다시 한번 삶을 살아낼 힘을 주고, 우리가 조금 더 인간답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것 같습니다. 문득 내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있었는지 떠올려보다가,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생각나 이 글을 씁니다. 정신과 전공의 1년차 시절이었습니다. 그 시기 제가 주로 만난 환자들은 환청과 망상을 겪는 조현병 환자분들이 많았지요. 많은 분이 본인이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셨고, 그래서 때로는 원치 않던 입원과 투약을 겪으셔야 만 했습니다. 환자 A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어떤 세력에게 전염병에 걸렸으며, 심지어 부모님마저 매수당해 자신을 입원시켰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계셨지요. 저는 바로 약물 치료를 시작하지 않고, 담당 교수님과 상의해 잠시 미루기로 했습니다. 당시엔 일반적으로 빠른 투약이 관례였지만, 저는 환자 A와의 신뢰 형성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수님께 “이 환자분께 먼저 깊은 유대감을 쌓고, 스스로 병을 이해하도록 돕는 게 예후에 더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투약은 조금만 미루고 싶습니다”라고 당차게 말씀드렸으면 더 극적인 장면이 되었겠지만, 그런 멋진 대사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네요.) 처음 환자분은 극심한 분노에 입을 굳게 다무셨습니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병실에 들러 “잠은 좀 주무셨나요?”, “식사는 어떠셨어요?” 같은 평범한 안부를 여쭤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진심을 전하려고 애쓰다 보니, 십여 일이 지난 어느 순간부터 한두 마디씩 이야기를 시작하셨고, 굳어 있던 표정도 서서히 누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검사 결과 전염병이 없다는 사실을 전해드리며, 조심스럽게 병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습니다. 끝까지 병을 인정하지 않으시던 분이 어느 순간 제 말을 조금씩 수긍하기 시작했습니다. 조현병 약의 종류와 작용을 하나하나 설명드리며, 혹시 마음에 드는 약이 있는지도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환자분이 “선생님이 먹으라고 하는 약으로 먹을게요”라고 답하셨습니다. 피해망상이라는 단단한 갑옷으로 세상을 막으시던 분이, 아무 약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게 마음을 열어주던 그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단순히 의사와 환자, 그 관계를 넘어서 깊은 인간적인 연결이 느껴졌던 시간이었고, 저라는 사람에게도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이렇게 인생에는 때때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적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팍팍한 현실과 힘겨운 인간관계 속에서도, 이런 경험은 타인과의 공감 능력을 키워주고,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도 언젠가 그런 순간이 있었는지 한번 곱씹어 보셨으면 합니다. 혹시 아직 그런 기적을 만나지 못했다면, 머지않아 여러분 삶에도 따뜻한 기적이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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