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생각하는 것은 정상입니다

산만함이 디폴트

by 은도정신과

최근에 "선생님, 공부하는데 자꾸 딴생각이 나요. 저 ADHD인 것 같아요."라는 문의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대부분은 ADHD가 아닙니다. 제가 수련받을 때만 해도 성인 ADHD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진단이었으나 요즘은 성인 ADHD에 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들려옵니다. 이번에는 그 이유에 대해 제 생각을 나눠볼까 합니다.


ADHD 진단 기준안에는 집중(Concentration)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우리는 흔히 '주의(Attention)'와 '집중(Concentration)'을 같은 뜻으로 섞어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진 마음의 작용입니다. '집중'이 선택한 대상에 깊이 파고드는 돋보기라면, '주의'는 우리 주변의 신호를 감지하는 레이더와 같습니다. 그런데 ADHD라는 진단명이 한국어로 '주의력 결핍'이 아닌 '집중력 장애'로 통용되면서 오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우물만 깊게 파지 못하는 것을 병이라고 믿기 시작했지요.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진정으로 위험한 것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른 채 오직 한 가지에만 매몰되는 상태입니다.


우리의 뇌는 오랜 세월 사바나 초원에서 진화했습니다.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 위 열매를 따는 일은 아주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열매의 단맛에만 온 신경을 쏟는 '과도한 집중'은 때로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수풀 너머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바스락 소리를 놓친다면 어떨까요? 맹수의 눈빛을 알아채지 못한 채 열매만 바라본다면, 그날의 수확은 조상의 마지막 식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사바나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쉼 없이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던 '산만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공부하다 문득 창밖을 보는 것은 당신의 뇌가 아주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마음은 수많은 악기가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와 같습니다. 연주자는 눈앞의 악보에 깊이 몰입하여 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공부에 몰두하는 '집중'의 시간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연주자는 결코 악보 속에만 갇혀 있지 않습니다. 연주하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지휘자의 손끝을 살핍니다.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자신의 소리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지휘자를 무시한 채 자기 연주에만 몰입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라 고립된 소음에 불과합니다. 공부하다 잠시 딴생각을 하는 것은 당신 안의 연주자가 지휘자를 힐끗 쳐다보는 과정입니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나?", "주변에 무슨 변화는 없나?"라고 묻는 아주 정상적이고 지적인 '곁눈질'인 셈입니다. 오히려 딴생각 없이 기계처럼 공부에만 매몰된다면, 그것이 훨씬 더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ADHD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좀 더 집중해서 성적을 올리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ADHD에 대한 관심을 부추긴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성급한 자가 진단과 약물에 대한 의존은 경계해야 합니다. ADHD약은 부작용도 많고 의존성도 높은 약입니다. 문제는 점점 경쟁적으로 되어가는 세상이지요. 이런 세상에 적응하려다 보니 많은 문제들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앞서나가지 않아도 되고 빛나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 산만해도 괜찮고 가끔 길을 잃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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