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같은 꿈을 꾼다

우리는 모두 약하디 약한 인간

by 은도정신과

사람들은 저마다 고유한 꿈을 꾸지만 전 인류가 공통적으로 꾸는 꿈이 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타나는 다섯 가지 꿈인데요. 낭떠러지 추락, 누군가 쫓아오는 추격, 갑자기 이가 빠지거나 벌거벗고 있는 꿈, 그리고 무엇보다 괴로운 건 학생 때로 돌아가서 시험을 보는 꿈입니다. 우선 추락과 추격은 삶의 고단함을 뜻합니다. 해결되지 않은 숙제나 해야 할 일이 우리 뒤를 쫓는 것이죠. 내 뜻대로 안 되는 현실이 낭떠러지 같습니다. 또 치아와 옷은 우리 몸을 보호하는 자존감이죠. 그것을 잃는 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신호입니다. 남들에게 내 약점이 보일까 봐 겁이 나고 자존감이 낮아진 날에 이런 꿈을 꾸곤 하죠.


제가 흔히 만나는 대학생들은 이 다섯 꿈을 골고루 꿉니다. 그런데 나이 든 분들은 주로 시험 보는 꿈을 꿉니다.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시험지를 받지요. 저 역시 예외 없이 그런 꿈을 꿉니다. 의대 1학년이 되어 시험을 봅니다. 그런데 아는 것이 하나도 없지요.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마찬가지라 합니다. 공부를 하나도 안 했는데 시험 날이 된 거죠. 천하의 하루키라도 꿈속에선 당황하며 땀을 흘립니다. 그의 무의식을 제 나름대로 조심스레 분석해 봅니다(하루키가 이 글을 읽을 리 없으니 다행이지요). 아무리 위대한 거장이라도 인생은 늘 어렵습니다. 소설이 막힐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기 마련이지요. 새로 쓴 소설이 인기가 없으면 어쩌나 싶겠죠. 평론가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무서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거장의 고뇌는 학생의 마음과 닮았습니다. 중대한 마감을 앞둔 마음은 시험 전날과 같습니다. 그런 불안한 마음이 옛날 기억을 불러옵니다. 뇌는 가장 익숙한 공포의 기억을 꺼내 놓습니다. 우리의 기억은 논리가 아니라 감정으로 엮입니다. "이 기분 예전에도 느꼈는데?"라며 기억을 찾습니다. 그러면 뇌는 학창 시절의 시험 폴더를 엽니다.


우리는 나이 들어도 인생의 시험을 봅니다. 가족 문제, 건강 문제, 경제적 문제 등등 인생의 문제는 항상 새롭고 낯설기 마련입니다. 예습할 수도 없고 복습할 기회도 드물지요. 우리가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이나 실패는 예고 없이 찾아오죠. 그러니 공부 안 한 시험은 인생의 은유입니다. 우리는 매일 빈손으로 시험장에 들어섭니다. 정답이 무엇인지 모른 채 펜을 쥐고 고민하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참 연약한 존재입니다. 강한 척 살아가지만 속마음은 늘 떨리고 있죠. 나만 모르는 것 같아 주변 눈치를 살핍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어 옆 사람의 꿈을 보세요. 그 사람도 어제 꿈속에서 시험을 망쳤을 겁니다. 우리 모두는 보이지 않는 공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나만 약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약합니다. 인간이 약하디 약한 존재라는 건 슬픈 일이지만 오히려 서로를 도와야 할 이유입니다. 서로 다독이며 이 힘든 인생을 잘 버티면서 살아봐요.

작가의 이전글내 마음에 참 평화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