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 참 평화 없어라

서열로부터의 자유가 진짜 자유

by 은도정신과

우리는 모두 마음의 안정을 간절히 원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왜 마음 편한 날보다 불안한 날이 더 많을까요? 그 이유는 사실 우리 인간이 불안을 안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려는 마음은 이미 우리의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져 있지요.

침팬지 사회를 보면 암수 할 것 없이 1등부터 꼴등까지 엄격한 서열이 존재합니다. 서열이 높아야만 먹이와 짝짓기의 우선권을 얻을 수 있고, 서열이 낮으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본능이 우리 인간에게도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지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언어의 탄생 목적조차 타인에 대한 '뒷담화'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뒷담화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나의 서열을 높이기 위한 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즉, 아는 것이 곧 생존을 위한 힘이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각종 미디어와 SNS가 우리의 이러한 생존 본능을 쉼 없이 자극한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옆집 사람과만 비교하면 되었지만, 이제는 스마트폰만 켜면 전 세계 사람들의 화려한 일상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식들을 듣다 보면, 나만 혹은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은 극심한 공포, 이른바 '포모(FOMO,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그래서 남들이 하는 건 일단 다 해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유명 외국 마트의 가방이 유행하면 나도 하나쯤 들고 있어야 할 것 같고, SNS에서 두쫀쿠가 화제라면 줄을 서서라도 먹어봐야 비로소 안심이 됩니다. 유행을 따르지 못하면 마치 무리에서 낙오되어 생존을 위협받는 것 같은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우리의 본능이 경쟁적이고 비교 중심적이니, 삶이 고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늘 세상에 레이더를 켜둔 채 살아가지만, 안타깝게도 그 레이더에 걸리는 것들은 대개 우리의 평온을 깨뜨리고 불안을 부추기는 것들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조금 더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만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선, 우리의 기본 설정값이 '불안'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해 봅시다. 만약 당신이 한 시간 넘게 아무런 걱정 없이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면, 당신은 정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의 불안을 심화시키는 정보들을 스스로 가려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아는 것이 힘이었지만, 이제는 아는 것이 스트레스인 세상입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지요. 저 역시 의식적으로 SNS를 멀리하고 뉴스를 잘 보지 않으려 노력합니다.(솔직히 고백하자면, 백화점에서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면 할인을 해준다는 말에 만든 계정은 하나 있답니다)


비발디의 성악곡 중에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Nulla in mundo pax sincera)>라는 곡이 있습니다. 혹시 알고 계시는지요? 그 가사 중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세상은 늘 우리를 속이고 상처를 주지. 웃음 짓고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멀리해야 해. 명랑함과 유쾌함을 무기 삼아 우리를 잠식하기 때문일세. 뱀들은 언제나 꽃과 아름다움 안에 숨어 독을 품고 있네." 여기서 '세상'과 '사람'이라는 단어를 '미디어'와 'SNS'로 바꾸어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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