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잠 속에 숨겨진 아이들의 마음

by 은도정신과

요즘 거리에서 '과잠(학과 점퍼)'을 입은 대학생들을 참 많이 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90년대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풍경이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디자인이 특별히 멋진 것도 아니고 그저 큼지막한 학교 로고가 박힌 점퍼를 왜 저토록 매일 같이 입고 다니는지 처음에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애교심이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많구나 하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이 과잠 문화가 한 단계 더 나아가, 소매나 뒷면에 출신 고등학교 이름까지 새기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합니다. 대학 이름도 모자라 고등학교 이름까지 덧붙이는 아이들의 마음. 그 촘촘한 자수 뒤에 숨겨진 요즘 세대의 진짜 속마음은 무엇일까요? 과잠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이해해 보고 싶었습니다.


사실 이 아이들의 '똑같아지려는 욕구'는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중고등학생들도 약속이라도 한 듯 검은색이나 회색 같은 무채색의 겉옷만 입고 다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지요. 사춘기라면 보통은 남들보다 튀고 싶고,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고 싶을 법도 한데, 아이들은 마치 군복을 입은 것처럼 튀기를 거부합니다. 대학생들의 과잠 역시, '어느 대학생'이라는 은근한 과시를 담고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 무채색 유행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입니다.

왜 아이들은 이토록 평범함 뒤로 숨으려 할까요? 저는 그 해답을 카카오톡이나 SNS 같은 '디지털 환경'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인류학에는 인간의 언어가 복잡한 사회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뒷담화(수다) 도구'로 진화했다는 흥미로운 가설이 있습니다. 저희 세대에도 뒷담화는 존재했지요. 하지만 그때의 뒷담화는 골목길의 메아리 정도였습니다. 술자리에서 누군가를 흉보더라도 그 소문은 학과나 동아리라는 좁은 세계 안에서만 맴돌았고,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며 잊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디지털 주홍글씨'의 시대입니다. 스마트폰이라는 기록 장치가 24시간 아이들의 일상을 감시합니다. 누군가의 사소한 실수나 비호감 섞인 행동이 단 한 장의 카톡 캡처로 박제되는 순간, 그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낙인이 됩니다. 과거에 대여섯 명에게 전달되던 뒷담화가 이제는 단톡방 클릭 한 번에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됩니다. 비난의 화살은 무차별적이고 잔인하며, 그 상처는 평생을 따라다니지요.

이 무시무시한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이들이 선택한 생존 전략이 바로 '평범함 뒤에 숨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튀는 행동을 했다가 단톡방의 먹잇감이 되느니, 남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학교 로고 뒤로 숨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누군가를 만날 때조차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이 대화가 어디에 퍼질까?"를 본능적으로 계산합니다. 그러다 보니 대화에서 순발력 있게 대응하기보다, 표정을 지우고 무표정으로 방어막을 칩니다. '젠지스테어(Gen Z Stare)'라는 멍한 응시 역시, 당황한 내색을 숨기고 "난 괜찮아"라고 말하는 일종의 슬픈 포커페이스인 셈입니다.


처음에는 저도 요즘 아이들의 이런 모습이 그저 자기 우월감을 뽐내려는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줄로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깊이 생각해 볼수록, 그 이면에는 상처받고 싶지 않은 절박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점퍼는 그들의 자부심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연약한 자아를 지키기 위한 갑옷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예전에 정신과 공부를 할 때는 '부모의 양육'이 정서발달에 중요한 원인이었지만 이제는 SNS가 주는 거대한 심리적 압박이 부모의 영향력을 넘어설 만큼 강력해진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편리한 환경에서 살고 있을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가장 버겁고 가혹한 감시의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이들에게 "왜 이렇게 사니?"라고 다그치기 전에, 그들이 왜 무채색 갑옷을 입어야만 했는지 먼저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이제는 경제적인 풍요만을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실수해도 괜찮은 '정신적으로 편안한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줄 것인가를 우리 사회가 깊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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