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닌 이해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여러 결심들을 합니다. 운동도 하고 다이어트도 해서 어제보다 더 나은 나를 꿈꿉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 결심이 흐려질 때, 스스로를 자책합니다. "나는 왜 의지가 부족할까?", "왜 나는 늘 이 모양일까?"라고 말하며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 혹시 작심삼일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나요? 제가 오늘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여러분의 의지력이 부족하다는 질책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이성'이라는 도구가 생각보다 힘이 약하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성이 감정과 본능을 다스려야 한다"는 가르침 아래 살아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그 포문을 열었죠. 그는 이성을 기수로, 감정과 본능을 거친 말로 비유하며 기수가 말을 완벽히 제어해야만 훌륭한 삶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인류의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의지로 모든 것을 이겨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상 자신의 감정과 본능을 이성으로 완벽하게, 그것도 평생 다스린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잠시 동안은 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영원히 그렇게 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도저히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워두고, 그것을 해내지 못할 때마다 좌절감과 죄책감이라는 깊은 늪에 빠져 지내온 셈입니다.
그러면 왜 이성은 본능을 이기기 힘들까요? 그 답은 진화의 시간 속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 몸의 신경세포가 만들어지고 다듬어져 온 역사는 최소 5억 년에 달합니다. 5억 년이라는 시간 동안 생명체는 어떻게 하면 살아남고,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아끼며 종족을 번식시킬지 처절하게 학습해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본능'이자 '감정'의 뿌리입니다. 반면,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추상적 사고'나 '이성'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길게 잡아야 30만 년 정도입니다. 5억 년이라는 거대한 산에 비하면 30만 년은 그 정상에 살짝 얹혀 있는 작은 조약돌 하나와 같습니다.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이 관계를 '코끼리와 기수'에 비유했습니다. 거대한 코끼리(본능과 감정) 위에 아주 작은 기수(이성)가 앉아 있는 형국이죠. 기수가 아무리 고삐를 당겨도 코끼리가 가고 싶은 방향이 확고하다면, 기수는 그저 코끼리가 가는 길을 정당화하는 '대변인' 역할에 그칠 뿐입니다. 이 작은 이성이 주인 행세를 하려 했으니, 작심삼일이 발생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법칙인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을 '궤도 위에 놓인 열차'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코끼리는 길 없는 곳이라도 갈 수 있지만, 열차는 이미 정해진 궤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타고난 유전자, 자라온 환경, 몸에 배어버린 습관은 열차가 달릴 '궤도'를 결정합니다. 어떤 열차는 태생적으로 엔진이 강력해 힘차게 나아가고, 어떤 열차는 조금 느리지만 주변 풍경을 잘 살핍니다. 어떤 열차는 무리 지어 달리는 것을 좋아하고, 어떤 열차는 고요히 혼자만의 선로를 달리는 것을 선호하죠. 이 열차에 탄 기관사(이성)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기관사는 열차의 방향을 순식간에 꺾을 수도 없고, 선로를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기관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끔 가속 레버를 당겨 속도를 내거나, 위험한 순간에 브레이크를 작동시키는 정도입니다. 작심삼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기관사가 무능해서가 아닙니다. 열차는 이미 자신의 궤도를 따라 달리고 있는데, 기관사가 갑자기 궤도에도 없는 방향으로 핸들을 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기차를 보지 못한 채 기관사에게만 "왜 저쪽으로 가지 못하느냐"라고 다그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하고 무의미한 일입니까.
이 사실을 깨달으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흔히 타인의 인생, 특히 자녀의 인생을 보며 "너는 왜 의지가 약하니?", "왜 그렇게 살지 못하니?"라며 훈수를 둡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자기만의 궤도 위를 달리고 있는 열차 기관사에게 갑자기 다른 궤도를 타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조차 작심삼일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의지만으로 삶을 바꾸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 내면에 깃든 거대한 '코끼리'와 '열차'를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부족함이 보일 때, 그것을 '의지 부족'이라는 잣대로 심판하기 전에 그가 타고 있는 열차의 무게와 그가 달리고 있는 고단한 선로를 먼저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의 이성보다 훨씬 더 크고 거대한 존재(본능, 기질, 무의식이라는 열차)가 있음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생은 풍요로워집니다. 나 자신을 '의지로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깊이 이해하고 보살펴야 할 거대한 생명체'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작심삼일을 했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그것은 여러분의 열차가 잠시 숨을 고르며 원래의 궤도를 확인하는 과정일 뿐입니다. 기관사인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열차를 매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 열차가 어떤 상태인지, 궤도 위에 위험한 장애물은 없는지 다정하게 살피는 것입니다. 나와 타인의 한계를 인정하는 그 지점에서 진정한 공감과 여유가 시작됩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열차가 각자의 궤도 위에서 평안하고 건강하게 달리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당신의 열차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