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나이 6살에 나의 길을 찾다.

43세에 시작한 석사기 01

by 신혜원

2019년에 미국으로 온지 4년만에 나는 UF에서 석사를 시작했다.

2023년이 시작되기 전에 지금의 교수님을 동네 스타벅스에서 처음 뵈었고,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아니하시고, 왜 이 공부가 하고 싶냐고 물으셨고, 그러면 ‘하면 되지’라고 하셨다.

코비드 시절이 시작되기 직전, 클로짓에서 혼자 기도하며 ‘토플토플’만 떠올라 확인차 시작했지만,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아이를 키우며, 하루 일과의 마무리는 드라마나 웹소설로 채워 왔기에, 이 모든 익숙한 유혹과 습관 속에서 공부를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미국에도 코비드 시즌이 찾아 왔고, 토플 책을 사놓은 채로...

약 1년 동안 세아이들과 집에서 하루종일 뒹굴고, 밥하랴, 살림 하랴, 온라인 수업 봐주랴...

직장 생활 할 때 바라고 바라던 맹장터짐이 하필이면 코비드 시즌에 미쿡에서 걸렸고,

자동차 사고도 하필이면 미쿡에서 냈고, (서 있는 차를 박았다.)

남편은 1년씩 펠로우를 연장하며, 불확실함 속에서 살며, 짬짬히 지문 하나씩 보며.. (지문 하나 푸는데 시간이 참 많이 걸리더라. 지칠대로 지쳐 밤 10시 이후부터나 앉아 있었으니, 눈에 들어오냐고..)


이 모든 사연과 함께, 첫 토플을 보는데 1년이 걸려었다. 물론 마음의 두려움과의 싸움이 가장 컸다.

주제에 내 꿈을 찾아 떠날 수도 없었기에, 텍사스 사는 동안 UT Austin과 San Antonio에서 제시하는 최소한 점수 80점 이상이 다행히 나와, 혹여나 한번 더 볼까 하는 마음도 접어었다. 그리고 토플 시험의 압박도 또 겪기 싫었다. 더한 것은 초라한 토플 점수로 인해 합격 되지 않아면 ‘할 수 없지’, 공부에 목숨 걸 나이는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그리고 San Antonio에서는 Instate학비로 혜택을 주겠다 했으나, 그 때 남편의 직장이 UF로 결정 되면서, 답장도 하지 않고, 미련도 없이 떠나왔다.

세 아이들과 남편과 사는 가정 생활이 먼저고, 우리는 함께여야 하는 것이 삶의 우선 순위는 어떤 이유에서도 바뀔 수 없는 부분입니다.


UF에 application due date는넘었지만, 미국의 기회의 나라이요, 두드리는 자에게 가끔 원칙 없이 열리는 곳이기에,

용감하게 이메일을 보냈지만, GRE 점수까지 다 갖춰지면 언제든 입학을 고려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1-2달 사이에 새로운 곳에서 GRE와 씨름하여 넘어뜨릴 자신이 없어서, 또 쿨하게 패스를 했다.

다음해 GRE를 임시적으로 면제 해준다 했다 (호이~~). 결혼 직전 유학 가려고 GRE 시험을 쳤던 나에게 그 시절은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마침, UF인테리어 디자인과는 리서치 트랙이 메인이란다.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 Cornell밖에 없어서 그 힘든 GRE를 치며 준비 했는데, 여기도 있단다.


남편 따라 여기까지 왔고, 토플도 점수가 생겼고, (2년 유효 기간이 거의 끝나가던 시점), 허접하지만 10년도 넘은 남은 자료로 만들어 놓은 포트폴리오(이것도 정말 사연 덩어리)도 있었고,

다른 전공을 하고파도 할 줄 아는게 없어서, 원래 하려던 걸 해야지 했는데,

여기가 ‘그 곳’ 인거다.


영어 공부 삼아 석사를 해야지 하고 시작한 이 것이, 결혼 하면서 접었던, 딱 ‘그 것’을 세월을 건너 시작하게 된것이다.




작가의 이전글2022년에는 이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