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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핀드로 Aug 03. 2022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하락하는 이유

부모에게 자식은 농작물이다

 내가 아는 한 후배는 6녀 1남인 집안의 귀하디 귀한 막내아들이다. 그의 부모님이 아들을 얼마나 원했는지는 6이라는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6명의 누나로도 이미 충분히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굳이 아들을 낳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대를 잇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왜 지금은 아들 선호 사상이 희박해지고 심지어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도 많을까? 


***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 즉 한 여성이 가임 기간 중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가 이제 채 1명도 안 되는 0.92명에 불과하다. 이는 거의 세계 꼴찌 수준이다. 한 해 태어나는 아이들을 다 합쳐도 이제 30만 명이 안 된다. 대한민국이 존속하는데 가장 심각한 위협은 다름 아닌 인구 감소다.


 원시 시대의 합계 출산율은 15명 정도였고, 19세기 조선시대에는 8명 정도였다. 1970년에는 낮은 소득 수준과 정부의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합계 출산율은 4.53명으로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이제는 경제 성장과 더불어 전에 없던 갖가지 출산 장려책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명 이하로 곤두박질친 출산율은 다시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출산율 저하 현상을 이해하려면 먼저 사람들이 왜 출산을 하고 자녀를 키우는지 그 목적을 이해해야 한다. 출산, 즉 인간의 번식에 대해서 다시 정리해본다. 


 지구 상 최초의 생물은 번식을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하지만 나중에 한 개체가 우연히 분열하여 2개의 개체로 쪼개졌다. 그리고 최초의 집단을 이루었다. 집단을 이룬 개체들은 그전보다 오래 살았다. 이후 생물들은 분열을 통해 집단 내 개체수를 유지하며 이를 주요한 생존 전략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모든 생물은 생존 유지의 방편으로 집단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생물은 집단의 개체수를 유지하기 위해 번식을 했다.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생존 유지를 위해서.


 새로운 집단 구성원으로 어떤 개체가 자신의 생존에 더 유리할까? 가급적 자신과 여러 형질이 유사하고, 생산력이 우수하고, 협업이 용이한 존재가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자신보다 더 오래 살 수 있는 존재는 자신이 노후했을 때 유용하다. 그런 존재가 인간에게는 바로 자녀다. 


 인간에게 자녀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의 출산 시기를 통해서 그 답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은 보통 20~30대에 출산을 한다. 일반적으로 이때가 자신이 소비하고도 잉여의 생존 자원을 갖기 시작하는 나이이다. 잉여분은 그냥 썩히면 안 된다. 노후를 위해 어딘가 저장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이즈음에 출산을 한다(장기 적금도 당장은 필요하지 않은 여유돈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는 10대나 40대가 아니라 생산성이 우수한 20~30대다. 최근 출산 연령이 높아지는 현상도 잉여 생존 자원이 발생하는 시기가 늦어지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부모는 출산 후 10~20년간 자녀를 양육한다. 이를 통해 자녀가 독자적인 생존 자원 획득 능력을 갖도록 한다. 그  사이에 자녀를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 만들고자 교육한다. 또 상호 신뢰를 지속적으로 쌓아 밀접한 협업 관계를 맺는다. 이리하여 자신이 노후, 사고, 질병, 파산 등으로 생존 자원 획득이 어려워지는 위기 상황에 자녀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한다. 결국 자녀는 부모에게 연금, 보험, 사회 보장 제도와 비슷한 존재인 셈이다.


 세계 각국의 출산율을 비교해봐도 자녀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국가의 출산율은 선진국보다 높다. 몇 년 전 국가별 합계 출산율 데이터에 따르면 니제르 7.13명, 소말리아 6.08명, 콩고 5.92명으로 우리나라의 몇 배에 달한다. 하지만 이들 나라들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 이처럼 출산율이 높은 국가들은 대부분 경제 발전이 더디고 노동 집약적인 농업과 수공업이 주요 산업이다. 


 빈곤 국가의 빈곤 가정에서는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바로 일을 하게 한다. 그래서 돈을 벌어오게 한다. 학교 교육은 일하는데 지장이 없는 수준까지만 받게 하는 경우가 흔하다. 부모는 최소한의 투자만 하여 투자 대비 수익률을 최대한 높이려 한다.  


 이는 마치 1차 산업 혁명기의 영국과 비슷한 상황이다. 18~19세기 산업 혁명기의 영국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이유 중 하나가 7~8살짜리 자녀가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자녀가 많을수록 부모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높은 출산율의 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현재의 빈곤 국가도 200년 전 영국과 비슷하다. 그래서 능력이 되는 한 아이를 많이 낳으려 한다. 그래야 자녀가 커서 더 많은 생존 자원을 부모에게 가져다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라는 재정 여력이 부족하기에 사회 보장 제도도 빈약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노후에 의지할 곳이라곤 자녀들뿐이다. 이런 곳에선 보통 남아 선호 사상도 강하다. 남자아이가 일자리를 얻기 용이하고 더 많은 생존 자원을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녀는 부모가 만들어낸 생물학적 연금이다. 특히 아들을 낳아 집안의 대를 잇게 하겠다는 것은 연금을 운용할 전담 펀드 매니저를 두겠다는 뜻이다. 펀드 매니저가 그만두면 계약직이라도 두어야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양자라도 꼭 두려고 했다.


 국가별 출산율은 다 다르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까?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출산율은 빈곤 국가보다 낮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먼저 선진국에서는 자녀가 부모에게 생존 자원을 공여할 만큼 성장하기까지 투입되는 에너지와 자원, 즉 양육비와 교육비가 많이 든다. 게다가 자녀도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일찌감치 독립할 수 있는 환경, 예를 들어 학자금 대출 제도, 파트타임 일자리 등이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부모의 투자를 거절하거나 투자금을 갚지 않고 떠날 수 있다. 부모가 자녀를 애써 키워도 노후에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해 적자 볼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자녀를 낳으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또한 선진국은 자녀라는 생물학적 사회 보장 제도가 불필요하다.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 보장 제도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또 젊었을 때, 노후를 보내는데 충분한 생존 자원을 부동산이나 금융 자산의 형태로 비축해 둘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아예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해도 출산을 하지 않는 커플들이 많다. 


 그래서 선진국에서의 자녀의 가치는 빈곤 국가와 다르다. 선진국은 빈곤 국가보다 남아 선호 사상이 약하거나 아예 없다. 어차피 남아이건 여아이건 투자금 회수가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더라도 남녀의 생산성 차이가 크지 않기에 남녀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선진국 중에도 의외로 높은 출산율을 보이는 나라가 있다. 북유럽 선진국들은 노후에 대비한 사회 보장 제도가 잘 갖춰진 국가다. 그럼에도 비교적 높은 출산율을 보인다.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민자들의 영향이 있다지만, 그들의 영향을 제외해도 우리나라보다 꽤 높은 편이다. 


 이런 국가는 출산에 따른 재정적 혜택이 많다. 즉 출산 시 부모가 투자해야 하는 에너지와 자원을 국가가 일부 부담하여 감소시켜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부모의 신경계 속 계산기가 자녀 출산이 수지맞는 비즈니스라고 인식하도록 한다. 다시 말하지만 부모는 아직 누가 나올지도 모르는 자녀를 위해 출산을 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 개체들의 생존에 자녀의 출산이 도움이 될지, 된다면 어느 정도인지 철저하게 예측하고 나서 출산을 결정한다. 이를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이미 국가와 정부도 알고 있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이 된 우리나라도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재정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아직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출산 장려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젊은 부모들이 출산을 둘러싼 환경에 변화가 생겼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새로 입수한 정보에 근거하여 출산의 손익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 이런 정보의 유통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게 마련이다. 


 TV에서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또다시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뉴스가 나온다. 젊은 부부들은 이 뉴스를 보면서 다른 사람들이 출산을 하지 않는 것에는 무언가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만약 자신들만 출산하게 되면 자신들의 자녀가 노인들을 위해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할 것이고, 정작 부모에게 제공할 수 있는 생존 자원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투자 대비 수익성이 별로라고 여기고 출산을 더욱 꺼리게 되는 것이다. 저출산의 악순환이다.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이 급속히 성장했다. 따라서 젊었을 때 저축할 수 있는 생존 자원의 양이 세계 어느 국가 못지않은 수준까지 빠르게 증가하였다. 그런데 인간과 인간 집단은 자신이 보유한 생존 자원의 보유량이 아니라, 생존 자원 획득 속도의 변화, 즉 가속도에 민감하다. 이런 특징이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앞서 언급한 북유럽의 선진국들은 이미 우리보다 훨씬 앞서 부를 이루었다. 이제는 그 증가 속도가 과거처럼 빠르지 않다. 그래서 그곳의 국민들은 생존 자원의 충분함에 둔감하다. 사회 복지 제도가 잘 갖춰진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기에 감각하는 생존 자원의 양은 많지 않은 것이다. 이런 무의식 속의 선택이 북유럽 국가의 출산율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의 무의식은 자녀의 도움 없이 노후를 보낼 만큼 충분한 생존 자원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굶어 죽을 걱정은 전혀 안 해도 되고 저축, 연금, 부동산, 주식, 안정된 일자리와 같은 생존 자원이 넉넉하다고 인식한다. 자녀를 대신할 수 있는 친구, 연인, 동호회, 커뮤니티 같은 인적 네트워크와 경찰, 소방관, 의사, 간병인과 같은 서비스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녀라는 전통적 협업 파트너가 없어도 노후가 불안하지 않다. 이런 급격한 사회의 변화는 그 변화의 가속도만큼 출산율을 낮춘다.


 부모가 출산이란 사업의 타당성을 계산할 때 꼭 필요한 것은 정보다. 유전 정보, 감각 정보, 학습 정보, 미디어 정보도 계산에 참조한다. 예전에야 가족, 친구, 이웃과 같이 주변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신뢰했지만 지금은 TV, 신문, 책, SNS, 인터넷 커뮤니티와 같은 미디어로부터 얻은 정보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환경이 동일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증가했다는 뉴스가 나오면 남들이 그런 선택을 한 타당한 이유가 있겠거니 추측해서 출산율은 늘어날 것이다. 반대로 출산율이 감소했다는 기사가 나오는 한 더욱 감소할 가능성도 있다. 또 전쟁, 재난, 경제 파탄 등으로 사회 보장 제도가 사라지게 되면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증가되어 출산율은 급격히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출산 장려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가급적 부모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있어야 한다. 출산 여부는 신이 정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결정한다. 그것도 동전 던지기가 아니라 계산을 해서 정한다. 동화책을 읽는 것은 아이들이지만 동화책을 사는 사람은 부모다. 책을 팔려면 아이에게 잘 보이기보다 부모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출산 장려 정책을 살펴보자… 출산 축하금, 영아 수당, 출산 휴가, 육아 휴직, 주택 공급… 아이들에게 물어보고 만든 정책은 없다.


***


 그 후배는 결혼하고 딸만 셋을 낳았다. 주위의 여러 집들을 둘러보니 엄청나게 성공적인 투자를 한 셈이다. 응당 축하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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