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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핀드로 Aug 03. 2022

청개구리 인간들

와이프가 냉장고를 사겠다는 것을 막는 이유

 와이프가 올겨울에 냉장고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미리 아이들에게도 손을 써 두었는지 다들 대찬성이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직 고장 한번 안 나고 쓸 만한 냉장고를 왜 바꾸냐’고 했다. 와이프가 화를 냈다.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식구들이 집에서 식사하는 횟수가 늘었다. 그래서 일주일치 식재료를 사와 냉장고에 넣을 때마다 공간이 부족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와이프가 냉장고를 사겠다는 것에 반대했다. 반대한 이유를 잘 생각해 봤다. 한참을 생각해보니 와이프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는 이유밖에 찾을 수 없었다.   


***


 청개구리 본능은 반항심이나 모험심이 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될 뿐, 자신과는 상관없는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집단보다 개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생물의 본성이다. 집단의 이익은 어디까지나 개체에 대한 보상이 담보될 경우에 한해서 우선 될 수 있다. 만약 개체의 일방적인 희생만 요구되고 그에 대한 보상이 불확실하거나 부족한 선택이라면, 우리는 다수에서 빠져나와 소수의 청개구리가 된다. 이것은 회피불가능한 생존 본능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청개구리 본능이 모든 개체들에게 잠재되어 있는 생물 집단만이 현존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다수의 의견에 따르지 않았던 소수의 선조 덕분에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생존 전략 중 하나다. 이것을 출생 이후에 교육으로 전수하려면 너무 늦다. 그래서 아예 유전자 속에 심어 놓아 대대로 물려준다. 청개구리 본능이 왜 중요한 생존 전략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150명으로 이루어진 원시 부족이 있다. 이 부족이 한곳에 오래 거주하다 보니 주변에 먹잇감이 거의 다 떨어졌다. 이제 매머드 한 마리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매머드가 너무 힘이 세고 사납다 보니 열 명, 스무 명으로는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따라서 부족장은 150명 모두가 힘을 합쳐 사냥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맞는 말이다. 50명보다는 90명이, 90명보다는 150명이 나서야 매머드를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꼭 한두 명 정도는 동조를 하지 않고 반대를 한다. 혹은 겉으로 동조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사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딴 짓을 한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 사냥에 성공할 것이고, 참가하지 않은 배반자는 나중에 불이익을 당한다. 하지만 확률적으로는 낮더라도, 흥분한 매머드에 의해 사냥 나간 부족원들이 몰살당하거나 다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사냥에 나서지 않은 배반자는 어부지리로 부족 내 1인자가 된다. 운 좋으면 배반자가 족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원시 부족 간의 전쟁을 생각해 본다. 두 부족 사이의 갈등이 커져서 결국 서로 전쟁을 하기에 이르렀다. 상대 부족은 우리보다 부족원의 숫자도 적고 힘이 센 젊은이도 별로 없다. 싸우면 우리가 이길 것이 확실하다. 우리 부족원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나가 싸우면 절대 질 수 없는 전쟁이다. 부족장은 단결된 참전을 호소한다. 충분히 논리적인 호소이기에 모든 부족원들이 합심하여 싸우러 나간다. 아마 대부분의 경우 예상대로 승리를 거둘 것이다. 그런데 승리의 확률을 과연 100%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전사의 수가 적의 100배가 된다 해도 패배의 확률은 완전한 0%는 아니다. 승리의 확률은 99.99999%이고 패배의 확률도 0.000001%만큼은 존재한다. 이렇게 불확실성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면 다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소수가 나타난다. 그래서 다들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 나갈 때,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꾀병을 부린다. 적진을 향해 돌격할 때, 옆길로 빠져 바위 밑에 숨는다. 심지어 우리보다 전력이 약해 보이는 적들에게 투항하기도 한다. 이런 겁쟁이이자 배신자들은 전쟁에 이긴 후 처단 받는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전쟁에 진다면 그 부족의 얼마 안 되는 생존자가 된다. 


 거주지의 결정, 이웃 부족과의 전쟁 등은 부족의 흥망을 결정 짓는 중요한 선택이다. 100번 중 99번이 옳은 선택이었다 할지라도, 단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부족의 소멸, 즉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에게는 최악의 경우까지 고려하여 생존해 내고, 최대의 이익을 취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래서 청개구리 인간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의 수백 대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 본다. 그러면 그에게도 반역자와 탈영병이었던 조상이 최소 몇 명쯤은 있다. 그 조상의 반역과 탈영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존재할 수 없다. 그들의 강렬한 성공 경험은 우리의 유전자 속에 생존 비결로 남아 있다. 그리고 무의식 속 계산식에 들어가는 값들에 영향을 준다. 누구나 살다보면 한번쯤 반역자가 되는 이유다.


 이번에는 주식 투자로 생각해 본다. 분석 보고서, 차트, 회사 내부자 정보까지 총동원하여 반드시 상승할 것이라고 판단되는 종목을 찾았다. 보유한 자금 전체를 이 종목 하나에 집중 투자하는 전략은 수백 번 연속 성공할지 모른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임직원의 비리, 테러, 금융 위기 같은 돌발 변수로 인해, 어느 날 갑자기 도산하는 기업들도 더러 있다. 그래서 수십 년간 계속 한 종목만 선택해서 투자하다 보면 결국은 투자 자금을 몽땅 날리게 된다. 도박판에서 딴 돈을 모두 걸고 도박을 계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집단의 행동 통일 또한 전혀 다를 바 없다.


 현명한 투자자라면 최고의 수익이 기대되는 한 종목에만 몰빵하지 않는다. 기대 수익이 낮거나, 때론 상승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 같은 종목이라 할지라도 기계적으로 일정 비율은 포트폴리오에 넣어 둔다. 그래야 장기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 주식투자 수익률이 남들만 못하다는 불만이 20년째 이어지는 이유를 알았다.


***


 내가 냉장고 구입을 반대한 것은 내가 보유한 정보와 계산에 충실한 결과다. 아마 조선 시대 조상님 중에 기분 내키는 대로 느티나무 찬장을 산 분이 계셨나 보다. 그 바람에 약 한 첩 값이 없어 쩔쩔매셨겠지. 그 경험 때문에 나는 반대했다. 

 욕만 얻어먹지 어차피 사게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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