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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핀드로 Aug 04. 2022

제사와 종교의 기원

"동물의 왕국"에서 힌트를 얻다

몇달전 설날 아침, 아들 녀석이 물어온다.

"아빠, 제사가 뭐야?"

태어나서 한번도 제사를 접해본 적이 없으니 물어볼만도 하다.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은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응. 제사는 조상님이 우리 후손을 낳고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려고 예를 올려 조상의 넋을 기리는거지.

예로부터 정성들여 제사를 지내면 조상님이 후손들을 지켜주고 복을 주신다고 믿었거든."

"아빠는 제사 안지내니까, 나도 나중에 아빠 제사 안지내도 되지?"

"그래, 죽으면 다 끝인데... 명절에 제사 지내지말고 어디 놀러가."

(나는 왜 종신보험을 들었을까...)


"그런데, 제사는 언제 생긴거야?"

"글쎄다. 조상에 대한 제사는 고려말부터 지내기 시작했다는데. 종교의 제례까지 따져보면 원시시대부터겠지. 예전에는 조상 뿐 아니라 자연을 숭배하기도 했어. 천재지변은 신이 노해서 생긴 것이라고 믿었거든."


여기까지는 다 알고 있는 이야기....

이제부터는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


***


인간이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대상은 조상 뿐만 아니라 무척 다양했다. 

태양, 달, 용왕(바다), 날씨 변화, 바위, 나무, 화산, 산신령(산이나 호랑이), 삼신할멈, 각종 귀신, 기타 여러 신들.....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였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종교의 숭배 대상이 되었다. 


유발 하라리는 종교를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의 질서’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은 인간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생각이다. 종교는 인간의 두뇌가 진화하면서 대뇌피질의 신경세포가 충분히 발달한 후 상상력이 발화되어 창조한 것이 아니다. 종교는 40억년 전 지구 상에 생물 집단이 생겨나면서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된 생존 방식 중 하나다.


드넓은 세렝게티 초원. 이곳에 1,000마리로 이루어진 소 한 무리가 살고 있다. 소떼 바로 옆에는 10마리로 이루어진 사자 한 가족이 살고 있다. 이 사자들은 오랫동안 이 소떼를 먹잇감으로 삼고 있다.


사자들은 3~4일에 한번, 배가 고파졌을 때에만 소들을 사냥한다. 그런데 한번에 딱 한 마리만 잡아 먹을 뿐, 그 이상은 사냥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소를 사냥하면 먹지못하고 남긴 고기는 상해버린다. 그리고 괜히 소떼의 개체수만 줄어들어 나중에 사냥할 먹잇감이 줄어든다. 즉, 지나친 사냥은 생존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사자들은 소 한 마리를 잡아 포식하고 나면 3~4일 동안 사냥은 하지 않고 나무그늘 밑에서 한가하게 쉰다. 하지만 그건 인간이 인간중심주의에 얽매여 바라보는 편견일 뿐이다. 사자들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자연계의 생존경쟁에는 단 1초의 놀이시간도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사자무리들은 자신들의 먹잇감인 소떼가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는지, 다른 사자나 하이에나 무리가 자신의 소떼를 습격해서 몇마리 축내는 것은 아닌지 쉬는 동안에도 두리번 거리며 감시한다. 만약 누군가 소떼를 습격하려 한다면 사자들은 목숨걸고 소떼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이제 소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자신들의 무리 바로 옆에 대적불가능하고 사나운 사자 무리가 있다. 그렇다고 그들을 피해 멀리 도망가는 것이 능사일까? 아니다. 저 산 너머로 이주해도 그곳에 더 많은 포식자들이 우글거릴 수 있다. 안전한 곳이 있어도 그곳까지 가는 길에 하이에나, 들개, 치타에게 공격받아 멸족될 수도 있다. 차라리 이 강력한 사자 무리 옆에서 3~4일에 한 마리씩만 정기적으로 희생되는 것이 자신에겐 확률적으로 더 안전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사장님에게 시달리면서도 이직하지 않는 이유와 같다.)


1,000마리의 소떼 중 한 마리가 잡아먹히고 나면 3~4일동안 나머지 소들은 아무 걱정없이 풀을 뜯어먹을 수 있다. 이 기대값을 계산해보면 소 한마리가 1년동안 생존할 확률은 대략 90%가 된다. 게다가 중간중간 새끼를 많이 낳아 개체수를 늘리면 생존 확률은 90%를 훌쩍 넘는다. 이 사자무리는 또다른 포식자인 하이에나나 들개의 침입을 철저히 막아준다. 3~4일에 딱 1마리의 희생이면 족한 것이다. 그래서 소들은 사자무리 옆을 왠만하면 떠나지 않는다. (단, 암사자들이 새끼를 많이 낳으면 욕하면서 떠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소들은 자신들을 먹이로 삼는 사자 무리가 세렝게티 초원에서 가장 강력한 포식자이기를 바란다.

그래야 다른 배고픈 사자나 하이에나, 들개 따위가 얼씬거리지도 못하고, 자신들의 희생은 언제나 3~4일에 딱 한 마리면 족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벌이는 종교간 갈등의 원인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이제 사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사자들은 1,000마리의 소 무리를 사냥할 때 가장 달리기 속도가 느리고, 힘이 약한 소를 택하려고 한다. 그래야 손쉽게 사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00마리 중에 그런 소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실수로 힘이 넘치는 젊은 소를 타겟으로 삼는 바람에 한참 헛심을 쓰기도 한다.

체내 지방이 적은 포식동물 입장에서 사냥 몇번 허탕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사자들은 자신들이 사냥할 때마다 제일 만만한 소를 고르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이는 소 뿐만 아니라, 생명을 잃는 모든 생물과 다른 포식 생물과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원시 인간 무리에게도 주변에 수많은 포식자들이 있었다. (포식자에는 생물 뿐 아니라 자연재해 등도 포함된다.) 그래서 인간도 수시로 사냥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다른 동물들은 포식자의 사냥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옆의 동료보다 사자로부터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거나 조금 더 빨리 도망가는 방법을 썼다. 그렇게 포식자로부터 선택당할 가능성을 낮추려 했다. (이를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종교'이자 '제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신경계는 다른 어떤 동물들보다 더 먼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 그래서 포식자가 잡아먹을 인간을 선택하기에 앞서, 인간은 포식자에게 미리 인간을 골라 제물로 바쳤다. 이때 가급적 자신들의 집단에서 생산성과 경쟁력이 가장 떨어지거나 가장 불필요한 인간을 골라 포식자에게 바쳤다. (중세의 마녀사냥, 잉카의 인신공양 등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이는 시험을 봐서 반에서 성적이 가장 낮은 학생들은 다 전학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렇게 하면 그 반의 성적은 랜덤으로 학생을 뽑아 전학보낸 옆반보다 높아지게 된다.


이런 식으로 포식자에게 경쟁력이 낮은 인간을 골라 제물로 바친 인간집단의 경쟁력은 계속 향상될 수 있었다. 반면, 포식자들은 인간이 갖다주는 제물을 아무 생각없이 받아 먹으며 지내다가 경쟁력은 부지불식간에 점차 약화된다.


인간 집단에게 개체수 유지는 생존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포식자에게 계속 인간만을 제물로 바칠 수는 없었다. 인간대신 동물을 제물로 바쳐 포식자를 속여 보기도 했다. 덩치가 인간과 비슷한 소, 돼지, 염소 같은 동물을 제물로 바쳐봤다. 만약 포식자가 속아 넘어가면 인간 집단은 더욱 안정적으로 집단내 개체수를 늘려갈 수 있었다. 인간 집단은 이런 식으로 계속 경쟁력을 향상시켰다.


그러던 어느날 인간 집단이 포식자였던 사자 무리의 경쟁력을 능가하는 순간, 즉 특이점이 다가왔다. 그 날이 오자 사자와 호랑이는 신적 존재의 지위에서 사냥감의 지위로 떨어져버렸다.  아무 생각없이 받아먹었던 제물 탓에....


동물 뿐만이 아니다. 용왕, 산신령, 비, 태양, 달, 별, 밤과 낮 등도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숭배의 대상에서 점차 이해의 대상 혹은 미신이라는 조롱의 대상으로 차례차례 격하되었다.


물론 인간의 과학기술에도 한계가 있다. 자연계에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 많다. 그 곳을 우리는 신의 영역 혹은 종교라고 부른다.  사실 인간은 신에게도 끊임없이 제물을 바치면서 호시탐탐 역전의 기회를 노렸다. 가끔씩은 지금인가? 하면서 도전장을 내밀기도 했다. 바벨탑이 신에게 도전한 최초의 타이틀매치였으리라... (지금 살펴보면 너무 설익은 도전이었다....)


다른 동물들에게도 이런 '신의 영역'은 있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우리는 일부러 개미를 밟아 죽기기도 했다.

(설마 나만 그런 것인가?) 아마 개미 입장에서 인간의 발은 신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하고, 피할 수도 없고. 대항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미의 종교는 하늘에 무언가 어른거리면 몸을 바짝 낮추라는 계명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


설날 차례를 지내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주요 선진국에서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종교인의 비율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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