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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일 Dec 31. 2020

마켓컬리가 1년 안에 망할 줄 알았다

마켓컬리의 핵심 가치는 '새벽 배송'이 아니라, '신선함'과 '신뢰'

2015년 마켓컬리가 등장했고, 주변에서는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등장했다고 다들 감탄했다. 그러나, 나는 마켓컬리가 1년 안에 망할 줄 알았다. 망하지 않더라도, 겨우겨우 살아남는 게 전부일 거라 생각했고, 매각을 한다면 그나마 성공일 거라 여겼다. 마켓컬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와닿지 않았고, 이미 많은 곳에서 빠른 배송을  제공하고 있어서 새벽 배송은 잠시 눈에 띄는 원히트 원더가 아닐까 했다. 영세 쇼핑몰보다는 크고, 이커머스 플랫폼보다는 작고 포지션도 애매하게 느껴졌다. 차별화된 MD라지만, 그래서?


새벽 배송, 가장 쉬운 카피캣

국내 최초 새벽배송 마켓컬리 CF

왜 하필 새벽이었을까. 새벽을 선택한 이유가 있겠지만, 고객 행태에 대한 성숙한 고민이 있다고 생각한다. 각양각색의 고객이 공통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고, 물건을 직접 확인하고 싶은 고객들을 위한 최적의 시간. 문제는 새벽에 배송할 수 있는 인프라가 구현되어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때문에 몇 가지 조건을 정해두고 서울, 경기, 인천에서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성숙한 고민에도 재주는 마켓컬리가 넘고, 돈은 이커머스가 벌겠지라고 생각했다. 새벽 배송을 모방해버리면, 마켓컬리는 오래 버티지 못할 테니까. 그리고 실제로 많은 유통사가 이를 따라 했다. SSG, GS프레시, 쿠팡 등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해 마켓컬리를 밀어내려는 듯 작정하며. 근데 왜 이들은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똑같이 새벽에 배송해주는데 게다가 전국으로, 일부 품목은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나쁘지 않은데, 무엇이 부족한 것일까.


'유통 혁신'보다는 '신뢰 혁신'

나의 배우자께서는 모바일 쇼핑을 좋아하지 않고, 심지어 모바일 뱅킹도 이용하지 않는다. 신뢰가 생기지 않으면, 애초에 이용을 거부하는 독특한 유형이다. 그럼에도 거의 유일하게 마켓컬리에서 음식을 구매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제품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고, 안전하기 때문이다. 신선한 음식과 식재료를 안전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다. 동네 마트에서 직접 확인한 상품도 아니고, 산지 특송이 주문한 지 몇 시간 안에 문 앞에 배송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하다. 마켓컬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온다. 전날 11시에 주문하면 7시쯤 문 앞에 신선한 상품이 놓여있다. 단순히 콜드체인 기술이 발전해서 감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이용하도록 일관되도록 신뢰를 제공했고,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선함을 책임지고 판매하는 마켓컬리의 식품 MD가 핵심이 아니다. 나와 내 가족에게도 판매할 수 있는 상품. 그래서, 음식 고유의 이야기와 특징, 더 맛있게 먹는 방법 등을 아주 정성껏 소개하는 디테일이 조금씩 꾸준하게 신뢰를 쌓았다.



'신선함' 그리고 '신뢰'라는 핵심 가치

전지현을 광고 모델로 사용했을 때, 마켓컬리에 대해 들려오는 여러 가지 소문이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비즈니스 모델에는 투자하는 의미가 없어서, 광고에 투자하는 중이다.

매각에 실패했고,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전지현을 쓰고 있다.

계속되는 적자로 '신선 식품' 대신 대중성을 선택하려고 한다.

나도 마켓컬리를 딱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역시, 얼마 못 갈 줄 알았다면서 위 소문들 중 일부는 진짜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이 흘렀고, 나의 배우자께서 종종 이용하는 유일한 쇼핑 서비스로 눈여겨보기 시작할 무렵, 유 퀴즈 온 더 블록 CEO 특집에 마켓컬리 김슬아 대표가 나왔다.

유 퀴즈 온 더 블록 CEO 특집, 마켓꼬불 김슬아 대표

트위터에서 종종 마켓컬리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업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었는데, 유퀴즈에서 마켓컬리의 이야기를 보니, 회사가 정말 남다르구나 느껴졌다. 꾸준한 디테일이 괜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 이렇게 속도감 있는 시대에 1년 뒤를 그려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는 하지만, 게다가 1년 뒤 망할 것이라 예상했던 내가 마켓컬리의 1년 뒤를 상상하는 것은 더 민망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한 번 떠올려보자면, 고객과 상호작용하며 쌓여있는 '신선함'과 '신뢰'라는 핵심 가치가 확장될 수 있는 영역이 무궁무진할 것처럼 느껴진다. 일부 논란도 있었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성장통이라고 생각된다. 마켓컬리의 다음 선택은 무엇이 될까.


대기업은 못하지만, 마켓컬리는 할 수 있는 것

퍼블리, [김난도X김슬아 대담]

퍼블리에서 읽은 [김난도X김슬아 대담] 왜 우리는 비싸도 마켓컬리를 찾을까?에서 당장 수도권 이상으로 새벽배송 서비스 범위를 늘리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마켓컬리도 예상보다 빠른 성장과 변화에 좀 더 단단해지는 것이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된다. 마켓컬리가 성장하는만큼 경쟁사도 성장한다. 그러나, 대기업 유통 공룡들은 마켓컬리만큼 디테일 있게 성장하지 못한다. 디테일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반했던 마켓컬리의 디테일 세 가지를 소개한다.


01. 마켓컬리는 탐색을 하면서 끝까지 스크롤을 내릴 수 있을 정도로 품목이 정해져 있다.

판매하는 품목이 적다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한정적인 품목으로 탐색이 쉽고, 명확히 품목을 인지하게 된다.


02. 마켓컬리 앱이 아닌 웹으로 접속해도 이용 여정이 심플하고 상품 후기가 잘 보인다.

앱과 웹의 동일한 여정을 제공하는 것이 생각보다 일반적이지 않다. 다들 자신들의 앱을 설치하고 싶어 안달 난 듯, 갖은 팝업에 회원가입 요청 등 사용자의 불편은 고려되지 않는데, 마켓컬리는 그런 불편 없이 웹과 앱 언제 어디서나 탐색하는 즐거움을 준다.


03. 뒤로 가기를 해도 보고 있던 상품 리스트 영역에서 탐색이 이어진다.

매우 사소한 요소지만, 정말 많이 감탄했다. 뒤로 가기를 누르면, 대부분 항상 처음부터 리스트를 훑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관심 있게 살펴보고 구현하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요소였을텐데 마켓컬리는 아주 디테일하게 사용자 경험이 고도화되어있다.


영화 <유브 갓 메일>의 톰행크스와 스타벅스

유브 갓 메일이라는 영화에서 톰행크스는

"스타벅스 커피숍은 우유부단한 사람에게 단돈 몇 달러만 내면 한꺼번에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사가 마켓컬리에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마켓컬리는 적당한 품목으로 한꺼번에 신선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곳이다. 신제품도 너무 많지 않게 적당한 시기에 제공하고, MD들의 정성들인 상품 소개를 통해, 안 먹어본 것을 구매하는 재미와 호기심을 준다. 덕분에 매일 아이의 이유식 재료를 믿고 구매하고 있으며, 불편함 없이 신선한 회를 금요일마다 시킬 수 있게 해 준 마켓컬리에게 작은 감사를 드린다. 1년 안에 망할 줄만 알았던 마켓컬리는 핵심 가치를 통해, 10년이 지나도 꾸준하고 단단하게 성장할 것이다.

26주 적금도 꼭 성공해야지.

카카오뱅크 <26주 적금, with 마켓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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